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문학 기행

신상구 | 2020.08.08 02:33 | 조회 4113

                                                         장흥 문학 기행

   '눈길의 발자국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흔적이나마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지난 3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마을 고(故) 이청준(1939~2008) 작가 생가(生家) 방명록에는 그를 그리워하는 여러 글이 방문객을 맞았다. 소설 '서편제' '당신들의 천국' 등을 남긴 한국 문학의 거목(巨木) 이청준은 2008년 고향 장흥 바다가 멀리 보이는 낮은 언덕에 묻혔다. '늘 해변 밭 언덕가에 나와 앉아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소설 '해변 아리랑')던 그의 문장처럼 진목마을 생가와 그의 묘소는 문학을 앓는 많은 이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특히 지난달 말 12주기를 전후해 방문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완전히 얼어붙었던 장흥의 문학기행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김상찬(62) 한들문화 이사장은 "주말이면 40여 명 단체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감안해 대형 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며 "주로 삼삼오오 소규모 방문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지난 4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 선학동마을 초입에 있는 주황색 지붕의 영화 ‘천년학’(2007·감독 임권택) 세트장 옆을 문학 여행객들이 걷고 있다. 그 뒤로 득량만이 펼쳐져 있다. 선학동마을의 원래 이름은 산 아랫마을이라는 뜻의 산저마을이었다.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바탕으로 한 영화 ‘천년학’이 개봉한 후에 선학동마을로 바뀌었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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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흥한다'는 장흥(長興)은 한국 문학기행의 장기 부흥을 이끌고 있다. 인구 3만8000명의 이 작은 문학 고을 출신 현역 등단 작가는 120여 명에 달한다. 김 이사장은 "현역 등단 작가가 100명이 넘는 고장은 장흥이 유일하다"며 "장흥은 말 그대로 한국 문학의 본향(本鄕)"이라고 말했다.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등 3명이 장흥 출신이다.
   이청준이 1977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표한 단편소설 '눈길'은 가장 아름다운 한국 문학 작품으로 꼽힌다. 소설 속 생가에서 연지삼거리까지 모자가 걸었던 4.5㎞(2시간) 눈 덮인 산길은 문학탐방길로 조성됐다. 문학 탐방객들은 이청준 생가와 묘소, 눈길 탐방로, 한승원 생가와 집필실(해산토굴), 영화 '축제' 촬영지 남포마을, 영화 '천년학' 촬영지 선학동마을 등을 주로 방문한다.
   서울(605.25㎢)보다 넓은 장흥(622.4㎢)은 산과 들, 바다, 강, 호수가 모두 문학의 현장이다. 호남 5대 명산 천관산(723m)을 비롯해 해발 500m가 넘는 산 13곳이 다도해를 바라보며 장흥 땅을 품고 있다. 호남 3대 강 탐진강이 굽이친다. 장흥 출신 이승우 작가는 유년 시절을 보낸 바닷가 마을 작은 돌섬을 소재로 단편소설 '샘섬'을 썼다. 이청준과 한승원은 고향 바닷가 득량만(得粮灣)에서 문학적 소양을 키워 여러 작품을 썼다. 한승원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부친이다. 한강은 지역에서 "장흥의 딸"로 불린다.

조선일보

장흥 출신 문인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천관산 기슭의 천관문학관. /장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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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군은 최근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장흥읍에 있는 옛 장흥교도소를 '장흥 문학의 중심지'로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1975년 장흥읍 변두리에서 개청한 옛 장흥교도소는 1990년대부터 개발 바람을 타고 턱밑까지 민가가 밀려왔다. 정부는 시설 낙후와 주변 환경을 고려해 2015년 9월 장흥 용산면에 장흥교도소를 신축했다. 40년 된 낡은 교도소 건물이 방치되자 장흥군이 문화와 문학이 흐르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군은 지난해 2월 32억원을 들여 정부 소유의 장흥교도소 부지(3만9995㎡)와 2층짜리 건물(8245㎡)을 매입했다. 장흥교도소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는다.
   군은 103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교정 시설을 가칭 '장흥문화예술촌'으로 꾸민다. 지역 작가 문학관, 집필실, 문학 강좌·공연·전시 공간, 숙박 시설, 출판 시설 등을 만든다. 내년 착공해 2024년 문을 열 계획이다. 정종순 장흥군수는 "버려진 교도소를 문학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장흥이 국내 처음"이라며 "국내 유일의 안중근 의사 사당인 해동사와 명량해전 승리의 출발점이 된 회령진성 등 역사 자원도 잘 활용해 '문림의향 고장'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1. 조홍복, "현역 등단 작가만 120명… 장흥 문학기행 떠나볼까", 조선일보, 2020.8.7일자.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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