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용봉대향로는 말한다

박기숙 | 2010.10.20 18:45 | 조회 6429

백제 용봉대향로는 말한다

글 :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 운영진

백제 용봉대향로는 1993년 부여 능사(陵寺) 터에서 발굴된 백제문화의 걸작이다. 이것은 1971년에 발굴된 무령왕릉 유적과 더불어 백제사 관련 고고학의 최대 성과이며 모든 이의 탄성을 자아낼 이 세련된 향로의 발견으로 당시 동아시아의 최고 수준이었던 백제문화를 실감하게 되었다.


향로의 크기는 높이 64cm,무개 11.8kg이나 되는 대작으로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용이 입에 물어 올리는데 그 꼭대기에서 봉황이 날개짓하는 모습이다. 뚜껑에는 신선 세계를 나타내는 무수한 그림이 새겨졌다. 불사조·물고기·사슴·학 등 동물들, 다섯 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산봉우리, 기마수렵상, 피리·비파·북 등을 연주하는 악사들, 상상의 날짐승·호랑이·사슴에서 인도의 코끼리까지 낱낱 형상의 묘사 또한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단순히 이 유물의 화려함이나 세련된 기법만 바라본다면 그 진정한 가치를 바르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고대인들의 세계관, 문화정신을 보는 깊은 안목이 있어야한다.

만주 집안에는 거대한 고구려 광개토태왕비가 천하를 내려다보며 우뚝 서있다. 비문에 새긴 힘찬 필체에서 고구려인들의 강렬한 기백과 웅장한 천하관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용봉대향로에 승화된 백제인들 예술혼 속에서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 소망하던 모든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박산(博山)은 우리의 삼신산


그동안 국내외 고고학, 역사학계에서는 이 향로를 중국의 박산(博山) 향로를 기본으로 한다고 주장해왔다. 중국 문화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박산이란 무엇인가? 봉래산·영주산·방장산 등 삼신산을 말하는데 예로부터 중국을 기준으로 하면 동쪽 바다 건너의 신령스런 산이라고 한다. 일찍이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죽는 날까지 동경하며 가고 싶어 했던 동방의 삼신산.

그곳은 바로 우리나라였다. 동방에 우리 말고 있던가?

그러면 삼신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삼신산은 어떤 산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 중국에는 주(周)나라 무왕이 동이족의 현자 강태공의 지혜를 빌어 역사상 가장 잔혹한 폭군이었던 은나라 주왕을 몰아내고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

그 뒤 무왕이 일찍 죽고 어린 성왕을 주공 단이 섭정했는데 그는 동이족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기나긴 전쟁이 이어지고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동이족은 중원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한 뒤 그는 이국적이며 신비스런 동이족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방사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불로장생의 신선사상, 삼신산에 심취했다. 반면 공자를 받드는 유가사상은 분서갱유로 모질게 학대했다..

진시황은 동이족의 문화를 동경했다. 맹자가 동이족 출신이라고 밝힌 성군 순임금처럼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치러 상제로부터 천자로 인정받고 싶어했고, 동방 삼신산의 신선처럼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한나라의 정복군주 무제 때 이르러 삼신설과 신선사상은 황실의 보호를 받으며 중국 전역에 보급되었다.

당시의 역사가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史記)》에 의하면 사마상여가 한무제에게 아뢰기를 “폐하께서 겸양의 덕을 갖추시면 삼신의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했는바, 그 주석에 “삼신(三神)은 상제(上帝)님이시다.”고 했다.

삼신은 원래 상제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신선이 산다는 동방의 삼신산은 상제님의 산이라는 뜻이다.

태고적 요순시대의 동방 순임금도 동이겨레의 거주지였던 산동지역의 높은 산을 택하여 고조선의 삼신산에서 거행되는 천제의식을 옮겨 그곳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자 등극을 고하는 예를 올렸으니 봉선(封禪)의식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삼신하느님(삼신상제님), 삼신할미(한민족의 지모신 마고할머니), 삼신산이 있었다. 이 땅은 삼신문화, 상제문화, 신선문화의 본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민족의 시조이자 중국 도가의 시조인 황제 헌원도 장백산(백두산의 중국식 호칭)에 와서 동방의 자부선인에게 신선술을 배웠다고 전하고 제자백가의 도교 창시자 노자는 본래 초나라 출신인데 《사기》〈초세가〉에 따르면 초나라 왕들은 자신들이 한족이 아닌 동이족이라고 했으며 초나라 위정자 중에는 곰이나 쑥으로 이름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삼신산의 신선들은 누구일까?

