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에 대한 진단과 처방

하심 | 2012.04.19 13:36 | 조회 4967

( 바다에서)

돌고 돌아오는

공전의 삶

언제나 무지게는

잡힐 것 같은데

부지런히 가다보면

그 자리

“--------------”

밀려드는 허탈함에

식어버린 가슴은

또 다른 무지게를 그리며

남은 불씨를 찾는다.

부서지고 부서지면서도

쉼 없는

뱃머리의 파도를 보며

그렇게 살리라.

마음은 먼 미래에 두고

알 수 없는 대해(大海)

한 점에 선 오늘도

숙명처럼, 가야하는 길을 따라

젊은 날 정열의 한 조각을

아낌없이, 바다에서

태우고 있다.

서문

새 천년이 시작 된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간 지금 21세기 현대인들에게 가장 불행한 일은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내고 있는 지금의 현대문명이 과연 이대로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하는 판단의 잣대를 찾지 못하고, 통제하기 힘든 상태로 달려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달리 뾰족한 길이 보이지 않는 현실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의 현대문명이 있기까지 언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과거를 잃어버림으로서 심각한 기억상실의 중증에 걸려 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데 현대문명의 더 큰 불행이 있다고 본다.

그 해결책은 결국 상실된 기억을 되살리는 길 밖에 없다고 본다.

기억에서 잊혀진 신화의 역사를 다시 살려내지 못하는 한 해결책은 없다고 본다.

나는 지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현대문명이 처한 심각한 문제는 종교와 과학의 분열이라고 본다.

종교는 문명의 질적 성숙을 길러주고 과학은 문명의 양적팽창과 합리성을 주게 된다.

따라서 종교와 과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문명의 양대 축이건만 서로가 양립하기 힘들만큼 심각한 현재의 대립구도는 신화시대라는 과거를 잃어버린 기억상실 탓으로서 먼 신화시대의 인류의 조상들은 종교와 과학을 분리하지 않았다고 본다.

종교가 없는 과학, 과학이 없는 종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신화의 역사를 썼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종교와 과학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양립이 불가능한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라는, 방관적 입장에서 보고 있다고 본다.

왜 그런가?

모르기 때문이라 본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는데도 다 아는 것처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어설픈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종교와 과학의 태도라 본다.

과학을 부정하는 종교나, 종교를 부정하는 과학은 절름발이 밖에 안 된다고 본다.

어떻게 과학이라는 합리성이 결여된 종교가 있을 수 있으며 종교라는 질적 뒷받침이 없는 과학이 있을 수 있겠는가?

현대인들은 부정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신화의 역사를 만들어 내었던 먼 인류의 조상들보다 훨씬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만 나아졌을 뿐 그 외는 그들보다 더 모르고 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다른 것은 다 부정할 수 있다 쳐도 최소한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지금의 현대인들 보다는 명확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고 본다.

그 증거로서 나는 신화시대의 핵심적 우주론인 천부경을 든다.

천부경은 신화시대의 인류역사를 만들어낸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종교적 과학적 결과에서 모아진 우주론적 핵심이자 현대문명이 처한 기억상실의 중증을 치료할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처방이라 보기에 천부경은 한민족에게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소중한 것임을 꼭 알려주고 싶다.

그것은 인류가 한 가족처럼 소통했던 신화시대에 인류의 먼 조상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지혜의 산물이라고 나는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종적, 민족적, 국가적 구분을 떠나 그들의 조상들의 숨결이 배여 있는 천부경은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는 인류모두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알겠지만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마야, 수메르, 황하, 등등 인류문명의 발상지에서 나타나는 여러 흔적들에는 천부경의 우주론이 깊숙이 깔려있다고 본다.

특히 수학적 흔적들은 천부경에서 유도되는 원리들이 고스란히 배여 있음을 느낄 것이라 본다.

천부경은 종교와 과학을 함께 아우르는 우주론으로서 이 둘을 연결하는 수단으로서 천부경은 기본적인 기하학과 수학의 원리를 경전의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본다.

천부경이 81자로 쓰여진 이유도 이러한 원리에 충실했기 때문이라 본다.

따라서 천부경은 고대인들의 시각에서 본 종교와 과학을 아우르는 우주론적 논리를 기하학과 수학적 원리를 바탕에 깔고 고도로 압축해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천부경의 우주론적 흔적은 각종 종교들의 경전들에도 나타 난다 보는데 성경, 불경, 유교경전, 도교경전 같은 서적들에도 천부경에서 유도돼는 기하학적 원리와 수학적 원리들이 쓰이고 있어 경전의 해석에 결정적 열쇠가 되는 매우 중요한 숫자들과 기하학적 개념들이라 보나 문자에 가려진 숫자와 기하학적 의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므로 지금은 아무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고 보며 왜 그런 숫자들이 쓰였는지 이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본다.

