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배우가 생각하는 최상연기는 상생(相生)의 조화!

진성조 | 2010.10.30 08:15 | 조회 6130
[삶의창] 상 떨어지고 울먹이다 / 박중훈

-한겨레 신문 2010.10.30 칼럼
한겨레
» 박중훈 영화배우
데뷔작 <깜보>로 한 영화제의 신인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시상식 며칠 전부터 그 상이 받고 싶어 잠도 잘 못 잤습니다. 막상 당일 그 상은 제가 보기에 턱도 없는 다른 배우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날 전 분해서 밤새 술을 마시며 눈물을 글썽였고 그 상을 가져간 배우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모릅니다.
연기상이라는 것은 0.01초 차이까지도 1, 2등으로 나누어야 하는 운동경기와 달리 등수를 매길 수 없는 것인데도 당시 어린 마음에 제가 막 패배하고 도태되는 것 같아 절망스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인지상정으로 본인이 받으면 기쁘고 감사하지만 남이 받았다고 해서 곧 내가 뒤처지는 의미가 아니었던 것인데도 한동안 상 때문에 남을 괜히 미워하고 바보같이 살았습니다.

13년 전 여름 제 영화 <할렐루야>는 영화 <넘버3>와 비슷한 시기에 극장에서 같이 개봉됐습니다. 전 상대 영화보다 많은 관객수로 이기기 위해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무려 15개도 넘게 출연하며 오로지 상대 영화를 꺾겠다는 일념으로 미친 듯이 홍보하고 다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두 영화가 다 흥행이 됐지만, 그 당시 상대를 이겨야 한다고 제가 저를 지나치게 다그치는 바람에 영화가 개봉될 즈음엔 거의 기운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지쳐버렸습니다.

작년 여름 제 영화 <해운대>가 1000만 관객을 넘으며 큰 사랑을 받았을 때 동시에 영화 <국가대표>도 850만명이라는 큰 기록을 세우며 흥행의 역사를 같이 써 내려갔습니다. 한 영화가 흥행이 되면 관객을 그 영화에게 뺏기는 것이 아니고 같이 공유하는 것인데 예전엔 왜 뺏긴다고 생각하며 바보처럼 피곤하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연기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연기라는 것은 먼저 한 연기자가 연기를 시작하면 그 연기를 받아서 상대 연기자가 반응연기를 하고 그에 또 반응하면서 점점 감정이 점층되고 시너지가 되어 관객의 마음을 흔드는 협력 상생 작업입니다. 그런데도 배우 초창기에는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연기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연기할 때 이 배우에게 이겨야겠다는 호승심으로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 경우 인상적인 연기를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는 있었지만 관객의 마음을 진심으로 얻기는 힘들었습니다. 이기기만을 위한 연기는 어딘지 모르게 욕심이 배어 있었을 테고 그 욕심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테니까요.

얼마 전 후배 정유미 배우와 함께 연기한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받은 평가 중 저를 가장 기쁘게 한 건 둘이 잘 어울렸다는 말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연기를 했다는 말보다 상대와 잘 어우러져 보인다는 말이 이젠 더 큰 찬사로 느껴집니다.

전 배우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경쟁을 하며 지내왔습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무수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경쟁은 종족 번식을 위한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적 행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위대한 점은 본능을 본능이라고 규정짓는 행위를 벗어나 더 고귀한 가치를 찾는 데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남을 위하는 이타적 행동이나, 함께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느끼는 행동, 이런 모든 것들을 본능과 유전자로 치부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경쟁이야 불가피하지만 우리가 경쟁 만능주의에 젖어 경쟁하지 말아야 할 것조차도 대결하고 상대를 짓누르며 살진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경쟁을 벗어나려고 하면서 나름대로 평안함과 조그만 행복을 배웠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므로 여러분에게 감히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각자 삶의 방식 속에서 조금이나마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찾는 것은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쉽지만 전 지난 6개월간 <한겨레> 독자와의 만남을 마치고 내달 새 영화 촬영을 시작하려 합니다. 같이 공연하게 될 후배 배우를 사랑으로 잘 보듬으며 더불어 잘 작업하겠습니다. 잘 어우러지는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박중훈 영화배우 트위터 @moviej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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