바로 신시와 고조선시대 이 땅의 백성들을 오래오래 다스리신 역대 열조들이셨다. 시베리아의 천산, 천해(바이칼호)로부터 동방 태백산(백두산) 신단수에 풍백 우사 운사와 3천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와 신시를 개국한 환웅천왕께서는 토착민인 웅족과 호족에게 백일 동안의 동굴 수행을 통해 참 인간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셨다. 이후 자부선인, 치우천왕처럼 천도를 통하여 풍운조화를 뜻대로 하는 신령스런 제왕과 선인들이 이어졌으며 고조선을 개국하신 국조 단군왕검께서는 훗날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셨다고 했으며 (《삼국유사》), 《삼국사》, 《동국이상국집》 등에서는 ‘선인왕검(仙人王儉)’, ‘선인’이라 일컬었다.

동방 신시(神市)는 용봉문화의 뿌리

그런데 백제대향로에 또 다른 역사의 비밀코드가 있다. 그것은 삼신산의 위에 앉은 봉황과 연꽃을 하늘로 받쳐든 용이다.

봉황과 용은 동아시아 문화에서 성군의 상징으로 통하며 궁궐 곳곳에 장식한다. 하늘을 오르내리는 봉황은 전 세계의 신조 토템문화가 그렇듯이 태양을 상징하며 음양사상에서 천지의 불을 다스리는 신령스런 새로 태평성대를 이루고자 내려온다. (서양에는 매로 묘사된 태양신 호루스와 불사조인 피닉스가 있다.) 용은 천지의 물을 다스리는 영물로 여의주 물고 승천하여 비구름으로 만물에 은택을 내린다.


무릇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용봉은 하늘이 내린 성군, 즉 천자를 상징해왔다.


천자! 이것이 원래 중국이 아닌 우리 동방민족의 용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중국 후한시대 말에 채옹(蔡邕)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학문에 조예가 깊고 박식하여 삼국지에 나오는 만고의 간신 동탁마저도 채옹만은 예우했다고 한다.

채옹이 남긴 저서 이름은 《독단(獨斷)》이다. ‘홀로 단언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조정의 제도와 칭호의 시원을 밝힌 책이다. 천자의 호칭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단언한다. “천자의 호칭(天子之呼稱)은 동이(東夷)와 북적(北狄: 몽골, 흉노를 말함. 원래는 우리의 한 갈래)이 쓰는 호칭이니(夷狄之所稱) 하늘과 땅을 부모로 섬기는(父天母地) 까닭에 천자라 한 것이다(故稱天子).”


중국 한족들은 자신들을 천하의 중심으로 일컬어왔지만 우리 민족은 스스로를 하늘의 자손임을 밝혔다.

명실상부한 천자의 나라!


천자는 삼신이신 천지부모를 받드는 나라에서 쓰던 제왕의 호칭이지 한족들의 것이 아니었다. 한족의 제왕들은 다만 동방족이 그 땅에 남긴 천자사상과 천제문화를 빌어다 원구단이라는 천단에서 그리고 태산이라는 작은 삼신산에서 봉선을 거행했을 뿐이다. 우리의 옛 역사와 건국사화들은 한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다.

널리 알려진 광개토태왕비문, 《삼국사》만 봐도 고구려 창업자 추모왕을 ‘천제의 아들(天帝之子)’, ‘皇天之子’자라고 전하지 않던가?

앞서 언급한 용봉문화 역시 본래 한족의 것이 아니다.


과거 우리 농촌 들녘에 흔히 볼 수 있지만 한족 문화권에서는 볼 수 없는 솟대, 이것은 바로 봉황의 원형이다. 옛적 고조선을 이어 부여를 개국한 해모수는 머리에 까마귀 깃털로 된 관(봉조토템의 일종으로 삼족오를 상징)을 쓰고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차를 타고 하늘과 땅을 오르내린다는 건국사화가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세계 4대문명 외 제5의 문명이 세계 학술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요하문명! 고대 황하문명보다 이 요하문명이 훨씬 앞선 고대 아시아의 선진문명, 종주문명이라는 사실이 공인받고 있는 것이다.

