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금 침략 예견한 부여 출신 이경여의 日暮途遠

신상구 | 2020.12.12 13:15 | 조회 2968

                                                             

         

        

                                                        후금 침략 예견한 부여 출신 이경여의 日暮途遠

               

이경여는 그의 호를 '백강(白江)'이라 할 정도로 부여 백마강을 사랑했다. 사진은 백마강. 부여군

    남한산성하면 병자호란이 생각나고, 병자호란하면 인조 임금이 청나라 태종 앞에 이마가 땅에 닿는 아홉 번의 절을 하며 항복한 삼전도(三田道)의 치욕이 생각난다.

   참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장면이었다.

   1637년 1월, 그해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으며 남한산성을 방어하던 우리 군사들은 계속 얼어 죽어갔고 눈보라 까지 거칠게 불어 닥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 식량이라고는 50일 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에 비해 청 태종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산성을 빈틈없이 에워싸고 계속 위협을 가해 왔다. 뿐만 아니라 성 밖의 양민들을 죽이거나 약탈하는 등 만행을 계속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성내에서는 현실론에 입각하여 청과 강화를 하자는 최명길 중심의 주화파와 명나라를 배신하고 오랑캐 청과 군신(君臣)관계를 맺을 수 없으니 끝까지 싸우자는 김상헌 중심의 척화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결국 무능한 인조 임금은 시간만 끌다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치욕적인 항복을 했으며 청군은 소현세자, 봉림대군(훗날 효종)과 척화파 인물들을 대거 인질로 잡고 철수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충남 부여 출신 이경여(李敬輿)도 인질이 되어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갔다. 세종의 7대손으로 청주 목사, 좌승지, 형조판서, 이조참판, 우의정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일찍이 만주 전역을 장학한 후금이 언젠가 우리나라를 침범해 오리라는 것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그와 같은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가 후금이 청이라는 이름으로 국호를 바꿔 1636년 12월 압록강을 건너 침략을 감행한 것이다.

    이경여는 그의 호를 '백강(白江)'이라 할 정도로 부여 백마강을 사랑했다.

   이경여는 이곳 부여읍 규암면 진변리 부산에서 1585년 태어났고 강물에 떠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부산'이라고 부르는 언덕 암자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공부하던 자리에 '대재각(大哉閣)'이라는 비각을 이경여의 손자가 세웠는데 백마강 유람선을 타면 그 밑을 지나 운치를 더해 준다.

    또 여기에는 이경여와 김집을 기리는 부산서원도 있고 이 서원에는 이경여가 중국에 사신을 갔다가 오면서 가져다 심은 지름 50cm, 높이 5m가 되는 동매(冬梅) 한 그루가 서원의 품격을 더해 주고 있다.

    그가 아예 이곳 고향에 정착하게 된 것은 영의정 때 효종 임금에게 올린 상소가 발단이 되었다. 효종은 이경여 등과 함께 청에 볼모로 잡혀 갔던 처지.

    그래서 그는 효종에게 그 날의 치욕을 잊지 말고 힘을 길러 청나라를 치자는 이른바 북벌계획을 올린 것이다. 이에 효종은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땅하지만 진실로 마음이 아프나 뜻을 이루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회답을 보냈는데 이것을 청나라가 문제를 삼아 영의정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여에 내려와 글을 쓰며 북벌의 뜻을 구체화하다 1675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다 우암 송시열이 효종임금이 이경여에게 보낸 답장 가운데 8자를 골라 이경여의 손자 이이명에 주었는데 그는 이것을 낙화암이 마주 보이는 백마강 암벽에 새겼다.

                                                                   至痛在心 日暮途遠 (지통재심 일모도원)

    당나라 소정방에 의해 백제가 멸망을 고했던 백마강에 이번에는 청나라에 짓밟힌 조선의 주권회복을 한탄하는 뼈아픈 글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백마강에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애련하게 해주는 역사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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