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훈] 하반신이 마비된 프로레슬러 이야기

박기숙 | 2010.10.17 23:34 | 조회 5949

[김남훈] 하반신이 마비된 프로레슬러 이야기

김남훈 기사전송 2009-10-15 12:15


안녕하세요. UFC해설을 하고 있는 김남훈입니다.

오늘은 저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한 때 제가 걷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 많은 독일군 포로들이 소련군에 의해서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들의 운명은 간단했다. 죽을 때까지 강제노동을 하는 것. 탈출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했다. 수용소 자체의 경비도 있었지만, 시베리아 자체가 강력한 보안시설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라도 그 시베리아를 걸어서 횡단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독일군 포로가 일단 수용소를 빠져 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행동을 크게 후회했을 것이다. 살을 에는 추위와 끝도 없이 펼쳐진 시베리아에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해냈다.

그는 돌멩이 10개로 시베리아를 빠져 나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옥과 가까운 공간 "시베리아"

그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왼쪽 바지주머니에 작은 돌 10개를 집어넣고 천 발자국을 걸을 때 마다 1개씩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10번을 하면, 이젠 반대편으로 돌을 넣어서 계속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리고 또 반복했다.

그리고 그는 탈출에 성공했다.


어떤 커다란 목표이던 간에 잘게 부수면 작은 일이 된다. 그리고 천 발자국에 한 개의 돌처럼.

그 잘게 부순 일을 클리어 해 나가면서 성취감을 느낀다면 시베리아 같은 엄격하고 가혹한 환경에서도 인간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커다란 일을 잘게 부수고, 그리고 그 부서진 일들을 클리어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 그건 아주 우연히 그리고 아주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얻게 된 나의 방법이다.

나는 2005년에 하반신 마비가 된 적이 있다. 링에서 거꾸로 떨어지며 목 뒷부분의 연수에 이상이 생겨 허리 이하의 감각이 상실되어 걸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때의 상실감과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방바닥에 누워 천정과 케이블TV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다행히 신경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어서 영구적인 장애로 남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 다시 걸을 수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병원에서는 꾸준한 움직일 것을 요구했었다.

막막했다. 인간이 수 천년 이전 아니 더 아득한 세월부터 해왔던 직립보행이란 기능을 잃어버린 지금의 상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회사를 창업한지 1년 만에 방바닥에 누워버렸으니 마음도 급했다. 이미 4명의 밥줄을 챙겨야만 했던 사장이기 때문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바닥에 누워 TV만 보던 어느 날 부모님이 말없이 올라오셨다. 부모님은 내 손을 잡고 그냥 그렇게 한참을 계시다가 가셨다.

부모님이 가신 후에도 내 손안에 한참 동안 그분들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빨리 다시 걷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너무 막막했다.
그래서 "걷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맥도날드 햄버거"였다. 테이크아웃으로 방에서 먹은 적도 있었지만, 따뜻하고 푹신한 햄버거빵의 감촉과 패티의
느끼함을 직접 맛보고 싶었다. 꼭 먹어보고 싶었다. 매장에서. 내가 걸어가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누워있는 곳에서 매장까지는 너무나 멀었다. 게다가 지하철도 타야 한다.

내 방과 맥도날드 매장의 거리는 1만 광년 이상이었다.

일단 지금의 내 상태를 확인해봤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서 TV를 보는 것이 가장 편한 자세였다. 일단 여기서 매일 움직여 보기로 했다.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상체를 이용해서 몸을 뒤집으며 TV시청을 했다. 때로 엎드려서, 가로로 누워서 이렇게 조금씩 자세를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하체는 안되더라도 상체만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능을, 그리고 그 기능을 뇌가 잊어버리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했다.



아, 걷지 못한다… 그러나 먹고싶다 먹고싶다 먹고싶다!


밤에 잘 때는 발이 굉장히 시려왔다. 아마 감각이 없던 것이 조금씩 살아나서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다리를 살짝 이나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누워서 머리로 벽을 밀면서 다리로 바닥을 밀면 기어서 화장실 쪽으로 가는 것이 가능했다. 최종적으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TV앞에서 화장실까지 무려 3미터의 긴 여행이 자력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어차피 신경이 끊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되살릴 수 있다.

