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신화의 지혜’ 따르지 않아 생태계 위기 맞은 것”

환단스토리 | 2020.04.15 21:29 | 조회 1117 | 추천 4


“인류가 ‘신화의 지혜’ 따르지 않아 생태계 위기 맞은 것”

한겨레 2020.04.15 

[짬] 서울대 국문학과 조현설 교수조현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이죠.”

14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신화학자 조현설 교수가 말하는 지금 인류에게 긴요한 신화의 지혜다. 30년 가까이 동아시아와 한국 무속 신화 연구에 힘을 쏟아온 조 교수는 최근 언론 연재물을 모아 책 <신화의 언어>(한겨레출판)를 펴냈다.

“신화는 인간에게 자연 안의 수많은 타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신화는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도록 후세대를 교양할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봐야죠. 일본 소수민족 아이누족의 곰축제를 보세요. 그들은 자신들이 사냥한 곰을 곰이 주는 선물로 봐요. 그래서 사냥 뒤에는 술과 담배를 바치며 곰에게 보답하는 축제를 엽니다. 인간과 곰이 서로 선물을 증여하는 거죠. 나무를 베거나 동물을 잡을 때나 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인류가 신화의 지혜대로 살지 않아 지금 생태계의 위기를 맞은 거죠.”

그는 ‘소수자’의 시각에서 신화를 읽어왔다고 했다. 98년 동국대에서 받은 박사 논문 ‘건국 신화의 형성과 재편에 관한 연구’도 한국 건국신화의 구조와 형성 원리를 중국 소수민족인 만주와 몽골, 티베트 신화와의 비교 연구로 살폈다. 2년 동안 베이징외국어대 교수로 있을 때도 중국 소수민족의 구전 신화 연구에 몰두했다. “제가 신화에 관심을 가질 즈음 국내에서도 중국 신화를 연구하는 흐름이 생겼어요. 대개는 중국학의 관점에서 <산해경> 같은 중국 신화 문헌을 검토했죠. 저는 소수민족 즉 오랑캐의 시선에서 중국 문헌을 보는 시야도 필요하다고 봤어요. 14년 전에 쓴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와 최근 책에 이런 관점이 투영되어 있죠.”

<신화의 언어> 표지

이 말대로 <신화의 언어> 주인공도 동아시아 소수민족과 한국 무속 신화가 품은 이야기들이다. 그는 이 오랜 이야기들을 ‘무의식과 역설’ ‘자연과 타자’ ‘문화와 기억’ ‘이념과 권력’이란 키워드로 나눠 정리했다. 저자는 중앙아시아 튀르크족 사이에 전승되는 ‘윌겐과 에를릭’ 신화와 함흥과 제주 지역 신화에서 신들이 경쟁과 협력을 통해 세상을 창조했다는 공통점을 찾는다. 대국이 보낸 세 장군을 신으로 모신 제주 ‘고내리본향당’ 신화에서는 오늘날 난민 격인 외래자와의 공존을 고민하는 섬나라 민중들의 지혜를 읽는다. <삼국사기>와 일본 역사서 <고사기>에 나오는 왕권신화를 보고는 약자가 마지막에 이기는 민담과 달리 승자의 기록인 왕권신화는 주인공의 선악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풀었다.

‘소수성’은 저자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25명 중 유일학게 학부와 대학원 모두 비서울대 출신이다. 고려대 국문학과를 나와 석사와 박사를 동국대에서 마쳤다. <한국문학통사> 저자인 조동일 교수 후임으로 2005년에 서울대 전임 교수가 됐다. 25명 중 1명이라는 점은 학술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저의 위치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늘 합니다. 이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남과 다르게 문제를 보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창의적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봐요. (교수 집단에) 여러 대학 출신이 섞이는 게 학문 연구에는 더 긍정적이죠.”

그는 전교조 해직교사이기도 하다. 서울 서문여고에서 3년 6개월 근무하고 전교조가 창립 깃발을 올린 89년 여름에 교단에서 내몰렸다. 해직 뒤 1년은 전교조 본부 홍보국에서 상근 활동도 했다. 90년부터 2년 동안은 전교조 외곽조직인 교육문예창작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그는 92년 옛 <한길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창작회에서는 도종환 안도현 김진경 선생님과 같이 활동했어요. 저와 예천 동향인 안도현 시인과는 지금 <예천 산천>이라는 잡지를 내기 위해 함께 준비하고 있어요.”

해직 때의 마음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때 제가 나이가 제일 어렸어요. 학교 선생님들과 외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어요. 당시는 전교조 탈퇴서를 내는 게 생사여탈을 좌우했잖아요. 미혼인 저만 상징적으로 전교조에 남아 해직되고 다른 분들은 탈퇴서를 내고 활동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제가 제안하기도 했죠. 마지막에 합의가 안 돼 학교에서 다섯 분이 해직됐죠. 교사를 하며 즐거웠어요. 주말에 외부인사를 불러 강연도 하고 제가 직접 강연도 했고요. 교지 편집 지도교사도 했어요.” 하지만 교사를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단다. “신학 공부에 대한 열망이 강했거든요. 교사를 하면서도 독일 유학을 가려고 희랍어와 독일어 공부를 하고 있었죠.”

그가 81년 고려대 국문학과에 들어간 데도 남다른 사연이 있다. “애초 신학과에 가려고 했어요. 집안에 종교적 분위기가 강했거든요. 그런데 부친이 저의 재종조부(조부의 사촌)인 도남 조윤제(1904~1976) 선생의 학맥을 제가 이어야한다면서 국문학과 진학을 강하게 희망하셨죠. 조윤제 선생 후손 중에 국문학자가 없었거든요.” 서울대 문리대 학장을 지내기도 한 도남은 해방 이후 민족사관에 입각해 <국문학사>와 <한국문학사>를 집필한 국문학자다.

