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반대편-남미에도 한류열풍

진성조 | 2010.11.08 17:46 | 조회 5540
<글로벌 에세이>
페루에 부는 한류바람
기사 게재 일자 : 2010-11-02 13:48
한병길 주 페루 대사

잉카문명의 중심지였던 페루는 최근 어디를 가나 한국 붐이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동방신기의 노래를 듣고 마약을 끊게 되었다는 어린 소녀의 감동적인 얘기도 들린다. 얘기의 시말은 이렇다.

“그녀는 가족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껴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하는 이들과 어울려 지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인터넷을 통해 동방신기의 ‘Thanks To’를 접하였고, 멜로디가 좋아 인터넷에서 스페인어 가사를 찾아본 이후에 더욱 매료되어, 언젠가는 노래로 사랑, 격려, 희망, 그리고 힘을 전해준 다섯 사람을 만나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는 마약을 끊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기로 결심했고, 결국 마약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 드라마 방영으로 시작된 한류붐은 ‘대장금’, ‘커피 프린스’, ‘내조의 여왕’ 등의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공중파 TV가 방영하면서 지속되고 있다. 리마에서는 한 달이 멀다하고 Korean Wave(‘한류’·한국 드라마클럽), Mundoasianik(‘아시아 월드’·가요클럽), Latin Shine(TVXQ<동방신기> 팬클럽), Asia Zone(아시아 드라마클럽) 등 한류클럽들의 행사가 수시로 개최된다.

돌이켜보면, 과거 한국과 페루의 관계는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1975년 페루 리마에서 개최된 비동맹회의는 우리에게 뼈저린 외교적 패배를 안겨줬다. 비동맹 가입을 최대 외교 목표로 추진하던 중에 북한은 비동맹외교의 주요 멤버였던 페루측 지원으로 비동맹에 가입한 반면, 우리는 보기좋게 쓴잔을 마신 것이다.

이처럼 소원했던 양국 관계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반전되기 시작했다. 배구 불모지인 페루에 박만복 감독은 세계선수권 우승컵과 1988년 서울올림픽 은메달을 선사했다. 당시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선교하던 중 테러범들에게 납치당한 한국인 수녀들이 ‘만보(만복)’의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풀려났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이후로도 한·페루 관계는 1996년 일본대사관 테러사건 때 한국 대사가 납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의료·보건 분야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꾸준한 지원 등을 바탕으로 양국 관계가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에너지·광물자원 분야 우리 기업의 페루 진출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양국 관계가 전례없이 돈독한 우호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페루 국빈방문, 지난해 11월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의 국빈방한 등 정상간 빈번한 교류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6월 가르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하여 모체(Moche)문명(잉카문명보다 10세기 이전의 고대문명)의 중심지였던 트루히요를 방문했다. 초청 목적은 모체문명 박물관 개관식 참석이었지만, 실제로는 우수한 페루의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페루인들은 금은세공, 건축, 조각 등 고대로부터의 전통문화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처럼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페루인들이 우리의 드라마를 즐기고 한국말로 가요를 부르는 것을 볼 때 느끼는 감동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들다.
어떤 이는 이러한 한류붐을 우리 문화에 내재된 가족애와 사랑, 승리를 쟁취하고 성공을 거두는 한국적 소재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프란시스코 카란사 교수가 저서 ‘마법의 도시 야이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인과 페루인의 정서적 유사성(장유유서, 가족애)과 피해 민족으로서의 역사적 공감대 등이 주요인이 아닐까 싶다. 요즘 리마 거리를 활주하는 신차의 4대 중 1대 이상은 현대와 기아차다.
최근 협상타결된 한·페루 자유무역협정(FTA)이 내년 상반기에 예정대로 발효되면, 이러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붐은 더 확산될 것이다. 이번 한·페루 FTA 타결을 계기로 페루인들이 자랑하는 날생선 레몬즙 절임 세비체(Ceviche)와 전통주인 포도 증류 칵테일 피스코사워(Pisco Sour)를 서울거리에서도 맛볼 수 있는 날을 그려 본다.

◆한병길(56)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국방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제14회 외무고시 ▲주칠레 1등 서기관 ▲남미과장 ▲주미 대사관 참사관 ▲중남미국장 ▲주페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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