암. 그렇고 말고.

케이블에서 하는 프로레슬링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저렇게 뛰어다닐 수 있다. 다시 저렇게 링에서 맘껏 소리지르며 악역 레슬러답게 의자로 사람을 내리치며 호치키스로 이마를 뚫어버릴 수 있다. 링에서 사용하던 체인과 호치키스를 매만지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 힘으로 걸어서 맥도날드 매장까지 가겠다”라는 목표를 위해서 앞서 2차 대전의 독일군 처럼 자잘하게 목표를 세분화 했다.

<맥도날드 햄버거 매장에서 먹기>

1. 누운 상태에서 상체를 이용해서 몸을 구른다
2. 몸을 뒤집을수 있도록 한다
3. 벽을 이용해서 일어난다
4. 벽을 이용해서 일어나고 걷는다
5. 화장실까지 걸어간다
6. 집안에서 벽을 짚고 걸을 수 있다
7. 엘리베이터까지 간다
8. 지하철 역까지 간다
9.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내린다 (새벽시간)
10. 지하철을 이용한다 (새벽시간)
11. 지하철을 이용해서 맥도날드 매장에 간다 (새벽시간)
12. 개점을 3시간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13. 햄버거를 먹는다

물을 많이 넣은 맹탕라면처럼, 아주 희미한 스프의 맛처럼, 하체의 저 끝 부분에 아주 희미하게 근육의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벽에 머리를 대고 다리로 밀면서 몸을 붙인 다음, 팔로 벽을 잡고 밀면서 다리에 힘을 주면 아주 천천히 비틀거리며 일어설수 있었다. 상체가 들리는 순간에 문고리를 잡으며 등을 벽에 붙이면서 이동할 수 있었다. 몇 달 만에 TV앞에서 화장실까지 그리고 문 까지. 그리고 엘리베이터 까지의 엄청난 모험을 할 수 있었다.

자. 이제 대모험의 시기가 왔다. 반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프로도의 마음이 이랬을까?

아침 5시에 일어나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아니 움직였다. 꼭 첫차를 타야 한다. 지금의 나는 유치원생과 부딪쳐도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없을 때를 노려야 한다.

거의 반 년 만에 지하철을 탔다.

창 밖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동해안에서 봤던 것 보다 100만 배는 아름다웠다.



이런 일출보다 아파트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 100만배 멋있었다

집이 아닌 밖에서 걸을 때에는 가방을 매고 책 몇 권을 넣어두는 것이 균형을 잡아서 걷는데 도움이 되었다. 걸을 때 마다 벽이나 공중전화박스, 전봇대 같은 내가 힘이 들면 붙잡고 쉴 수 있는 곳을 생각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딘가 앉으면 편하겠지만 다시 일어 서는 것이 어려우니까 되도록 계속 걸었다. 전날 들이킨 술이 아직 덜 깬 사람을 보듯 사람들이 날 그렇게 쳐다 봤다.

그렇게 반지원정대마냥 엄청난 모험 끝에 맥도날드매장 카운터에 서서 주문을 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코를 자극하는 고기 패티와 감자튀김의 향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아이맥스처럼 펼쳐진 메뉴판과 주문콜을 하는 점원의 간드러진 목소리.

아...이곳이구나!

빅맥셋트를 당당히 주문하고 접시를 들으려다가 난 중심을 못 잡는 것을 알고 점원에게 부탁해야만 했다.

“제가 몸이 안 좋아서 이걸 못 드는데, 좀 테이블까지 가져다 주시겠어요”

점원아가씨는 덩치가 큰 내가 어설픈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신경질적으로 눈매가 변하려다가 내 얼굴의 피곤함과 막막함을 보고 진심을 파악했는지 테이블로 가져다 주었고 나는 햄버거를 한 입 베어먹었다.

기름진 패티와 마요네즈 그리고 빵과 양상추가 입안에서 잘게 썰리고 씹히면서 걸쭉한 상태가 되어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걱걱 소리가 날 정도여서 주변을 한 번 휘둘러 보고는 다시 열심히 햄버거를 씹어먹었다.

맛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난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부상에서 완쾌되어 상대선수에게 백드롭을 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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