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고대사의 모자이크

우주의꿈 | 2010.12.30 03:07 | 조회 4347

서론

우선 이 글을 쓰는 이유를 적어야겠다.
필자가 고등학교(87년)의 역사시간에 지나(중국)의 역사가 주나라부터
시작되었고 주 나라 이전의 [하(상), 은]는 전설속의 나라여서
역사속의 왕조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 다음해에 은허가 발굴되면서 전설속의 나라라고
취급하던 은나라는 다시금 역사의 햇살을 받았다.

필자는 역사의 의문점이 들어서 당시의 국사선생에게 질문을
했다. [역사는 사실입니까?] 답변은 [아니다]였다.
충격이었다.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제대로 연구하지도 않은
역사를 버젓이 국사교과서에 실어 놓고 가르친다.

비단 지나(중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고조선역사 그리고
고조선이전의 배달국, 환(桓)국에 대해서도 철저히 역사의 단절이
이루어졌고 고조선도 [단군왕검 전설]정도로만 알고 있는
지금의 사람들이 안타깝다.


덧붙여서 우리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은 다음과 같다.
환국(BC 9200년전) --> 배달국 --> 고조선 --> 북부여 -->
고구려 -->대진국(발해) --> 고려 --> 조선 --> 임시정부
--> 대한민국

(북부여기, 조대기, 환단고기, 삼성기, 단기고사, 규원사화등
우리 고대사 사서가 더 많이 발굴되고 연구되면 보다 더 명확해질
것이다. 지금의 사학계에서 이 글을 본다면 아마 나를 미친놈이고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놈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작년에 역사추리 다큐멘터리가 KBS에서 했는데 나는 이것을 아주
정말 재미나게 보았다. 지금의 사학계에도 정말 훌륭한 분들이
있다면 꼭 전부 보기를 강요하고 싶은 것이 내 개인적인 바램이다.)

필자가 쓰는 이 글은 다음의 목적을 위한 글이다.
오직 우리 인류문화의 뿌리, 잊혀진 역사, 잊혀진 문명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인식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잊혀진 인류문화의 역사를 가능한 모자이크를 해서
인류문화의 뿌리를 찾을려고 한다.

나는 이것을 문화의 모자이크 이론이라고 정의한다.

본론

현재 세계사에서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를 이집트(나일강 유역),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강 유역), 인더스(갠지즈 유역), 황하로 꼽고 있다.

여기서 잠시 문명발상지의 공통점을 집고 넘어가보자.

첫째 : 문명이 발생한 주위에 강이 있었다.
둘째 : 문명이 발생한 곳은 모두 벼농사(탄화볍씨)의 흔적이 있다.
세째 : 모두 BC 2300년전 에서 3000년전으로 발생시기가 비슷하다.

자 여기서 역사와 지리, 기후 그리고 인류문화에 대한 사실에
근거하여 논리적인 추리를 해나가겠다.

첫째의 공통점으로 유추한 것으로서 [강]주위에 문명이 발생
했다면, 당연히 그 당시의 기후는 온난 다습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BC 2300년전에 위와 같은 입지 조건을 모두
갖춘 [강]이 네개 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4대 문명은 지리적으로 생각했을때, 당시의 사람들이
오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멀었을까?


위와 같은 의문점을 해결해 볼려고 하면 당연히, 그 당시의 지리
와 기후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륙이동에 따라서
중생대 이후에 갈라지기 시작한 판게아가 신생대 제4기
(약 250만 년 전부터, 홍적세와 충적세)에 이르러서는 거의
현재 지구상의 대륙들처럼 흩어져 있었다고 추론한다.

신생대 제4기는 긴 빙하시대가 끝나고 빙하가 후퇴하여
전지구적으로 따스해졌다. (약 250만년전 부터이며, 지금 현대 이전의

마지막 빙하기는 약 1만 2천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빙하가 지나가고 난 뒤에
계곡이 형성된 곳에 비가 내리면서 강이 형성 되었다.
그러면 앞서 얘기한대로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춘 강이 4개
이상 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바이칼 호(당시에는 강이였다고 생각)는 지금보다
북방에 위치하지 않았으므로 문명이 발생 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또한 지금도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몽골북부에서
시작하는 셀렌가 강이 있다.

실제로 바이칼호 유역에는 구석기문명이 있었으며 유적이
발견 되고 있다.

