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그림책] 아이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계절의 냄새’

환단스토리 | 2021.06.08 16:23 | 조회 4845

[함께 읽는 그림책] 아이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계절의 냄새’


조선 2021.06.08.


“화단 빗방울, 젖은 풀냄새… 가끔 학교 냄새 그리워요” 졸업생 전화

등굣길 냄새, 아빠 코트 냄새 유리병에 간직하는 그림책 속 아이처럼

코끝 감각과 가슴, 촘촘히 연결… 아이들 일상의 냄새, 언제 되찾을까




양양, '계절의 냄새', 노란 상상.


“가끔 초등학교 냄새가 그리워요. 어떤 공간에 가면 특정한 냄새가 나잖아요.” 졸업한 서연이가 스승의 날 즈음 연락을 해왔다. 통화하면서 뜻밖에 냄새 이야기를 실컷 나눴다. “선생님이랑 미술 시간에 화단에 나가서 빗방울 봤던 게 가끔 생각나요. 그날 화단에서 맡았던 풀냄새도요.” 서연이의 말에 비에 젖은 풀냄새를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서서 투명한 우산 너머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봤던 그해 여름이 생각났다. 교실로 올라와서 수채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더니 그야말로 여름비의 향연이 펼쳐졌었지. 코끝을 스치던 물에 젖은 도화지 냄새가 아득하게 그리웠다.


이번엔 내가 서연이에게 냄새의 기억을 말해줄 차례다. “왜 우리 학교에 오래된 등나무 있었잖아. 5월쯤 창문 활짝 열어놓으면, 바람 불 때마다 교실까지 등나무꽃 향기가 진동했는데.” 서연이는 어룽어룽 길게 드리워진 연보라색 꽃이 기억난다며 반가워했다. 등나무꽃 냄새를 떠올렸을 뿐인데 그해 봄의 기억이 통째로 가슴을 파고들었다. 함께 냄새를 추억할 수 있는 제자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가. 문득 몇 해 전만 해도 학교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축복으로 여겨졌다.


코로나19로 원격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한 지 일 년 하고도 수개월이 지났다. 등교 횟수가 줄고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생활하면서 아이들은 촉각, 후각, 미각, 청각, 시각을 골고루 경험하지 못한 채 계절을 보냈다. 특히나 거리 두기로 아이들이 생활하는 일상의 반경이 좁아지다 보니 다양한 공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줄어들어 버렸다. 어느 때보다 후각이 움츠러들어 있는 요즘, 아이들과 그림책을 펼쳐놓고 계절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그림책 ‘계절의 냄새’(양양 지음, 노란상상)를 보면 유리병에 냄새를 모으는 아이가 등장한다.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간직하는 것처럼, 아이는 계절마다 냄새를 모아서 유리병에 담는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이런 유리병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짝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으면 곧장 그때의 시간과 공간으로 훌쩍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림책을 펼치면 바스락거리는 등굣길의 냄새에서부터 외출하고 돌아온 아빠의 코트 냄새까지 다양한 냄새가 기억을 머금은 채 유리병에 담겨있다. 유리병에 담긴 계절의 냄새를 따라가면서 독자는 자기만의 고유한 경험을 길어 올릴 수 있다.





양양, '계절의 냄새', 노란 상상.


냄새는 한 시절의 정서와 기억을 구체적으로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일상 속에서 특정한 냄새를 맡으면 문득 어린 시절로 돌아갈 때가 있지 않은가. 새 실내화를 꺼내 신을 때 특유의 고무 냄새를 맡으면 나도 모르게 새 학기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든가. 새로 산 연필을 깎으면서 향긋한 나무 냄새를 맡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단정해져서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는다든가. 늦가을 찬비에 떨어진 플라타너스 이파리 냄새를 맡으면 괜히 쓸쓸해져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든가 할 때면 코끝의 감각과 가슴 언저리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과 일상에서 길어 올린 계절의 냄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떨까. 아이가 오래 머문 공간이나 마음이 향하고 있는 곳을 헤아려볼 수 있는 대화 방법이다.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화단을 들여다본 아이는 코끝을 훅 파고들었던 흙냄새를 이야기할 것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도서실로 달려가길 좋아하는 아이는 오후의 볕이 노랗게 배어든 책 냄새를 기억하겠지. 돌아서기만 하면 자꾸 배가 고파지는 아이는 급식실 쪽에서 폴폴 풍겨오던 달큼한 멸치육수 냄새를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같은 하루를 보내도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냄새를 길어 올리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일상을 만들 테니까.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라쉬는 ‘두 번째 지구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에서 이렇게 말했다. 계절의 냄새가 있는데 그걸 모르는 삶은 너무 슬픈 것 같다고. 자연의 냄새를 모르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인간이 뭔지 모르고 살다 간 사람일 거라고. 올가을에는 부디 코로나를 이겨내고 우리 아이들에게 계절의 냄새를 되돌려주자. 코끝의 감각에서부터 가슴 언저리까지 일상의 회복이 촘촘히 이어질 수 있도록. 아이들과 손잡고 한바탕 뛰면서 맡았던 고소한 땀 냄새가 유난히 그리운 초여름이다.


[이현아 ‘그림책 한 권의 힘’저자, 서울개일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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