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빈손으로 돌아간다. 하셨는가?

박덕규 | 2010.08.25 03:43 | 조회 6633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요 저희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라. 모든 일을 분명하게 잘하여 주고 갈 때는 품삯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5:177]


상제님께서 제국주의 서구열강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하기위해 잠시 일본에 의탁하신 천지공사 내용에서 주목할 것은 '왜 일본은 빈손으로 돌아가리니'라 말씀하셨는가입니다.

당시 일본이 서구열강을 제치고 조선을 병탄하게 된 과정에는 물론 러일전쟁과 청일전쟁에서의 승리와 가쓰라-태프트밀약이나 포츠머스조약등 조선에 관한 지배권을 국제적으로 밀약받고 강제병탄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다른 시각에서보면 미국 등 서구 열강이 조선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건설이 그 시대의 글로벌 대세라 할 지라도, 재미있는 사실은 제국주의의 주도자들인 서구 열강들은 비교적 당시 조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식민지는 착취할 자원이 많거나, 자신들의 공산품을 소비할 인구가 많은 땅이었지 적은 인구와 빈약한 자원을 가진 조선 같은 나라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일본이 지정학적인 여건 상 대륙진출의 발판으로서 조선이 매력적이었다.
허나 당시의 일본은 서구 열강과는 달리 개항 후 신식문물을 받아들인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이어서 국내의 자본을 국외로 유출, 투자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조선의 최후>, 김윤희


상제님께서 하루는 “조선 국운을 일본에게 맡기려면 명치(明治)를 불러와야 하리니 이제 명치의 혼을 부르리라.” 하시고 명치를 불러 물으시기를 “네가 조선 일을 보겠느냐?” 하시니 명치가 아뢰기를 “아무 보답도 없이 인명만 상할 터인데 어찌 남의 일에 쉬이 나서겠나이까?” 하며 완곡하게 사양하고 물러가니라. [5:55]


명치.
명치明治(1852~1912)

다만 주의할 것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하면서 결과적으로 얻었던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일본이 조선의 식민지배를 통해 조선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일부 일본 학자들의 일부 의견과는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메이지정권의 뿌리 '요시다 쇼인'과 야마구치현

메이지


상제님께서 일본에게 조선을 의탁하는 공사를 보실때 '명치' 즉 메이지를 불러 공사를 보셨는데 이 메이지 정권의 실세가 바로 정한론(征韓論)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두 제자가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이고.
그 외에도 가쓰라-테프트 밀약과 포츠머스 조약 체결의 주역인 가쓰라 다로, 조선 초대총독 테라우치와 2대 총독 히세가와가 모두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며 특이한 것은 이들이 모두 야마구치현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야마구치현의 지배자, 백제 왕손

야마구치현은 백제와 신라가 원수지간이 되어 결국 백제가 패망하게 되는 원한의 뿌리 '성왕'의 셋째 아들인 임성태자가 망명한 곳으로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고, 일본의 비불이 된 왕이며 (일각에서는 일본 천황이었다는 설도 있음), 그의 아들 임성태자는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구치현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제철방법등 백제의 선진문화를 전파하고 오우치(大內)가라는 막강한 세력을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이 오오치가는 후에 고려말과 조선초에 걸쳐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혔던 해적이자 해상세력이기도한 왜구의 막강한 실력자였으며 후에 조선 조정의 회유책으로 조선장군에 임명되어 왜구토벌에 앞장서기도합니다.


즉, 백제는 멸망하였지만 그 왕가의 후손들과 문화가 살아남은 뿌리가 되는 곳이 야마구치 현이고, 그 야마구치현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인 '정한론'과 '메이지 유신'의 실세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없습니다.



정한론의 뿌리, 임진왜란

정한론
정한론 만화


"임진왜란은 7년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전쟁을 기화로 일본의 의식 속에 정한론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300년 뒤에 일본은 다시 침략해왔고 패전한 뒤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박덕규

일본은 임진란 후로 도술신명(道術神明)들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넘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5:177]


또 재미있는 것은 정한론을 앞세운 이토 히로부미등은 '서구제국주의로부터 동양의 평화를 지키기위한 명분'으로 조선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였고, 이것은 최종목적인 대륙침략 야욕을 가리기위한 허울좋은 '명분'에 불과한 것이지만,

막상 이토 히로부미에 관한 자료들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야욕을 넘어,'신념'에 가까운 이토 히로부미의 '잘못된 진심(?)'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일례로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을때 순종이 "이토 공작이 있기에 한국이 존속할수있었다. 지금 공작을 잃으니 국운이 이미 다 하였구나, 조선의 사직도 여기까지로구나."라고 한탄한 것을 단순히 '망언'으로만 볼수없는 복잡한 국제관계가 당시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의 시각으로보면 조선을 강제병합한 일제의 침탈은 씻을수없는 치욕이며, 한탄스러운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단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내막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일본 사람이 미국과 싸우는 것은 배사율(背師律)을 범하는 것이므로 장광(長廣) 팔십 리가 불바다가 되어 참혹히 망하리라.” [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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