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전쟁

유종안 | 2010.05.20 09:59 | 조회 7432


2010.05.19 중앙일보


숫자(數字)는 단순히 수를 나타내는 글자만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한 나라, 한 민족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숫자 3은 우리 민족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예부터 3은 생명의 탄생을 뜻하는 완전한 수로 여겨졌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은 3이 두 번이나 들어 있어 만물이 살아나는 특별한 날로 믿었다. 삼짇날 머리카락을 잘라 땅에 묻으면 머리카락이 쑥쑥 자란다고 생각했고, 아들을 낳고 싶은 사람은 소원을 빌었다. 신성한 동물은 3으로 상징됐다. 고구려 문화 유물에 많이 보이는 삼족오(三足烏)가 그렇고, 옛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삼족구(三足拘)가 그렇다. 장례 문화에도 3이 배어 있다. 저승사자를 위한 사자상(使者床) 위엔 밥 세 그릇, 북어 세 마리, 짚신 세 켤레가 놓였다. 삼년상(三年喪)이나 삼일장(三日葬)도 3에 바탕을 둔 풍속이다.

성서에서도 숫자 3은 완성과 완전함을 의미한다. 삼위일체, 세 명의 동방박사가 예수에게 바치는 세 가지 선물, 예수가 받은 세 차례의 유혹, 골고다 언덕의 세 개의 십자가,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기까지의 날수 등이 그런 예다.

숫자에 집착하기로는 중국인만 한 민족이 없다. 숫자 8 선호 현상은 가히 광적이다. ‘8(八)’의 발음이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을 가진 ‘파차이(發財)’의 ‘발(發)’자와 발음이 비슷해서다. 88위안, 888위안 등 8로 끝나는 가격표가 붙은 물건은 깎지 않고 그냥 사간다고 한다. 2003년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전화국이 경매에 부친 전화번호 ‘8888-8888’은 우리 돈 3억3000만원에 낙찰됐을 정도다. 독일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4세는 자신의 이름에 4가 들어 있다고 해서 4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하루에 네 번씩 식사를 했는데, 언제나 네 코스에 네 가지 술이 준비됐다. 왕관에는 네 개의 뿔이 있었고 의복은 모두 네 가지 색이었다.

6·2 교육감 선거에 뛰어든 후보 간 때아닌 ‘숫자 전쟁’이 한창이다. 투표용지에 적힐 이름 순번(順番)을 알리려는 억지춘향 격 숫자가 난무한다. ‘한(1)판승’ ‘이(2)번엔’ ‘사(4)교육 철폐’ ‘럭키 세븐(7)’에 심지어 ‘6월(6)의 사나이’란 구호까지 등장했다. 교육 공약은 뒷전이고 졸지에 득표의 관건이 된 순번 알리기에 목을 매는 형국이다. 이 딱한 노릇을 4년 뒤 또 겪을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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