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오웰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만국활계 | 2010.09.29 14:18 | 조회 6216
오웰의 작가론…“글쓰기는 결국 정치적이다”
이기적·미학적·역사적 욕구 있지만
본질적으론 비판적 목적임을 고백
한겨레 허미경 기자 메일보내기
» 조지 오웰(1903~1950)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지음·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1만8000원

왜 쓰는가. 이에 답하지 못한다면 작가가 아니다. 기자도 아니다. 정답은 없다. 작가 겸 기자였던 조지 오웰(1903~1950)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나를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그런 따위의 욕구다. <1984>와 <동물농장>을 쓴 치열한 작가이자 <카탈루냐 찬가>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쓴 위대한 기자였던 오웰이 고백하는, 글쓰기의 제1 동기다.

오웰은 말한다. 이기심이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사람들 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서른살쯤이면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인데, 끝까지 제 삶을 살아보겠다는 고집 센 인간들이 있다. 작가는 이 부류다. 혹시, 제 이기심을 접은 채 겨우겨우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오웰의 이 통찰을 비빌 언덕 삼아 ‘불꺼진 욕망’을 되지펴 보자.

오웰은 글을 쓰게 하는 힘을 네 가지 욕구로 꼽는다. ‘순전한 이기심’에 뒤이은 제2, 제3의 동기는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충동인바 ‘미학적 열정’은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다.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주는 묘미,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다. 글꼴이나 여백 따위에 대한 매혹일 수도 있다. ‘역사적 충동’은 기록 욕망이다. 사물을 있는 대로 보고 진실을 후세에 보존하려는 욕구다. 영국 탄광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삶을 기록한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스페인 내전 참전기 <카탈루냐 찬가>를 쓴 기자 오웰이 고백하는 글을 쓰는 이유다.

영어판만 해도 4천만부 넘게 팔렸다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 오웰이 꼽는, 글을 쓰는 마지막 네번째 욕구는 ‘정치적 목적’이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다. 정치와 예술의 분리 담론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오웰은 말한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는 작가 오웰이 스스로 밝히는 작가론, 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폐결핵으로 숨지기 4년 전인 1946년에 발표한 글이다. 오웰은 생전에 책으로 묶인 소설(6권)과 르포(3권), 에세이집(2권) 외에도 수백 편의 에세이를 썼다. 이번에 출간된 <나는 왜 쓰는가>는 표제작을 비롯해 1931년부터 1948년까지 발표된 글 29편을 골라 번역한 ‘오웰 에세이 선집’이다. 오웰은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환멸과 반감을 안겨준 식민지 버마에서의 5년 생활을 접고 20대 후반에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는데, 당시 부랑자수용소 생활을 하며 쓴 ‘스파이크’, 영국의 애국주의와 지배계급을 논한 ‘영국, 당신의 영국’, 어린 시절 자신을 ‘훈육’했던 상류층 기숙학교의 속물성과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담은 ‘정말, 정말 좋았지’ 들이 실렸는데, 이 가운데 21편이 국내 초역이다.

오웰은 평생 비타협적인 ‘비판적 개인’으로,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며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이를 위해 행동했던 작가다. 반파시즘, 반전체주의는 책상물림이기를 거부한 작가 오웰의 젖줄이다. 오웰은 자신의 ‘정치적’ 작가론이 완성된 시기를 파시즘에 맞서 싸우러 스페인 내전 현장으로 달려간 1936년과 1937년으로 잡는다. 그 뒤부터 “나는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우리 시대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 건 난센스다. 그저 어느 쪽을 편들고 어떤 접근법을 따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오웰이 스스로 밝히는 바, “나의 (글쓰기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 시작되지만 그 글쓰기는 그 자체로 “미학적인 경험”이다. 오웰에게 글은 미학적 경험이자 정치적 목적, 곧 공공의식의 발현이지만 그 밑엔 허영심과 이기심이 있으며 더 깊은 밑바닥엔 ‘귀신’과도 같은 미스터리가 놓여 있다고 그는 고백한다. “책을 쓴다는 건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결코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오웰은 대여섯살 적부터 커서 작가가 되리라 믿었다고 했다. “섬세한 묘사와 빼어난 비유가 가득한 글, 소리 위주로 낱말을 구사하는 현란한 구절이 가득한, 아주 묵직한 자연주의 소설을 쓰고 싶었던” 열여섯살 문학소년 오웰은 나이 마흔셋에 이르러 “기발하게 쓰기보다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온”(‘나는 왜 쓰는가’) 작가로 성장했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돼 있던 때였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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