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송과 초립동이

만국활계 | 2010.09.26 23:33 | 조회 6268
이여송과 초립둥이
――외세의 본질을 꿰뚫는 백성들의 눈

서정오 | 2007년 10월

오늘은 임진왜란 때 이야기 하나 할까. 왜적들이 서울을 쑥대밭 만들고 평양까지 집어삼키니, 나라에서는 어지간히 급해 놨던지 명나라에 청병을 했단 말이야. 그때 명나라 군대를 이끌고 온 장수가 이여송인데, 이 치가 조선에 들어와서 참 거들먹이 머리 꼭대기에 올랐던 모양이야. 그도 그럴 것이, 명색 구원군 대장쯤 돼 놓으니 임금도 그 앞에서 맘대로 못할 만큼 권세가 하늘을 찔렀거든.

이 이여송이가 압록강을 건너 조선땅에 발을 턱 들여놓자마자,

“소상반죽 젓가락에 용의 간을 구해 오너라. 그것 못 구해 오면 왜군보다 조선을 먼저 칠 것이다.”

이러고 으름장을 놓네. 소상반죽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 두메산골에서 나는 귀한 대나무인데 그걸 당장 어찌 구해 오며, 하물며 용의 간을 무슨 수로 구해 와? 나라에서는 난리가 났지. 소상반죽과 용의 간을 구해 오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고 온나라에 방을 붙였어. 평안도 백성들이 소문을 듣고, 천태산 마고할미한테 제사상을 차려 놓고 빌었어.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가 군대를 끌고 와서 트집을 잡으니, 원컨대 소상반죽 젓가락에 용의 간을 내려 달라고 말이야.

빌고 나서 그 다음날 보니까 묘향산 기슭에 소상반죽이 지천으로 솟아나 있더라네. 한 대 잘라서 젓가락을 만들었지. 그러고 났더니 압록강가에 용 한 마리가 내려와 겨드랑이로 간을 빼 놓고 올라가거든. 그래서 소상반죽 젓가락과 함께 이여송이한테 갖다 바쳤어. 이여송이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랐지.

‘야, 조선에 인재가 많다더니 그 말이 과연 옳구나. 일반 백성들이 이럴진대 도대체 영웅은 몇이나 된다더냐.’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다음부터 그저 조선에 영웅 나는 것 막으려고, 그저 자나깨나 그 궁리뿐이야.

얼추 난리가 끝나고 인제 이여송이도 제 나라로 돌아가야 할 판인데, 이 치가 돌아는 안 가고 삼천 리 방방곡곡 다니면서 명산의 혈을 끊네. 영웅 나는 것 막으려고.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명산이란 명산은 다 찾아다니면서 혈을 끊는단 말이야. 칼로도 끊고 창으로도 끊고 쇠말뚝으로도 끊고, 이러는 판이야. 그 짓을 하다가 하루는 지리산 밑에 진을 치고 쉬는데, 초립둥이 하나가 나귀를 타고 바로 앞을 딱 지나가더래. 이여송이가 그만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어. 아 자기로 말하면 구원군 대장으로서 정승판서라도 제 앞에서는 말을 못 타는 법인데, 조그만 아이가 나귀에 올라앉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지나가니 괘씸하기 짝이 없단 말이야. 당장 날랜 군졸을 불러서 호령을 했지.

“저놈을 어서 잡아오너라.”

군졸이 말을 타고 초립둥이를 쫓는데, 아 어찌된 일인지 따라잡을 수가 없어. 아무리 말에 채찍질을 해서 기를 쓰고 따라가도 딱 서너 걸음 못 미쳐. 초립둥이는 나귀를 탄 채 뒤 한 번 안 돌아보고 어슬렁어슬렁 가는데, 글쎄 그걸 못 따라잡는 거야. 하루 종일 따라가다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 됐는데, 이때 초립둥이가 나귀를 멈추고 길가 너럭바위에 떡 올라앉더니,

“너는 어서 돌아가서 네 대장에게 내가 잠깐 보잔다고 일러라.”

이러거든. 뭐 어쩔 수가 있어? 돌아가서 대장한테 그대로 고했지. 그 초립둥이를 하루 종일 따라갔는데도 못 잡았노라, 아무 데 너럭바위에 올라앉아서 대장을 보자고 하더라, 이렇게 말이야. 이여송이가 그 말을 듣고 말을 달려 그곳에 가 봤어. 가 보니 과연 그 초립둥이가 너럭바위에 앉아 있는데, 비록 몸뚱이는 작아도 눈빛이 시퍼런 게 보통내기가 아니야. 이여송이가 바위에 올라서니까 초립둥이가 삼천 근 무쇠방망이를 허리춤에서 꺼내어 이여송이 이마 위에 턱 올려놓는데, 그게 어찌나 무거운지 고개를 못 들어. 아, 이여송이로 말할 것 같으면 명색 큰 장수로 힘도 세고 담도 커서 평생 누구한테도 눌려 본 적이 없는데 무쇠방망이 하나에 그만 옴짝달싹을 못 하게 됐어. 무쇠방망이를 머리에 이고 그냥 벌벌 떨고 서 있는 판이야.