요하문명은 중국인들이 자기들 역사를 과장하기 위해 발굴을 진행해왔지만 속속 드러나는 유적과 유물들은 그 문명의 주인공이 한족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라는 사실만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신석기 유물과 동형의 빗살무늬 토기와 옥기, 고조선의 그것과 동일한 청동기(비파형동검, 잔무늬거울)와 다양한 옥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의 것과 동일한 무덤양식(적석총, 석관묘)과 축성양식. 그리고 천자가 하늘에 제사 드리는 원구단(원형제단), 곰 토템을 보여주는 조형물과 옥기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국 역사학계를 당혹시킨 것은 사해(査海)에서 발견된 길이 20m의 용 조형물이다. 급기야 중국은 이 문명을 강탈하기 위해 황제 헌원이 곰토템족(유웅국)의 후예라는 그들 사서의 짤막한 기록을 근거로 동방의 거대한 요하문명을 황제 헌원의 것으로 귀속시키는 억지날조극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억지주장들은 황제 헌원이야말로 동이족의 한 갈래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들의 거짓말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은 또 하나의 새로운 거짓말로 만리장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용봉대향로는 말한다.


“부여의 후예이신 백제의 임금께서는 천지 삼신께서 내신 성군(天子)이시며 온 천하를 비추는 일월의 아들이시니 성스러운 봉황으로 내려오시어 태평세계를 여시고, 신령스런 용으로 오르시어 성덕을 베푸시도다. 그 분이 이끌어가는 나라는 조화로 다스려지는 신선의 세계이며 만백성이 부처가 된 용화정토(龍華淨土)의 세계이다. 사해만방이 천지의 대도로 다스려지니 진귀한 천하의 방물이 이 땅에 가득하고 오곡이 풍성하니 만백성이 성은을 노래하며 춤을 추도다.”


이처럼 부여의 후예 백제인들은 고구려와 같은 자주적인 천하관과 역사정신을 품고 고구려인들이 광활한 대륙을 말달릴 때, 풍랑을 가르며 대양으로 뻗어나갔으니 용이 되어 승천하고 봉이 되어 비상했다.


“고구려와 백제 전성기에는 백만 대군을 이루어 남으로는 오, 월을 쳐들어갔으며, 북으로는 연, 제, 노를 위협하여 중국의 큰 두통거리가 되었다.” (《삼국사》 권 46, 〈최치원전〉

그들을 아시아 역사의 거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항일투사 신채호가 밝힌 낭가정신, 바로 신교(神敎)였다. 최치원은 우리 고유의 사상인 풍류(風流)라 했고, 유불선 삼교의 정신을 이미 포함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역사학계는 지금도 망언을 일삼는 자들이 있다. 고구려, 백제는 단지 위진남북조의 혼란 와중에 어부지리로 국력을 신장하고 중국의 문물제도를 수용 모방한 중국의 변방사요 중국문화의 아류라는 것이다.

이들의 정신 속에는 중국을 높이고 제 조상은 오랑캐로 만든 모화사대정신, 일제에 나라를 팔고 동포의 피와 눈물로 살찌운 부일식민사관, 제 조상을 사탄으로 박대하는 철없는 외래종교, 거기에 실증사학의 도굴꾼 심보까지 팔팔하게 살아남아 강단에서 나라의 후학들을 매국지사로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먹구름이 해와 달을 영원히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은 거짓 속에 영원히 묻히지 않는다.

<부여 백제문화단지 사비궁 내의 용봉대향로 모형>

백제 대향로는 말한다. 한민족은 고대 인류문명사의 등불이었다. 우리 민족의 비운은 백제, 고구려의 멸망과 더불어 시작됐고 이후 1300년 동안 암울한 세월을 기다리며 잠들어 있었던 백제 용봉대향로는 이제야 신비의 광채를 드러내고 거짓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있는 것이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389개(284/160페이지)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회원게시판 이용수칙] 관리자 48001 2023.10.05
공지 상생의 새문화를 여는 STB 상생방송을 소개합니다. 환단스토리 208776 2018.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