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해야 하는 종교(김진호 칼럼) - 한겨레 신문

진성조 | 2010.10.19 10:15 | 조회 7559

[야! 한국사회] 사과해야 하는 종교/ 김진호

- 한겨레 신문 2010.10.19

한겨레
»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
그의 목소리에서 화난 기색이 느껴졌다. 낮게 깔린 저음에 약간은 느릿하고 점잖은, 전형적인 목사의 톤이다. 익숙한 목소리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서울에서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는 간략한 소개와, 내 연락처를 알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말했다.

모르는 목사가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 전형적인 목사의 톤으로, 다소 위압적인 말투로 말하는 것, 경험상 이런 경우는 영락없는 항의 전화다.

불현듯 10년쯤 전 교회를 담임하던 시절 받은 전화 한 통이 떠올랐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지역 신문에 축하 글을 기고한 것에 대해, 목사로서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계속 지켜보겠다는 준엄한 꾸짖음이었다.

그때 그 목소리와 느낌이 겹쳤다. 그 뒤 몇 번의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그때마다 그 소리는 ‘목사스러운’ 익숙한 말투였다. 하지만 첫 경험만큼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그가 물었다.

“북한의 3대째 이어지는 세습에 관해서는 왜 말하지 않소! 북한 동포의 인권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그렇게 까탈을 부리시오. 설사 마땅치 않은 것이 있더라도 ‘장로 대통령’을 믿고 밀어줘야 하는 것 아니오. 이 나라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한 분이오. 더이상 교회를 욕되게 하지 마시오!”

하지만 이런 혐의에 걸려들 만한 목사는 나만이 아닐 텐데, 게다가 교회에서 그다지 영향력도 없고 유명하지도 않은 잔챙이 목사인 나를 표적 삼아 전화까지 할 일은 아닐 듯싶다. 필경 이 말은 나에 대한 그의 일반적인 인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무엇이 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그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의 말로 유추된 사정은 이렇다. 교인 몇이 내 책을 보는 것을 발견하고 검토하다가 깜짝 놀란 모양이다. 그가 보기에 이 책은 교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불온한 서적이었다. 얼른 책을 회수하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호통을 친 모양이다. 그러고도 성이 안 찼는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인 내게 경고를 했다.

근자에 훌륭한 기독교서적이 많이 출간되었다. 고급 정보와 균형잡힌 내용이 돋보이는 책들이다. 이 중 여러 권은 이미 많은 기독교인들이 읽었다. 이른바 교양독서층이 교인 중에도 상당히 많다. 한데 목사들만 모른다.

그들은 자기들의 설교를 매주 듣는 교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설교보다 훨씬 깊이있는 책들을 꽤 많이 읽고, 기독교에 대해 균형잡힌 고급 정보로 마음을 다듬은 이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필경 내게 전화를 건 목사는 내 책을 읽은 이들이 훨씬 뛰어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듯 몇 개 금서를 정하고, 위반자에게 호통을 쳤을 것이다. 그러고도 성이 풀리지 않아 만만한 내게 전화로 항의를 표했겠다.



사람들은 이런 목사들의 종교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이들이 훨씬 많은데도 세상에 눈에 뜨이는 것은 그런 목사들과 그들의 행태다. 그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그 손으로 세상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보이는 것만 보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교를 나는 ‘무례한 자들의 종교’라고 말한 바 있다.

그날 밤 어느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대학 선배와 그의 일행을 만났다. 선배는 나를 개신교 목사라고 소개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이 이상한 인사에 얼떨떨해하는 표정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해명의 말을 덧붙였다. “우리 시대에 개신교는 사과해야 하는 종교거든요.” 이 말이 나만의 과민함이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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