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홍도의 금계도 8곡병

닭은 상상이 아닌 현실의 동물로서, 주역의 팔괘 가운데 ‘손(巽)’괘에 해당한다. 손괘는 동남쪽에 속하며 동남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다. 따라서 어둠을 몰아내고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것을 신비한 닭이 담당한다고 믿었다.

‘삼국유사’ 김알지 탈해왕조에 따르면 “65년(탈해왕 9) 3월에 왕이 밤에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펴보니 빛의 작은 궤가 나무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었다. 왕이 궤를 가져오게 해 열어보자 용모가 뛰어난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라 건국신화에 의하면 흰 닭은 탄생과 관련된 신령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닭은 존재양상의 이중성, 즉 날개가 있지만 날아다니지 않고 지상에서 생활하는 것과 어둠과 밝음을 경계 짓는 새벽을 밝히는 존재로서의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태양의 새이면서 상상의 존재이다.

천지개벽을 다룬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왕 본풀이 서두에서 ‘천황(天皇) 닭이 목을 들고, 지황(地皇) 닭이 날개를 들고, 인황(人皇) 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 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하였다.’라고 하면서 닭의 신령스러움을 강조한다. 이처럼 닭의 태양과 관련한 상징성은 닭의 울음과 함께 개벽이 되었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 즉 혼돈에서 조화로의 이행이라는 우주적 차원의 질서를 예고한 것이다.

장닭이 훼(喙)를 길게 세 번 치고 첫 닭이 울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나, 사람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온갖 잡귀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새벽녘 닭이 울어 여명이 시작되면 모든 고난 속의 잡것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광명의 천지가 펼쳐진다. 닭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알 수 있는 예지의 능력과 함께, 악귀를 쫓아내는 영묘한 힘과 축귀를 쫓아내는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왔다.

<신화 속 상상동물 열전> 윤열수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