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1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사업

대선 | 2023.05.05 19:32 | 조회 3411


                <특별기고>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1주년의 역사적 의의와 기념사업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대산 신상구


                         1.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1주년의 역사적 의의

  2023년 4월 29일은 매헌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일본 군인들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지 91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이다.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본명 尹禹儀, 1908-1932)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오전 일제가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천장절(天長節)과 상해 점령 전승기념 축하행사를 진행하는 도중 단상을 향해 물통 폭탄을 투척해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1932년 4월 29일 오전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장면 사진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와 상해 일본거류민단장인 가와바타 사다쓰구(河端貞次)는 사망하고,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 葵)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으며,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 중장은 왼쪽 다리가 잘리었고, 제3함대 사령관인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郞) 중장은 오른쪽 눈을 잃었다.

  중국 국민당 장개석(蔣介石, 1887-1975)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극찬했고, 이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로 많은 피해를 당한 일제가 보복으로 임시정부를 밀착감시하며 혹독한 탄압을 가하자 임시정부는 상해, 항저우, 전장, 청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으로 무려 4000Km를 이동하며 광복군을 창설하고 무장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윤봉길 의사는 거사 직후 체포 연행되어 5월 25일 상하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11월 일본으로 호송되어 1932년 12월 19일 이시카와현 금택형무소 교외 미쓰코치 공병작업장 내 산골짜기에서 잔혹하게 총살되어 25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1932년 12월 19일 매헌 윤봉길의사 순국 장면

 

  대한민국 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남 예산군 덕산의 파평 윤씨 문중에서 아버지 윤황(尹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의 5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0세 되던 해에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했다. 그 후 동생 윤성의(尹聖儀)와 함께 마을의 최병대(崔秉大) 선생에게 한학을 공부했고, 1921년 14세부터는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매죽헌 성삼문(成三問)의 후손인 매곡(梅谷) 성주록(成周錄)에게 사서삼경과 한시를 배웠다. 1923년 오치서숙 시 대회에서 장원을 했고, 1928년에는 시집인 「오추嗚推)」, 「옥수(玉睡)」, 「임추(壬椎)」 등을 발간했다.

  1926년 오치서숙을 졸업하고 독학으로 국사와 신학문을 공부했으며 농민 운동에 관심을 갖고 오치서숙 동창들과 야학을 개설했다. 1927년 20세 때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농촌 청소년들에게 한글, 역사 등을 가르치면서 수업의 교재로 「농민독본(農民讀本)」 3권을 저술했다. 1929년 부흥원(復興院)을 설립해 인기리에 ‘토끼와 여우’를 공연하기도 했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월진회(月進會)를 조직, 이를 기반으로 농촌 자활운동을 펼쳐나갔다. 감시가 심해지자 1930년 3월 6일 새벽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비장한 출향가를 써놓고 삽교역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윤봉길 의사는 1931년 중국 상하이에 도착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의열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1932년 4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지도 하에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하여 윤봉길 의사는 문무를 겸비한 애국지사로 항일독립운동가, 낭만적인 시인, 농촌개혁가, 농민계몽가로 불리고 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따라 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해 1946년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그런데 현행 국사교과서에는 홍구공원 폭탄투척만 간단하게 기록해 놓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윤봉길 의사를 단지 테러리스트(terrorist)로만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가 우리 한민족이 윤봉길 의사의 진면목을 잘 인식할 수 있도록 국사 교과서의 윤봉길 의사 관련 기록을 수정·보완하는 데 사업의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것이다.

                                2.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1주년 기념사업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91주년 기념식이 4월 29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강당에서 (사)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나치만 서울지방보훈청장, 각계 인사와 기념사업회 회원, 독립유공자 유족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에 국민의례와 약전봉독, 기념 식사 및 기념사, 유시봉독, 축하공연, 유족대표 인사, 윤봉길의사 노래, 만세삼창 등의 순으로 개최되었다.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1주년 기념식 사진

 

  그리고 4월 29일 오전 10시 윤봉길 의사의 출생지인 충남 예산군 충의사에서는 김남용 충남서부보훈지청장 등 각계 인사, 월진회원,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에 예산군이 주관한 기념 다례를 마련했다.

  또한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가 해마다 사진전시회와 학술회의, 사적지 탐방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전개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편 4월 28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중국 상하이 루쉰공원 매헌기념관 광장에서 김영준 주상하이 대한민국 총영사를 비롯한 각계 인사, 기념사업 회원 및 교민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오직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던 윤봉길 의사님의 희생과 독립 정신은 여전히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숭고한 애국혼으로 새겨져 있다”며 “보훈처는 윤봉길 의사님을 비롯한 독립유공자분들의 헌신적인 생애와 정신을 우리 미래세대들이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필자 소개>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 등 5권

  .주요 논문 :「윤동주 민족시인의 생애와 문학세계」,「눈물과 정한의 시인 박용래의 생애와 문학세계」등 123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시부문 신인작품상, <한비문학> ․ <오늘의문학> 문학평론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대전 <시도(詩圖)> 동인,『천안교육사』 집필위원,『태안군지』집필위원,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동양일보포럼 연구위원, 평화대사, 천손민족중앙회본부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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