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빼앗긴 태권도인의 눈물

진성조 | 2010.10.30 08:09 | 조회 6606

[왜냐면] 모국어를 빼앗긴 태권도인의 눈물 / 성기지

-한겨레 2010.10.30 독자투고란

“시작” “갈려”와 같은 우리말 대신
영어를 공식 용어로 써야 한다니…
태권도 국제대회서 퇴출된 한국어
철없는 국수주의 투정이 아니다
한겨레
» “태권도 배우러 왔어요” = 19일 오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0 조선대 국제 태권도 아카데미’에 참가한 15개국 200여 명의 수련생들이 태권도학과 강사진들로부터 태권도 기본자세 교육을 받고 있다.【광주=뉴시스】
한글날의 여운이 아직 거리에 남아 있던 어느날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선수는 아니지만 태권도 관련업에 종사하는 태권도인이라고 했다. 세계태권도연맹이 지난 10월7일 열린 총회에서 한국어를 태권도 공식 언어에서 제외한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적잖이 놀라며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하니, 연맹에서는 그동안 공식 언어였던 한국어를 프랑스어, 스페인어와 함께 보조언어로 끌어내리고 영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했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는 더 이상 “시작!”, “갈려!”, “경고!”와 같은 우리말 경기 용어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며 탄식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줄곧 분노로 격앙되어 있었다.

뜻밖의 전화를 받고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태권도가 종주국 언어인 한국어를 버릴 수도 있는 것인가? 단 한 번도 그와 같은 일을 상상해 보지 못했다. 올림픽 경기 중계방송을 시청할 때, 가장 반가운 순간이 언제던가. 나는 태권도 경기를 보며 벅찬 감동을 느낀다. 유도나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에도 물론 감격한다.

그러나 태권도 경기에서 국제어로 대접받는 우리말을 지켜보며 훨씬 큰 감동을 느낀다. 전 세계에 중계되는 경기에서 외국인 심판들이 우리말로 경기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라.

안팎으로 ‘영어 공화국’의 면모를 착실히 다져 온 우리 사회는, 이제 사람이든 물건이든 영어가 아니면 상품이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 해도, 태권도에서마저 우리말이 영어에 밀려나게 될 줄은, 상상해 보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기가 막힌 일은, 이 결정에 앞장선 이가 다름 아닌 세계태권도연맹의 한국인 총재라는 사실이다.

펜싱을 배우는 사람들은 프랑스어 경기 용어를 익혀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프랑스 사람들의 국수주의라 생각하지 않는다. 펜싱 경기는 프랑스에서 비롯한 것이니, 그저 당연하다고 여길 뿐이다. 태권도가 무엇인가? ‘한글’, ‘김치’, ‘한복’과 더불어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대표적인 문화 자산이다.

태권도 협회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한국어를 익히게 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선수들을 파견하고 있다. 피부 빛깔은 다르지만 낯익은 도복을 입고 우리말로 기합을 내지르며 발차기를 하는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뿌듯하다. 그리하여 온 국민은 그동안 우리 말글의 위상을 드높여 온 태권도계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우리말을 태권도 공식 언어로 지켜 나가는 일을 국수주의로 몰아붙이는 우리나라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하소연이 귓전에 달라붙어 떠나질 않는다. 우리 고유문화의 속살마저 영어로 바꿔 채워야 국제화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에게는, 아마 이와 같은 하소연마저 단지 철없는 국수주의자의 투정으로 비쳐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 성기지 한글학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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