또한 이집트의 피라미드, 마야의 유물, 역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인류문명사에 나타난 여러 흔적들에도, 지금의 현대문명 속에도 천부경의 우주론적 원리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배여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천부경은 인류 모두의 것으로서 참으로 긴 세월을 인내 하면서 어렵게 전승해 오늘날 다시 세상에 전해지게 해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한민족의 것이라고 일방적인 주장을 해서는 안 되리라 본다.

그것보다는 천부경의 우주론을 만들어 내었던 먼 인류의 조상들이 꿈꾸었던 세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천부경의 우주론을 통해 알아보고 그 꿈을 지구촌의 사람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 실천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 하리라 본다.

과학적 합리성이 결여된 종교는 종교적 도그마에 빠지기 쉽고 종교적 믿음이 결여된 과학은 과학적 도그마에 빠지기 쉽다고 본다.

그러므로 동서고금을 통 털어 변함없이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늘 그대로인 소통의 기준은 기하학과 수학밖에 없다고 본다.

기하학과 수학은 언제나 같은 답을 준다.

이 두 학문이야 말로 진리가 도그마에 빠지지 않게 제대로 후대에 전달되게 해 주는 인류의 지혜 들이라 본다.

따라서 신화시대 때에 만들어진 지금의 현대 기하학과 수학의 바탕이 되는 고대인들의 기하학과 수학적 논리들을 집대성해 설계된 천부경의 우주론을 통해 고대인들의 종교와 과학의 성립원리를 확실히 알아낸다면 신화시대 이후 동·서문명의 여러 민족들의 종교와 과학의 분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변화하며 오늘날까지 흘러 왔는지를 뚜렷이 비교분석해 볼 수 있으리라 보며 그 문제점 또한 확실하게 짚어 낼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신화시대로 들어가게 해주는 비밀의 열쇠가 곧 천부경의 우주론임을 깊게 깨달아 소중한 인류의 유산임을 깊게 인식해 주기를 다시 한번 강조 하고자 한다.

철이 들면서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은 나에게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이렇게 까지 거창하게 인류문명을 들먹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가끔씩 시를 읽고 사람들과 섞여 열심히 살면 된다는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돌아보니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소통의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느낀 것이다.

왜 그럴까 ?

조금씩, 조금씩 그 해답을 알아가는 과정이 깊어지면서 결국은 여기까지 와버린 것 같다.

새 술은 새 부대라는 성경구절처럼 신화시대라는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 오늘날의 인간문명의 인식의 틀을 아예 통째로 바꾸지 않고서는 아주 사소한 작은 소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부질없는 것임을 어느 날 나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 해법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던 세월이 쌓이면서 이루어진 결과가 이 글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한 인간이 소망하고 키워온 꿈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적어보는 지나온 세월의 인생의 시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래본다.

신화시대 이후, 천부경의 우주론으로 통합되어 있던 학문적 기초들이 세계 각 민족들의 학문체계로 분화가 일어나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가지들이 전혀 다른 학문적 개념으로 보게 되는 오해가 생겨났다고 보기에 개념적 혼선을 먼저 정리하지 않고서는 이 사람이 전개하는 고대한국학의 논리들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혼선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기에 이점 유의해 주기를 바란다.

20111230일 하심(下心) 쓴다.

<1>

1.천부경 해석의 기본 틀

1>천부경의 의미

농은유집기록 본에 나타나는 천부경의 의미는 고대한국학의 우주론적 핵심을 결집해 놓은 것이라 보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주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물질의 이중성 즉 상보적 성격에 대해 천부경은 처음부터 우주론의 일부로 인정하면서 세워진 우주론이라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이 발견만 했을 뿐 그러한 사실로부터 인간문명의 혁신을 이끌어 낼만한 어떠한 우주론적 기반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아직도 헤매고 있는 현 상황에서 놀랍게도 천부경은 그것을 뛰어넘어 81자의 문자와 이것을 담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통해 매우 정교하면서도 치밀한 우주론적 결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고도의 철학적, 신학적, 기하학적, 수학적, 천문학적, 인문학적 원리들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정밀한 우주론적 설계도 같은 것으로 저 먼 고대에 이미 이러한 우주론적 결과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문명적 실험이 있었다는 것은 -<한단고기 참조>-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며 그러한 문명적 실험의 흔적들은 아직도 우리들의 일상 속에 깊숙하게 남아 실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부정하기 힘든 현실적 양태들은 선조들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져도 되리라 본다.

다만 나 자신이 부족하여 아직은 이러한 결론들을 충분하게 증명해 낼 수 있는 실력이 모자람이 안타까우나 이 글을 계기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보다 훌륭한 논리적 바탕이 만들어 지기를 희망해 본다.

지구촌이라는 말들이 일상처럼 흔히 쓰이는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처럼 급속하게 엮이어져 가고 있으나 그에 걸 맞는 새 천년을 만들어낼 충분한 학문적 소통의 기반을 아직까지는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종교는 종교대로, 과학은 과학대로 서로가 겉돌며 자신의 길만 고집하는 현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급한 과제는 진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문화적 기반을 지구촌의 사람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 만들어 내는 일이 우선이라고 본다.

