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진정한 휴머니스트 예술가, 앙드레 김 별세

진성조 | 2010.08.13 23:33 | 조회 5951

'앙 선생님', 이렇게 사셨는줄 몰랐습니다

오마이뉴스 | 입력 2010.08.13 15:25




[오마이뉴스 하성태 기자]





13일 오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앙드레 김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 뉴시스
부고기사를 쓰는 일이란 꽤나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생의 유한함을 일깨우기도 하고, 유명인일 경우 망자에 대한 개인적 추억을 곱씹게도 만들지요. 오죽했으면 < 클로저 > 의 주인공이자 부고기사 전문 기자 댄은 어떻게 하면 생전 고인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을까가 최대 고민이었을까요.

그가 떠난 첫 번째 새벽, 무섭게도 비가 내렸습니다. 혹자는 '하늘도 울었다'라는 문학적 표현을 쓸지도 모를 일이지요. 흰색으로 각인된 그가 떠난 첫날밤이 그렇게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 앙드레 김.

유명인들이 떠난 자리에는 대중들의 무수한 '평'이 남습니다. 심지어 자살한 유명 여배우에게 악플을 다는 이들도 있었으니 더 말하면 무엇 할까요. 그러나 의아할 만큼,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선생 부고 소식에는 애도와 상찬, 안타까움의 수사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가 그만큼 사회적인 존경과 유명세, 그리고 호감을 동시에 받았다는 방증이겠지요.

그런데 문득 인간 앙드레 김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나 하는 점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연예인들의 단골 성대모사와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의상, 말투, 그러니까 일종의 '캐리커처'로만 남은 것은 아닌가 합니다. 앙드레김 당신은 누구셨습니까?

하늘에서도 옷을 만들 그의 안타까운 죽음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민간 문화외교 사절…. 유달리 최초란 수식어가 많이 따라 붙는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2005년부터 대장암과 싸워오다 최근 폐렴에 의한 합병증으로 유명을 달리한 그의 나이는 향년 75세였습니다.

"따뜻하게 함께 녹화해 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의 의상이 더 예뻐지겠네요. 환한 그 미소로 내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트위터에 올린 추모 글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기억하는 앙드레 김은 항상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어눌한 듯 화려한 수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유명인이었습니다. 그 중심에 패션이 있었고 또 예술과 인간, 한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었지요.

"참 제가 존경스럽다고까지 느꼈습니다. 그런 분이 기부라는 것을 이렇게 지속적으로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 분 덕으로 유니세프에서 아주 유명한 연예인들도 저 또한 많이 구경하고,(웃음) 우리 유니세프가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우리 시대 또 다른 어른인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기억입니다. 기부에 관심이 많았던 앙드레 김 선생은 원빈과 같은 스타들을 유니세프에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관심은 단지 패션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과 한국이라는 이 땅에 맞닿아 있었던 거지요. 문득 소년, 청년 앙드레 김이 궁금해졌습니다.

기차와 영화를 사랑했던 청년 앙드레 김





2008년 9월27일 저녁 서울 압구정동 도산공원 앞 야외무대에서 강남패션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앙드레 김 패션 판타지아' 모습.
ⓒ 뉴시스
지난해 9월 방영된 < SBS 스페셜 > '앙드레 김 - 일곱겹 인터뷰로 그리다'에는 그런 앙드레 김의 젊은 시절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를 '패션'으로 이끈 것이 영화였다는 점이었습니다. 1935년생이니 그는 분단세대이기도 한데요. 서울에 살던 그는 피난지였던 부산에 정착했고, 그의 꿈과 열정을 북돋운 것이 바로 영화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패션이라는 단어하고 디자이너라는 단어가 전혀 상식화 안 되어 있을 시대거든요. 그 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아! 나는 의상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죠." 전쟁의 피로감과 혼란이 지속됐던 그 시절, 앙드레 김을 매혹시킨 것은 오드리 햅번의 영화들과 또 영화 속 의상이었지요. < 사브리나 > < 티파니에서 아침을 > < 로마의 휴일 > 등을 보며 청년 앙드레 김은 '우아하고 판타스틱한' 의상들에 매료되었을 겁니다. < 시네마 천국 > 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고요?

