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천금

피리 부는 사람 | 2010.10.10 22:24 | 조회 6356


새울 사는 최창조의 입문

태인 새울에 사는 최창조(崔昌祚)는 대농(大農)에 금광을 운영하여 살림이 유족한 부자라. 하루는 창조가 이웃 마을에 사는 김경학이 전심(專心)하여 상제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경학에게 묻기를 “무엇 때문에 그 양반을 그리 따라다니는가?” 하니 경학이 대답하기를 “그분 말씀을 들어보면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온다는데, 도술이 어찌나 높은지 귀신도 마음대로 부린다네. 그분 조화가 말도 못하네. 그분은 참으로 하느님이신 게 틀림이 없네.” 하며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침이 마르도록 말하니 창조가 귀가 솔깃하여 경학에게 청하기를 “나도 그분을 따를 수 있는지 한 번 여쭤 봐 주게나.” 하니라.


천금도통 최창조

상제님께서는 누가 따르고자 하면 대개 “나를 따르는 거야 제 마음이지, 내가 따르라 마라 하겠느냐.” 하시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데 경학이 상제님께 나아가 “저기 새울 사는 최창조가 선생님을 따르고자 하니 받아 주시지요.”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이미 아시고 “창조는 부자가 아니냐? 고폐금(告幣金)을 많이 바치라고 해라.” 하시는지라 경학이 여쭈기를 “얼마나 바치라고 할까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일신천금(一身千金)이니 고폐금 천 냥을 바치라고 해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이르시기를 “꼭 그렇게 전해라잉. 저 돈 아끼는 거나 내가 도(道) 아끼는 거나 매일반이라고 그래라잉.” 하시거늘 경학이 창조에게 상제님의 말씀을 전하니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창조가 이르기를 “일신천금인데 그것도 못 하겠는가? 내 천 냥을 바치고 당장 입도하고말고.” 하며 기꺼이 상제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하니라. 이에 곧바로 인부 열 사람에게 각기 백 냥씩 천 냥을 지우고 경학과 함께 상제님을 찾아뵙고 따르기를 청하니 상제님께서 그 정성에 감탄하시고 무릎을 치시며 “천금도통 최창조(千金道通 崔昌祚)로다!” 하시니라. 이로부터 상제님께서 백암리와 새울을 오가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176장 나승렬 증언.

176:1 새울. 현재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에 있는 상일, 중일, 흥이, 흥삼의 네 마을을 가리킨다. ‘새’는 봉황(鳳凰), ‘울’은 둥지를 의미하며, 봉황이 둥지를 틀고 앉아 알을 품은 형국으로 제3변 결실도운의 큰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176:1 최창조(崔昌祚, 1865~1935). 본관 경주. 정읍시 옹동면 매정리에서 부 주한과 모 김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상제님을 추종하던 시기(43세 입문)에는 새울에서 살았다. 2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장창엽과의 사이에서 아들 상열을, 최씨와는 3남 3녀를 두었다.

176:9 일신천금. 옛날에 관리들이 천 냥을 횡령하면 사형을 당한 데서 유래한 말. ‘천 냥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목숨 값’이라는 뜻이다.


증산도 『도전』 4편 176장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 사람도 있고, 말 한마디로 만냥 빚을 얻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의 화폐 가치를 오늘날로 환산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만, 1920년대에 80KG들이 쌀 한 포대에 5원을 했다 하니 지금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쌀 20KG이 4만 2천원 내지 4만원 정도 합니다.80KG면 16만원 정도 하니 90년 전과 지금의 쌀 한 포대의 가치 비교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당대 김형렬 성도님 댁에서는 이 쌀 한 포대가 없어 어려웠다고 하니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쌀 한 포대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때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때에 일천냥을 가지고 있었다면 상당히 큰 부자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살기가 요족해야 다른 것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있나 봅니다. 최창조 성도님은 김경학 성도님께서 상제님을 따르는 것을 보시고 최창조 성도님도 상제님을 따를 수 없는지 여쭤봐 달라고 하시는데, 상제님께서는 최창조 성도님이 부자인걸 아시고 고폐금으로 천냥을 요구하셨습니다.

도대체 최창조 성도님은 왜 상제님을 따르고 싶었던 것일까요?

김경학 성도님의 상제님이 귀신도 마음대로 부린다는 말씀과 조화가 말도 못할 정도로 높으시고 하느님이신게 틀립없다는 솔깃한 말씀이 가슴에 와 닿기 전에 분명 김경학 성도님에 대한 신뢰나 김경학이란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인간적인 존중심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것을 갑자기 권하면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도 있으련만 말입니다.

이는 김경학 성도님이 가지고 있으셨던 인품이 고매하셨고, 무엇보다 동학의 시천주 수행을 하시며 천상 보좌에 임어하신 상제님을 뵙는 구도의 열정이 평소에 생활속에서 드러나 있었고 이에 반한 최창조 성도님이 김경학 성도님과 함께 하고 싶어했던 상태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내 자신의 조그마한 행동 하나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관찰의 대상이 되고 내 자신이 속한 상황속에서 내 자신 하나하나의 행동과 말과 생각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는 판별의 대상이 되니 참으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겠구나 하는 뒤늦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도기 140년 10월 10일 오후 10시 23분

피리 부는 사람, psuk03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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