이것이 우선적으로 확보돼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학문적 혼동상황을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모든 오해의 씨앗은 소통의 문제로부터 시작 된다고 본다.

일단은 서로 간에 말이 통해야 그 다음도 있는 것 아닌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공동체적 편리함도 일 킬로그램은 이만큼이고 일 미터는 이만큼이고 백 원의 가치는 이만큼이고 하는 가치의 표준을 서로 간에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고 각자가 쓰고 있는 도량적 가치기준이 다르다면 오늘날과 같은 편리함을 만들어 내기 힘들 것이라 본다.

오늘날의 인류문명이 지구촌이라는 생활범위로 확대되어 편리한 생활 기반을 갖추게 된 주된 이유도 자연과학을 통한 지구촌적 도량의 가치 기준을 서로 간에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자연과학적 분야에서는 분명 괄목할 만한 가치표준의 표준을 서로 간에 확보하였으나 그에 걸맞는 문화적인 도량형의 가치표준을 만들어 내는 데는 실패함으로서 절름발이 문명으로 전학할 위기에 처한 것이 지금의 인류문명의 현 주소라 본다.

< 나중에 인문학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인간학은 종교를 의미하고 이치학은 과학을 뜻하는 것으로 인문과학은 문화를, 사회과학은 정치를, 자연과학은 의식주와 관련된 경제와 기술을 뜻한다.>

종교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것이 그 주된 이유라 보지만 이래서는 새 천년을 만들어 내기도 전에 얼마못가서 스스로 무너지는 화를 자초할 지도 모른다고 본다.

이미 그런 조짐은 최근 들어 나타나고 있는 지구촌 적 재앙들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을 것으로 본다.

인간학을 통한 정신적인 질적 성숙이 동반되지 않는 양적 팽창만 있는 이치학에 편중된 문명은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

제국주의나 무한경쟁을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 같은 논리들이 그것으로서 질적 성숙이 동반되지 않는 양적팽창에만 주력하는 문명은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하여간 동서고금의 여러 문명들을 서로 소통하게 해 줄 수 있는 기초적인 바탕은 현재로서는 고대인들이 만들어낸 기하학과 수학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지난 세월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도 기본적인 소통에 대한 보편적 방법이었는데 마지막 결론은 결국은 인류문명이 처음 출발했던 신화시대 때에 정립된 고대인들의 기하학과 수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집대성해 만들어진 천부경의 우주론을 통해 각 문명 간의 기본적인 소통의 기반을 만들어 내는 길만이 현재로서는 유일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천부경에 대한 앞으로의 글의 전개 방식도 고대인들의 기하학과 수학적 원리를 바탕에 깔고 전개할 생각인데 어느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학문체계에서든 틀리지 않고 항시 같은 답을 수학과 기하학은 준다고 본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정직한 표현 수단이 기하학과 수학이라고 본다.

천부경 또한 이런 정직성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누구에게나 언제어디서나 어떤 학문 체계에서든 천부경은 항시 같은 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따라서 천부경 해석의 결정적 열쇠는 천부경을 설계한 고대인들의 우주론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하며 그것이 동서고금의 모든 문명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성격의 우주론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가장 큰 진리임을 나는 믿는다.

그동안 시간적으로는 고대와 현대를 공간적으로는 동과 서를 포용하며 나아가 정신과 과학이 하나로 소통되는 새로운 미래 인류문명의 지표를 제시할 수 있는 종합적인 우주론적 모델을 만들어 내고자 무척이나 애를 썼었다.

왜냐하면 이런 작업이 먼저 선행되지 않고서는 어지러운 현대문명의 혼돈상황을 매끄럽게 풀어내며 보다 성숙한 미래 인류문명을 만들어 낼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농은유집 속에 수록된 고대한국인들의 문자로 설계된 천부경의 우주론을 접하고는 무척이나 기뻤었다.

내가 고민하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거기에 담겨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말은 많았으나 천부경에 대한 보편적인 해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주된 이유를 단군왕검제위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신지문자로 설계된 천부경을 대하고 나서 나는 확연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떤 식으로 풀어내어야 만이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상당한 고민을 했었다.

나만의 주장으로 끝나서는 안되는, 모두가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논리로서 풀어내어야할 숙제가 눈앞에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천부경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동서고금의 여러 문명들 속에 나타난 흔적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소통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풀까한다

사실 천부경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시도해 보려고 마음먹은 것은 작년 구월 말쯤으로 연습 삼아 한번 글을 전개해 보았었다.

그러면서 어떤 식으로 전개 하는 것이 좋을지를 가늠해 보았는데 두달 쯤 전에 쓴 초안을 바탕으로 이제야 진지하게 천부경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고가 나는 바람에 상당한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다가 퇴원했기에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할 수 있을 것 같아 초안을 작성할 때 보다는 매끄러운 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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