관련기사 검색 용어 : 바이칼 유적

당시의 사람들이 지금의 인류보다, 문명적으로 앞서 있었는지,
뒤져 있었는지는 쉽사리 판단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플라톤이 말했던 전설의 아틀란티스
대륙이야기(약 1만년 전 역사이야기)에 보면 그 나라에서는
하늘을 나는 물체와 땅위를 달리는 탈것(지금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
또한 지금도 남아 있는 이집트 피라미드에 고대의 탈것에 대한
이집트 상형문자 이외에도 더 많은 고대 문명(BC 1만년 전)의
증거들을 볼때 지금의 인류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았나 판단한다.(최근에 그레이엄 헨콕이 쓴 [신의 각인]을
보면 고대 문명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하고 나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 탄소반감기 측정은
고고학이나 사학계에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따라서 당시의 거리가 멀어서 문화(문명)의 교류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당시에도 넓은 대양을 항해하던 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유적조사에서 발굴된 거대한 배의
유물때문이다. 당시의 항해술은 3000km 이상을 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판단하여 먼 대륙으로 건너갈 정도라고 생각한다.

둘째 벼농사를 통해서 많은 인구들 끌어들여서 고대도시 발전을
꾀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먹을 만한 식량이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경작을 통한 식량의 확보가 필요해서
벼농사를 시작하지 않았나 추론한다.
(꼭 벼농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기초작물 농사)
더구나 강이 옆에 있었기에 벼농사를 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이를 통해서 식량이 모이면 강 주위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어서 집단 생활(씨족생활)을 하고, 도시국가, 더 나아가
문명의 모태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성립된다.

이러한 집단생활을 하다 보면 서서히 사람과 사람과의 대화,
물자 교류등이 진행되는 와중에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교류가
되면서 문화도 같이 전파된다. 지금의 세계사에서 말하는
실크로드와 흡사한 경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세번째로 문명과 문화는 사람의 이동에 의해서 전파되고 계승
되었다. [신의 지문:저자 그레이엄 헨콕]이라는 책에서
케찰코아틀(케찰코아틀은 머리가 검고, 코가 낮고, 배를 타고
건너온 사람들)에 관한 문명의 전파자 이야기가 고대문명
속에
전해지고 그 지역에서 가까운 다른 고대 문명의
이야기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공통점이 너무나 많다.
대표적으로 피라미드형의 건축인데, 고대문명에
따라서 약간의 형태는 다르지만 많이 있다.
고구려의 장군총, 광개토대왕릉도 피라미드 형태이다.

네번째로 문명이 발생한 곳을 보면 온난하고 따스한 중위도
지역이다. 당연히 벼농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인구의 이동이
이루어지므로 문명의 이동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결론

위의 네가지를 종합하면 처음에 북방의 바이칼호에서 태동되었던
문명(약 1만년전)이 인구의 증가에 따라서 온난하고 벼농사하기에 좋은
지역으로 이동되면서 거기 지역에 정착했던 사람들이 북방의 문명
을 모태로 삼아서 문명을 새로이 계승해 나갔다고 본다.
따라서 지구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문명들을 하나 하나 그림을
끼워 맞추듯이 나가다 보면 전체의 큰 그림(문명의 시원)이
완성될 것이다.

epilogue
오후 7:47 2004-10-12
홍수이야기를 아는가?
전세계의 역사를 뒤져보면 대홍수 이야기가 신화나 전설로 해서
각문화권에 나온다. 인도의 길가메스 서사시, 수메르의 홍수,
노아의 홍수, 중국 우임금의 치수사업, 고조선의 초대 단군때
오행치수등 많이도 나온다.
그리고 우연인가? 그 홍수가 있었던 연대는 BC 2000~ 2300년전
으로 거의 일치한다. 즉 그때의 홍수는 전세계를 휩쓸었고,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입과 글로 구전한 것이 신화나
전설로 남아서 우리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전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맨위에 쓴글(약 2년전에 쓴 글)과 지금 쓰는 이 후기는 이우혁님이
쓴 퇴마록의 혼세편 홍수에서 이우혁님이 조사한 홍수기록의
연대기와 그레이엄 헨콕이 쓴 [신의 지문] 에서 케찰코아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 고대사 [환단고기]에서 환국 7대 환인이 신시에
보낸 제세핵랑군(문명의 전파자, 창조자)3천명 이야기
등이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추리소설을 보면 전혀 별개의 사건인것 같이 보였던, 각 사건의
단서와 실마리가 결국 하나의 전체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경우와
비슷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전세계의 홍수이야기는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의 지구기후학, 지질학, 고고학을 안다면 보다 더
자세하게 알 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문헌이 있어야 역사라고 간주하는 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이다.
유물과 문헌이 일치하면 더 좋겠지만,
유물이 있었다는 것은 문명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한
역사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보편타당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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