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에 헌신하신 강만길 선생

대선 | 2023.06.28 00:36 | 조회 2763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에 헌신하신 강만길 선생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을 출간한 2010년 5월 강원 양양 하조대 해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을 출간한 2010년 5월 강원 양양 하조대 해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랏일이 크게 헝클어지고 민주주의가 역진하고 있는데 사회의 큰 어른 강만길 선생이 23일 별세했다. 근년에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을 접고 계셨으나, 존재만으로도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큰 의지가 되었는데 갑작스러운 부음은 황망하기 그지없다.

  향년 91세. 직접 쓰신 글에서 “한 번도 겪기 어려운 역사의 실험장, 즉 식민통치의 경험, 8·15의 격동, 민족상잔의 6·25전쟁, 4·19혁명, 5·16쿠데타, 5·18민중항쟁 등을 자기의 세대로 겪고 잠깐이나마 그 바퀴에 깔려보기도 한” 역사학도이다.

  덧붙이면 6월 민주항쟁과 촛불혁명을 겪고 평양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에 참석하는 등 현대사의 기록자이자 증인이셨다. 박정희의 유신과 전두환의 5공 체제에서는 독재의 수레바퀴에 깔리기도 했다.

  한국 사회의 발전동력을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서 찾은 고인은 ‘역사의 현재성’을 중시했다. 이에 따라 배운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했고,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실천했다. 역사를 “인간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라 정의하면서 연구를 거듭하고 필요하면 행동에 나섰다. 그때마다 법비(法匪)와 학기(學技)들의 모함과 질시가 따랐으나 크게 위축되거나 괘념치 않았다. 민주정부에서 10년간 통일원 고문,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회 위원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께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이던 시절 필자는 위원의 한 사람으로 일하면서 곁에서 선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해방 후 반민특위가 이승만 세력에 의해 붕괴되고 60여년 만에 재개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단죄는, 당사자는 모두 사망했지만 그 후예들의 거센 도전을 받아야 했다. 특히 거대 족벌신문 사주 측과 대학 총장 출신의 기념사업회 등의 위협·음해·모략은 견디기 어려웠다.

  강만길 선생은 위축되지 않고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친일행위자들의 죄상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데 중심이 되었다. 역사를 바르게 공부한 사학자이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선생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분단시대’라 이름 짓고, 분단시대에 현실도피를 거부하면서 그 현재적 불행의 원인을 찾고자 노력했다. 결과는 ‘냉전수구세력’이었다. 냉전세력의 본질을 ①민주주의 왜곡·역행 ②반민족세력이면서 스스로 민족세력인 양 탈바꿈 변신 ③외세와의 결탁 ④평화통일 거부를 적시하고, 남북 화해를 가로막는 냉전수구세력의 극복을 줄기차게 주창했다.

  선생은 1999년 쓴 <21세기 한국과 일본의 선택> 말미에서 말한다. “21세기에 들어가서 한반도 지역의 평화로운 통일과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로운 발전을 위해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결속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일본이 다시 확실한 동아시아 국가로 돌아오는 일과 한반도 지역의 ‘균형성 있는’ 통일,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반도 지역이 해양세력 미·일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대륙 세력 중·러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통일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늘 한국의 위정자들이 석학의 이 같은 견해를 배웠으면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생 글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21세기의 서론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실려 있다).

  강만길 선생은 2000년 역사 대중화를 위해 계간지 ‘내일을 여는 역사’를 창간해서 발행해오다 최근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07년 재단법인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을 설립해 젊은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들의 연구를 지원해왔다.

  4·19세대는 4월혁명의 정신적·이념적 지침이 되었던 ‘월간 사상계’를 지키지 못했고, 학생운동·노동운동 세대는 6월항쟁과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튼 ‘월간 말’을 지키지 못했으며, 오늘의 민주화 세대는 21세기 역사의 문을 여는 ‘내일을 여는 역사’의 폐간을 수수방관했다. 역사의 큰 물결과 작은 소용돌이가 겹치고 있는 한반도의 위상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역사 계간지 하나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고인의 생애 마지막 정성과 노고가 담겼던 잡지다.

  강만길 선생은 생전에 18권의 저작집을 남기셨다. 혼과 정성이 담긴 글들이다. 선생은 식민사학 정체성론을 극복하고 ‘자본주의 맹아론’을 실증연구하고, 분단시대의 극복을 위한 사론 그리고 광박한 지식으로 한반도의 울타리를 넘어 노령지역 고려인들의 역사도 탐구했다.

  평생을 나라의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고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에 헌신하신 강만길 선생의 영전에 명복을 빈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어떤 죽음은 터럭만큼이나 가볍기도 하다.”(사마천의<사기>)

                                                         <참고문헌>                                                             1. 김삼웅, "강만길 선생 영전에…역사와 사회 정의 실현에 몸 바친 정신 기억하겠습니다", 경향신문, 2023.6.26일자.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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