"하느님이 브라질리언 이라니..."

진성조 | 2011.01.18 12:59 | 조회 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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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지지도 87% 룰라의 비결

“하느님은 브라질리언이다.” 브라질 사람들의 자긍심을 잘 표현하는 말이다. 전직 재무장관이자 탁월한 경제평론가인 브레세르 페레이라가 이 말을 이렇게 고쳤다 “룰라 정부 시절 하느님은 브라질리언이셨다.” 운이 억세게 좋았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그는 룰라 시절 밀어붙였어야 할 개혁 사안이 묻혀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룰라도 임기말에 이렇게 말했다. “배고픈 노동자가 공화국 대통령이 되다니, 이건 정상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하느님의 손가락을 본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때때로 종교적 언어로 표현했다. 하느님의 손을 늘 느낀다는 것이다.

‘기아 제로’외엔 공약조차 무시

임기말 룰라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87%나 되었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이다. 브라질 국민들은 연말연시에 곳곳에서 축제를 열어 전임 대통령의 퇴임과 여성 대통령 호세프의 탄생을 축하했다. 대체 룰라의 그 높은 인기도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그의 리더십 비결은 무엇일까?

8년간의 임기에 선거공약은 ‘기아 제로’를 제외하고 거의 무시됐다. 어떻게 보면 지지 기반의 기대와는 크게 동떨어진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이어갔다. 전임자 카르도주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틀을 거의 고치지 않았고, 국제통화기금이 강제한 조건도 충실히 이행했다.
성장에는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중국발 1차 산품 붐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하느님의 손이 작용한 것이다. 임기 8년간 낮은 인플레이션 가운데 평균 5%의 성장을 이어갔다. 대외 채무도 크게 줄었고, 정부 재정 사정도 호전됐다. 그 결과 2009년에는 채권국으로 등극한 데 이어 투자 등급으로 상향 조정됐다.

유일하게 공약을 충실히 실천한 것은 ‘기아 제로’란 슬로건이었다. 그는 전임 카르도주 대통령 정부가 만든 빈민층 취학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개편해 ‘가족기금’을 만들었다. 빈곤층 1300만가구가 아동 취학을 조건으로 월 10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았다.
국내총생산(GDP)의 0.5% 정도 예산으로 정부는 5000만명의 상황을 개선했고, 내수시장 확대에도 도움을 주었다. 수혜지역은 당연히 압도적인 여당 지지표로 화답했다. 최저임금도 8년 임기 중 104유로에서 211유로로 두 배 증가했다. 동기간 물가상승률을 제외하고도 두 배나 오른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층의 이해에 영향을 주는 농지 개혁은 미미했다. 경작이 가능한 미경작지 3억㏊ 가운데 겨우 4000만㏊만 20만가구에 재분배하는 데 그쳐 지지단체인 무토지자운동(MST)을 실망시켰다. 복잡하고도 불평등한 세제를 손보는 것도 미뤘다. 세수의 49%가 부가가치세로 충당되고, 소득세는 20%에 그친다. 부자들에게 그만큼 유리한 세제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보면 부가가치세의 비중은 31%에 그치고 소득세 비중은 35%가 넘는다.

‘운칠기삼’ 경제 잘 굴러간 덕

임기 중 여러 차례 정치적 부패사건으로 정국이 출렁거렸다. 브라질의 정치제도는 20년이 넘는 민주화의 역정에도 대단히 후진적이다. 기형적인 선거제도, 다수당 난립, 후원·수혜의 정치가 뿌리를 내려 정치적 부패를 도려내기가 정말 힘든 구조이다. 룰라 정부도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선거법 개정과 정치자금 제도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주요한 구조개혁 사안들은 모두 미래로 미뤄놓은 것이다.

그런데도 87%의 지지도라니. 모든 게 경제가 잘 굴러간 덕분이다.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고 소득도 늘었다. 임기 내에 3000만명이나 중간층에 진입했다. 룰라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개혁을 추구했다. 저항이 심한 사안은 모두 미래로 미뤄놓았다. 하지만 중국발 1차 산품 수출 붐, 대형 유전 발견, 올림픽과 월드컵 유치와 같은 하느님의 손이 임기 내내 룰라 정부를 도왔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 높은 인기도의 비결이었다.

<이성형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硏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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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1-09 20:31:19수정 : 2011-01-10 15: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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