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 훈·포장 미전수자 전국 5949명, 충청권에만 359명 달해

신상구 | 2020.08.16 19:19 | 조회 3765

                                         독립유공 훈·포장 미전수자 전국 5949명,  충청권에만 359명 달해
        

    


    

        
                
                    
                    

청주 삼일공원 항일독립운동기념탑 모습. /충청타임즈DB
청주 삼일공원 항일독립운동기념탑 모습. /충청타임즈DB
 

    일제가 `정미7조약'을 내세워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 제국주의적 식민 야욕을 본격화한 1907년 7월 이후 전국에서 의병 봉기가 이뤄졌다.
    충청에서도 의병 무장활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후세에 널리 알려진 한봉수 의병장이 중심이 됐다. 한 의병장이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음지에서 묵묵히 희생한 의병이다.
    그중 한 인물이 고(故) 김명심(1881~미상) 선생이다. 선생은 1908년 한봉수 의진에 들어갔다. 그는 한 의병장 지시에 따라 활동 자금 확보를 위해 청주군(현 청주시) 일대에서 군자금을 징수했다. 의병 활동을 밀고한 부일협력자를 처단하는 역할도 맡았다.
    1909년 7~8월에는 여러 동지와 함께 속리산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항일 무장투쟁 전선에서 뛰다 붙잡힌 선생은 1910년 5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시점은 명확하지 않다.
    1900년대 초 충북 영동 영동면장에 재직하던 고(故) 이승구 선생(1880~1920년)은 일제 치하 속에서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했다.
    선생은 1913년 12월 재산을 모두 처분한 뒤 중국 봉천성 유하연 삼원포로 망명했다. 독립운동에 뜻을 품었던 그는 망명한 해 결성된 대한독립단에 참여했다.
    대한독립단은 의병장 출신인 박장호·조맹선을 중심으로 뭉친 무장독립 단체다. 선생은 곧 중앙총단 서기장·지단장에 선임돼 핵심 참모로 중추적인 활동을 했다.
    항일투쟁을 이어가던 1920년 7월 23일 봉천성 한 산중에서 일본군 습격을 받고 교전 끝에 전사했다.
    빛 광(光), 회복할 복(). `광복',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빛을 되찾다'는 의미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단어는 한민족에게 남다른 울림을 준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주권을 회복한 날을 뜻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광복 이전 무려 35년 동안이나 서슬 퍼런 식민 치하에서 숱한 고통을 겪었다. 전 국토는 수탈 대상으로 전락했고 국민은 말살에 가까운 탄압과 모멸에 시달렸다.
    잔혹한 시대에 남은 건 오직 민족성 하나였다.
    나라는 모든 걸 잃었지만 국민만큼은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뜨거운 애국심 하나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독립유공자. 빼앗긴 민족혼을 되찾기 위해 한반도 안팎에서 피와 눈물을 흘린 이들이다.
    광복을 맞은 지 75년이 지난 오늘날 목숨 바쳐 희생한 독립유공자에게 남은 건 훈장과 포장뿐이다.

    하지만 독립 유공 훈·포장은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김명심·이승구 선생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두 인물이 세운 공을 기려 1995년과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나 전수하지 못했다.
    독립유공자 대부분이 겪는 일이다. 전국적으로 훈·포장 미전수 독립유공자(본적 기준)는 5949명에 달한다. 충청권에만 359명이나 있다. 세부적으로는 충남 218명, 충북 138명, 충청 3명이다.
   훈·포장 전수가 어려운 까닭은 여러 가지다. 우선 제적부 조회가 불가능한 경우다. 독립유공자 본적과 주소가 확인되지 않을 때 주로 일어나는 일이다.
   제적부가 아예 소실돼 원천적으로 찾기 어려울 때도 부지기수다.
   신분을 감추고 활동한 독립유공자는 훈·포장 전수가 더욱더 어렵다.
   일제 추적을 피하려 본명 대신 이명(異名)을 사용했거나 당시 가족에게까지 독립운동 참여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경우다.
   여기에 독립유공자가 직계 후손을 남기지 않고 떠난 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사례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청주에선 약산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하고 광복군으로 활동한 고(故) 김병태 선생(1899~1946년)에게 추서된 훈장이 방계 후손에게 전수됐다.
   훈장은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무려 25년 만에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김병태 선생 조카인 김영인씨(71·청주 봉명동)는 “어릴 때 셋째 큰 아버님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지만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면서 “큰 아버님이 워낙 젊은 나이에 집을 떠나신 데다 직계 후손까지 없어 더 알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큰 아버님이 나라 독립을 위해 애쓰셨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았으니 가문의 영광으로 삼고, 조카로서 그 큰 뜻을 기려 나가겠다”고 했다.
   문제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세월이 흘러 대를 거듭할수록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정신이 흐릿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충북남부보훈지청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광복한 지 올해 75주년으로 벌써 반백 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지나왔다”며 “하지만 여태껏 후손을 찾지 못해 훈·포장을 전수하지 못한 독립유공자가 여전히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월이 흘러 독립유공자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훈·포장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보훈처를 비롯한 각 보훈지청은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연중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독립유공자는 일본이 국권을 빼앗아 간 1895년을 전후해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국권 회복 활동 등을 한 인물을 칭한다.
   훈장 미전수 독립유공자 명단은 국가보훈처와 공훈전사자사료관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참고문헌>
    1. 조준영, "  `주인 못 찾은' 독립유공 훈·포장 `빛 바랜' 애국의 별", 충청타임즈, 2020.8.14일자.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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