“네 이놈, 너는 난리가 끝났으면 얼른 네 나라로 돌아갈 일이지 무슨 속셈으로 남의 나라 명산의 혈을 끊고 다니느냐? 당장 못된 짓을 그만두고 돌아가지 못할까!”
호통이 서릿발 같으니 어떻게 해?
“예, 예. 당장 돌아가겠습니다.”

이여송이가 혼이 다 빠져서, 그 길로 군사들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허겁지겁 제 나라로 돌아가더라는 이야기.

임진왜란 뒤에 생긴 것으로 짐작되는 광포 전설 중에는 뜻밖에도 이여송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학교에서 역사라는 것을 배운 사람은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이여송은 임진왜란 때 관군을 도와 왜군을 물리치려고 온 구원군 대장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 구원군 4만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다. 평양성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를 크게 무찔렀으나, 벽제관에서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군대에 크게 패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처지가 되었다. 그 뒤 화의로 사태를 수습하고 그 해 말에 명나라로 돌아갔다. 이런 이여송이 왜 백성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그 까닭을 알아 보기 전에, 먼저 이여송을 두고 전해지는 이야기의 큰 윤곽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이여송에 관한 자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글로 적혀 전해지는 것이요, 하나는 말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글로 적혀 전해온 자료를 보면, 사실에 충실한 기록과 함께 대체로 좋은 평가가 눈에 띈다. ‘키가 크고 품위가 있는 장부다운 사람’이며 시를 잘 쓰고 계략에 뛰어난 장군이라 했고(『징비록』) ‘명나라 제일의 장수’로서 ‘평양성 전투의 승리는 가장 빛나는 전적으로 영원히 우리 겨레와 더불어 빛날 것’이라고 추켜세우며 싸움에서 진 경우는 참으로 아까운 일로서 ‘옥엔들 티가 없으리오.’ 하고 미화하는 것이다.(『임진왜란사』, 임재해의 『민족설화의 논리와 의식』 223∼224쪽에서 거듭 따옴) 말로 전해 오는 이야기는 이와 달리 좋지 못한 평가로 뒤덮여 있으며 때때로 강한 적개심도 드러내 보인다. 그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 이여송이 명산의 혈을 끊다가 초립둥이(또는 노인, 아낙네)한테 혼나고 쫓겨 간다는 이야기, 둘째 이여송이 귀한 물건을 구해 오라며 무리한 트집을 잡지만 이인(또는 백성)이 나서 이를 해결한다는 이야기, 셋째는 이여송이 어려움에 처하자 조선 사람이 그를 구해 준다는 이야기다.

이여송이 조선 사람의 후손이라는 대목은 기록된 자료와 구전 이야기에 두루 보이는데, 이때도 시각은 사뭇 딴판이다. 즉, 기록된 자료가 이여송과 조선의 핏줄로 맺어진 친분을 강조하는 데 반해, 구전이야기는 이여송이 조선 사람의 후손이면서도 조선 땅의 혈을 잘라 마침내 자기 자신도 망하게 됐다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이로써 우리는 이여송에 대한 기록된 자료와 구전 이야기의 시각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글을 가까이한 권력자들과 말로 살아온 백성들의 눈길이 달랐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명나라 군사가 조선에 들어온 것은 자기네 이익을 위해서였다. 알다시피 왜군은 명나라를 칠 길을 열라는 명분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명나라는 조선의 청병을 ‘이가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는 논리로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에 들어온 명나라 군대의 행패가 도를 넘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이여송이 이끈 명군은 조선 백성 수만 명을 왜군과 내통했다는 죄를 덮어씌워 죽였으며, 전공을 부풀리기 위해 죄 없는 양민을 마구 학살했다. 조정에서조차 ‘이여송이 싸움터에서 베었다고 하는 머리의 절반이 조선 백성이며, 물에 빠지고 불에 타 죽은 만여 명이 조선 백성’이라고 적었을 정도다.(『선조실록』, 임재해의 같은 책 227쪽에서 거듭 따옴)

이런 형편에서 ‘구원군’인 명군과 ‘침략군’인 왜군은 무엇이 다른가? 조정 권력자들의 눈으로 보면 어쨌거나 명군은 구원군이었겠지. 왜군으로부터 정권을 구해 주러 왔으니까. 하지만 백성들 눈으로 보면 왜군이나 명군이나 똑같은 외세일 뿐이었다.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행패로 본다면 명군은 왜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런 형편에서 명군 대장 이여송에게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겠다.

이것이 바로 구전 이야기에서 이여송이 좋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진 까닭이다. 이 경우 이여송은 자연인이 아니라 외세의 상징이다. 백성들은 비록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지만, 그 어떤 벼슬아치보다도 외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벼슬아치들이라고 해서 외세가 정말로 나라를 구해 주리라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감투와 자리를 보전하는 데 외세가 필요했고, 그래서 떠받듦에 앞장섰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약한 나라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외세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민속학자 임재해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당군과 명군이 이 땅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주한 미군 문제도 역사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 민중은 미군들이 우리 산천의 혈을 자른 이야기들을 다양하게 생산해서 전승하고 있는 상황이다.’(임재해의 같은 책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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