그리고는 국제복장학원을 1962년에 졸업하고 소동공에 의상실을 설립하게 됩니다. 국내 첫 남성 패션디자이너의 탄생이었지요.

시계를 더 돌려보면, 좀 더 아련한 그의 꿈을 알 수 있습니다. 1947년, 구파발에서 뛰놀던 중학생 앙드레 김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기차였다고 합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 그 꿈을 싣고 달리는 기차. 드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이 그를 영어공부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역시나 그는 선구자적인 기질을 타고 난 것으로도 보입니다. '영화'와 '기차', 앙드레 김의 꿈은 꽤나 드라마틱했습니다.

세계 속 한국을 알린 '앙드레 김 여사'

소공동에 그가 의상실을 열었던 때가 그의 나이 27살. 그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나라 최초 여성복 디자이너였던 그는 '혁신적인', '새로움', '특별함'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지만, 또 1963년 1월 대한뉴스에 '앙드레 김 여사'로 소개되는 해프닝도 겪어야 했답니다.

'패션'이란 단어가 생소했던 그 시절, 최초로 남성이면서 여성복을 디자인했던 그는 언론과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특히나 '서구적'이면서도 그 안에 '한국적'인 인장을 찍은 의상들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세계에서도 주목을 받게 할 만한 것이었죠.

결국 1964년부터 미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을 돌며 패션쇼를 열게 됩니다. "동양에서 온 혜성 패션쇼를 열다"(1966년 < 르몽드 > ), "그의 패션쇼는 선경의 마술이다"(1966년 < 르피가로 > )라는 찬사까지 얻었으니 국내에서 그는 진정 입지전적일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렇게 자신감을 얻은 그는 그 이후 전세계를 돌며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1968년에는 뉴욕에서 패션쇼를 개최하게 되지요. 현재 돈으로 16억 원에 달하는 주문을 받은 그는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걷게 됩니다.

영원한 휴식에도 쓸쓸해하지 않기를





앙드레 김
ⓒ 뉴시스
그러니까 샌프란시스코에 '앙드레 김의 날'이 있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었던가요? 그렇다면 마이클 잭슨이 수십 벌에 달하는 그의 옷을 구입했다는 사실은요? 1980년대에 이미 미스유니버스 대회 지명디자이너로 활동하고, 또 이탈리아 대통령 문화공로 훈장을 수상했으며, 2000년엔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탔다고 하니, 이쯤되면 '걸어 다니는 한국 홍보대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어쩌면 그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통과해 온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과 분단을 통과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무기로 세계인과 상대해 빛나는 성취를 이뤄낸 인물로 말이지요. 더불어 그가 압축성장을 이뤄낸 한국의 1970~80년대 문화와 예술을 풍성하게 만든 큰 축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세계평화아동축제 아동평화대사나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 등 자선활동에도 깊숙이 관여하며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는 면에서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를 사랑한 만큼, 패션을 더 넓게 예술로 이해하는 동시에 또 인간을 위한 예술을 하려고 노력한 앙드레 김.

"저는 사실 새 달력이 나오면 연휴가 주말하고 겹쳐지길 바라요. 왜 그러느냐 하면 연휴가 주말에 있고 또 연휴가 계속되면 너무 지루해요. 쉬는 자체도 소중하고 많은 분들이 모든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서 쉬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히 이해가 되지만, 저는 계속 일하고 싶어요. 일요일에도 나와서 반나절은 일을 해요. 그래서 일요일이 되면 쓸쓸해요. 연휴 되면 더욱 더 쓸쓸하고요." 이제 앙드레 김 선생은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욱 쓸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제동씨의 예상대로 선생은 하늘에서도 천사들의 옷을 '한국적'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쓸쓸하지 않을 실 것만 같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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