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믿음과 앎

환단스토리 | 2020.09.01 17:59 | 조회 3519

[송두율 칼럼]믿음과 앎


[경향신문] 2020.9.1 


유럽에서는 지금 코로나19 확산 경고등이 다시 켜졌다. 나름대로 위기관리를 잘해왔던 독일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여름 휴가철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이 긴장을 풀고 방역수칙을 잘 지키지 않는 데 원인이 있다.


코로나19 사태 대응에서 지금까지 모범적인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한국의 최근 상황에 관한 보도나 논평도 눈에 띈다. 특히 ‘신천지교회’나 ‘사랑제일교회’와 같은 일부 개신교가 원인이 된 코로나19 확산에 관심을 보인다. 집단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주일 대면예배를 꼭 보아야 한다는 한국교회 안팎의 복잡한 사정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진단하고 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각종 음모설이 난무한다. 빌 게이츠가 코로나19 칩을 개발해 많은 사람에게 이식,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거나 코로나19가 중국이 세계제패를 위해 개발한 생물무기라는 등 음모론의 끝이 없다. 사랑제일교회도 질병관리본부가 과학적으로 검증 안 된 방식으로 누적확진자를 집계,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방역실패의 책임을 자신들의 교회에 전가한다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감염 증상이 왜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면역력이 생겼는지, 머지않아 나올 예방접종물질이 과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명확한 지식과 정보는 아직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수행된 그 많은 방역대책과 연구가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음모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위기는 과학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더 확산시켜 종교적 감성을 새롭게 자극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으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현대 의학의 성과를 전면 부정하는 주장이 설 땅은 있는가.


심각한 코로나19 사태로 허덕이는 브라질에는 ‘악마의 전술’인 코로나19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결코 이에 걸리지 않는다고 설교하는 백만장자이자 오순절 교회계통의 목사인 에질 마체두, 코로나19는 ‘신의 복수’라고 주장하는 발드미루 산티아구와 같은 목사도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설교하는 목사가 있다는 기사를 나도 읽었다.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는 일화는 믿음과 앎 사이의 갈등을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그가 정말 이런 말을 남겼는지에 대한 진위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를 교황청은 1992년에 정식으로 복권했다. 앎의 세계를 결코 믿음의 세계 속에 강제로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긴 역정이었다.


가톨릭교의 보수주의적 신학자로서 2005년 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선출된 요제프 라칭거와, 자신을 ‘종교적인 음치(音癡)’라 부른 비판이론의 거두 위르겐 하버마스의 유명한 토론이 2004년 있었다. 토론 주제는 믿음과 앎, 종교와 이성이 자유로운 국가의 도덕적인 기초를 제공하는 데 있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였다.


이 자리에서 하버마스는 종교가 인본주의, 계몽과 정치적 자유주의를 힘들게도 했지만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양식에 반하지 않는 종교생활은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살아지는 건전함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라칭거는 종교에 병리적 현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성의 병리적 현상은 이보다 더 위험하다고 강조하면서 인류의 거대한 종교적 유산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형이상학 이후의 사고’를 꾸준히 설파한 하버마스가 세속적인 시민사회에서 믿음과 앎 사이의 번역이 가능하다고 말한 대목은 나에게는 좀 의외였다. 라칭거도 신앙과 이성 사이에 순화와 치유를 통한 상호연관과 상호인정은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종교적인 근본주의와 이와 정반대로 당위성을 존재로부터 절대 도출할 수 없다는 과학적 자연주의도 모두 믿음과 앎 사이에 통약(通約)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와 라칭거는 두 세계 사이의 소통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의견 접근을 보였다.


라칭거가 다문화 세계에서 종교 간의 대화를 강조했지만 이 중심에는 여전히 기독교가 놓여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토속신앙, 불교, 유교 등 전통적인 믿음의 체계와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압축성장의 속도와 비례해 폭풍 성장한 한국의 기독교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독일에서도 코로나19 시대에 교회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거나 홈 오피스에 앉아있는 목사나 신부는 코로나19와 힘들게 싸우는 방역일꾼처럼 체제에 꼭 필요하지 않다는 비판의 소리도 커졌다. 사회적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독일교회가 이 코로나19 위기를 지나면서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개신교 지도자들을 만나 방역은 신앙이 아니라 과학의 영역이라면서 교계의 협조를 구했는데 일부 지도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거론하면서 교회를 흡사 영업장이나 사업장처럼 취급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구촌의 생활세계 모든 영역을 지금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위기가 제기하는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문제를 너무 안이하고 근시안적으로 대한다는 생각이 든다. 위기를 진정한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도 이제는 코로나19 이전의 사고와 행동양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기 밖의 세계와 직접 소통해야 한다. 너무 많은 비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비판적인 의식의 파국적인 결여가 교회의 위기를 낳았다는 뮌스터대학의 가톨릭 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의 경고가 다시 생각난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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