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플레이션

신상구 | 2022.05.24 02:30 | 조회 223 | 추천 0




초(超)인플레이션

①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23년 독일에서 화폐를 벽지로 쓰고 있는 모습. 당시 독일 중앙은행이 화폐를 줄줄이 찍어내면서 화폐 가치가 심각하게 떨어졌어요. ②2차 세계대전 후 헝가리에서 발행된 0이 20개 들어간‘1해’짜리 지폐. ③독일에서 발행된 100조(兆)마르크 지폐. ④독일에서 발행된 1조마르크 동전(왼쪽)과 500만마르크 동전. /위키피디아


지금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Inflation)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어요. 인플레이션은 물건 값이 계속 오르면서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올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김밥, 라면, 삼겹살 값 같은 게 줄줄이 오르면서 비상이 걸렸죠. 지난 3월 한 달간 우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1%로 월(月) 상승률로는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았어요. 미국은 더 심각해서 3월 상승률이 8.5%로 41년 만에 가장 높이 뛰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물가가 뛰는 이유는 우선 코로나 확산 우려 때문에 전 세계 물건 이동이 줄어든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물건들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에요.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인데 두 나라가 전쟁을 하니 밀과 석유제품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물건 값이 뛰게 된 거죠. 이런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초(超)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이 나타나는데 이러면 더 큰 사태가 벌어집니다.

은화에 은 함량 줄인 로마

광대한 제국을 만들어 오랫동안 번영을 누린 로마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고전했어요. 211년 카라칼라 황제는 반대 세력 2만명을 제압하고 왕위에 오릅니다.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군인들에게 보너스를 많이 줬어요. 그런데 너무 많이 주다 보니 국가 재정이 바닥이 났고, 나중엔 은으로 만들던 은화(銀貨)에 구리를 점점 더 섞어 나눠주기 시작해요. 215년 만든 새 화폐 '안토니니아누스'는 은 함량이 50%까지 낮아집니다.

은이 반밖에 안 들어가니 사람들은 은화 가치를 낮게 보기 시작했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은화를 더 많이 요구했죠. 그러자 2세기 동안 안 오르던 밀 값이 200배나 오르기도 했고, 그 뒤 50년 동안 황제가 26명 바뀐 군인황제시대(235~284년)에도 은화 은 함량은 5%까지 떨어지면서 물가 폭등이 이어졌죠. 이 시기 밀 값이 3000배 올랐다고 해요. 외국에선 로마 화폐를 안 받겠다고 하고 이런 인플레이션이 반복되면서 로마제국은 몰락하게 됩니다.

독일 초인플레이션으로 히틀러 등장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플레이션은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나타났어요. 독일이 전쟁에서 지자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 등이 거액의 전쟁 배상금을 요구했는데 그 규모가 1320억마르크(약 320억달러)에 달했어요. 지불도 마르크가 아니라 금이나 외환으로 하도록 했고요. 당시 독일 1년 세입(歲入)이 70억마르크 정도였다니 얼마나 큰 액수였겠어요.

배상금을 마련하고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독일 정부는 국채(國債)를 마구 발행하고 중앙은행이던 라이히스은행(Reichsbank)은 화폐를 미친 듯이 찍어냈어요.

화폐는 넘쳐나고 물건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화폐 가치가 급락했죠. 0.3마르크였던 신문 한 부 값이 1923년 말 2000억마르크가 됐고, 빵 1㎏ 가격은 4280억마르크, 우표 한 장은 1000억마르크에 달했어요. 빵 하나 사려고 돈을 수레에 싣고 가야 할 정도가 되자 중앙은행이 고액권을 계속 발행해 1923년 1만마르크 지폐를 시작으로 5만, 10만, 20만, 나중에는 1조(兆), 100조마르크 고액권 지폐까지 나왔어요. 돈이 휴지 조각이 된 셈이죠.

회사에서는 월급을 하루 단위로 줘야 했어요. 돈 부피가 너무 커져서 한 달 단위로는 갖고 갈 수 없는 상황까지 됐기 때문이죠. 집에서 수레를 갖고 와서 봉급을 가져가는 일이 자주 벌어졌고, 물건을 살 때도 수레에 돈을 싣고 가야 할 정도였는데 수레 가치가 수레에 쌓인 돈 가치보다 높아 사람들이 수레는 훔쳐가도 돈은 그대로 뒀다고 하네요.

독일 정부는 나중에 화폐 개혁으로 어떻게든 인플레이션을 잡아보려 했지만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독일 경제는 치명타를 입습니다. 정부가 비틀거리자 아돌프 히틀러(1889 ~1945)라는 독재자가 나타나 '강한 국가 강한 민족'을 외치며 국민들을 사로잡았고, 이는 나중에 2차 대전으로 번지는 계기가 됩니다.

2차 대전 후 헝가리도 최악 인플레이션

2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 역시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합니다. 2차 대전에서 독일 편에 선 헝가리는 독일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한 이후 연합국과 비밀 협상을 벌입니다. 분노한 히틀러는 1944년 헝가리를 침공해 친(親)나치 정부를 수립했는데, 헝가리 통치자였던 호르티가 같은 해 8월 정부를 전복해 반(反)나치 정권을 세워요. 하지만 한 달 뒤 히틀러는 다시 친나치 정부를 만들었고, 헝가리는 반으로 쪼개지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독일 힘이 빠지자 헝가리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됐어요. 통화 발행권을 가지고 있던 친나치 정부는 화폐를 마구 찍었고,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됐어요.

1944년 헝가리 지폐에서 가장 큰 단위는 1000펭괴였는데, 1945년 1000만펭괴 화폐가 만들어지더니 1946년에는 무려 0이 20개나 붙는 '1해(垓)'짜리 지폐가 나왔어요.

당시 헝가리는 전쟁으로 산업 시설 40% 이상이 파괴되며 수도에 물자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는데요. 이런 상황과 겹치며 1945년 초 1㎏에 6펭괴였던 빵 가격은 그해 5월 800만펭괴로 올랐고, 다음 달엔 58억5000만펭괴로 뛰었어요.

사람들은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울 정도였고, 거리에 돈이 낙엽처럼 쌓여 있어도 아무도 줍지 않아, 청소부가 쓰레기 치우듯 돈을 쓸어 담기도 했다죠. 인플레이션은 1946년 7월 정점에 이르렀는데, 하루에만 물가가 2배 뛴 날도 있다고 합니다.

[천문학적 배상 요구한 베르사유 조약]

독일이 초인플레이션에 휩싸인 건 베르사유 조약 때문입니다. 연합국과 독일은 1919년 6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1차 세계대전 전후(戰後) 처리를 위한 평화 조약을 맺는데요.

이 조약에는 독일이 모든 식민지와 본토 일부를 포기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1921년에는 1320억마르크를 장기 분할 상환하라고 결정했죠. 영국 대표단으로 참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독일은 지급할 능력이 없다"면서 "장기 분할 배상금 상환은 한 세대 이상 궁핍을 강요해 독일과 유럽 문명을 훼손한다"고 호소했죠.

하지만 이 주장은 묵살됐어요. 그리고 독일이 이 엄청난 배상금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초인플레이션 등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사회가 혼란해졌고, 그 틈을 타 나치가 권력을 잡은 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킵니다.

<참고문헌>

1. 서민영, "거리에 돈 굴러다니고… 하루에 물가 두 배 뛰기도 했죠", 조선일보, 2022.5.18일자. 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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