그는 해직 이듬해 동국대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 과정은 시인 이형기 교수 지도로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박사는 거의 독학으로 신화를 공부했단다. “시가 세계를 직관하는 방식이 신화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는 <신화의 언어>에서 함경도 지역이 한국 신화 판도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아시아 신화와 샤머니즘의 구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꼭 풀어야 할 매듭이라고 강조했다. “함경도는 한반도의 한 귀퉁이이지만 만주족 등 다양한 소수 민족이 섞인 점이지대입니다. 만주나 중앙아시아 지역 신화와 비교 연구할 수 있는 매개 지역이죠. 예컨대 회령에 살았던 여진 말갈 계통 소수민족 우데게이 신화를 보면 단군신화처럼 곰과 호랑이가 오누이와 결혼해요. 우데게이와 그 이웃 종족 신화를 따라가다 보면 단군신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30여년 한국·동아시아 신화 연구

매체 연재 엮은 ‘신화의 언어’ 펴내

“소수자 시각서 신화·고전문학 읽기”

“조윤제 선생 잇고자 국문학과 진학”


1989년 전교조 해직 등 ‘소수자’ 경험

“인간도 자연의 일부…세계관 넓어져”


그가 한반도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르게 전승된 바리데기 신화 중 특히 함흥 구전본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자료를 보면서 함흥본이 바리데기 원형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함흥본은 서울 경기나 다른 지역 바리데기와 많이 달라요. 바리데기 언니인 다른 딸들과 엄마가 재산 다툼을 하고 외래종교인 불교를 배척하기도 해요. 반면 서울 바리데기에서는 석가가 버려진 바리데기를 구합니다. 함흥본에 비해 훨씬 우아하고 고상하죠. 함흥본은 다른 지역과 달리 바리데기가 무조신(무당들의 조상)도 아니고 저승 천도 기능도 없어요. 기능이 단순하고 형상은 천박하죠. 말랑말랑한 이승의 해피엔딩도 말하지 않고 죽음을 직시합니다.” 함경도 굿도 “소박하고 단순한 점이 만주족 굿을 닮았다”고 했다. “80년대 초반까지 월남한 함경도 무당들이 서울에서 굿을 했어요. 함경도 굿과 달리 서울굿은 화려해요. 불교 의례도 많이 들어갔죠.”

<우리신화의 수수께끼> 표지

함경도와 제주 신화의 유사성도 그가 주목하는 대목이다. “함경도 창세신화를 보면 미륵과 석가가 꽃피우기 경쟁을 합니다. 제주 신화(<천지왕본풀이>)에서도 대별왕과 소별왕이 같은 경쟁을 해요. 제주에서 큰 굿을 할 때 호명하는 신의 이름도 함경도와 비슷한 게 많아요.” 이유가 뭘까? “굿을 하며 무속신화를 부른 함경도 무가들이 제주도로 이주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어요. 삼국 시대에 뱃길이 우리 생각보다 더 활발했어요.”

신화 공부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냐고 묻자 이렇게 받았다. “제 이야기를 할게요. 저는 신화를 배우며 기독교적 세계관을 넘어설 수 있었어요. 성경 창세기 2장은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신화를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텍스트가 너무 많아요. 성경 역시 수많은 신화 가운데 하나인 거죠. 신화를 배우며 기독교 관점만 유일하고 진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났어요. 특정 도그마에 빠져 다른 세계를 보지 못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는 데 신화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신화학자인 조 교수가 가장 흔히 접하는 질문이 ‘서양과 동양 신화의 차이가 뭐냐’이다. “신화는 초기 인류가 가진 공통된 세계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인간 두뇌의 발달로 은유적 사고가 가능해지면서 종교적 인간이 탄생해요. 신에 대해 생각하는 거죠. 이는 인류 공동의 자산입니다. 하지만 신이 뭐냐는 생각은 아마존 늪 지대나 혹은 초원이나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달라요. 삶의 형식이나 생산양식, 문화에 따라 다른 신의 이미지를 만들어요. 예컨대 제주도에서는 신이 땅에서 솟았다고 해요. 화산 활동으로 인한 동굴 지형에 사는 삶의 특성이 반영된 거죠. 반면 초원이나 사막 지대 사람들은 하늘이 제일 중요해요. 몽골이나 유대인들이 그래요. 정의도 쉽지 않은 동양 서양 개념보다는 석기와 농경문화의 도래나 국가 성립과 같은 역사적 변천을 통해 살피는 게 신화를 더 잘 볼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신화 이야기가 뭔지 물었다.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많은 텍스트이죠. 제주 신화 중에 <세경본풀이>가 있어요. 농사의 신 신화인데 여주인공 자청비 캐릭터가 재밌어요. 오늘날 주체적 여성에 비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경쾌하고 활동적이고 능동적이죠. 전적으로 자신을 희생해 부모를 구원하는 바리데기 캐릭터와 많이 다르죠. 만주신화 <타라이한마마>에 등장하는 여성영웅도 좋아해요. 자기를 희생해 집단을 구원하지만 바리데기의 희생방식과는 많이 다르죠.“

그가 보기에 신화의 사유는 공자와 석가가 가르친 인과 자비의 관념과 다르지 않다. “15세기에 김시습이 인을 두고 ‘너무 촘촘한 그물을 물에 던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는 신화가 세계를 보는 관점이기도 해요. 신화의 사유가 공자와 노자, 불교의 사상으로 발전했어요. 고대 사회가 최고 권력자 중심으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신화가 자비나 인을 말했는데 국가와 사회의 형성 과정에서 그 지혜가 버림을 받았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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