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서구의 신은 황제적…동학은 ‘우리가 하느님’이라 말해” 등록 2021-07-07

환단스토리 | 2021.08.07 17:59 | 조회 3902

도올 김용옥 “서구의 신은 황제적…동학은 ‘우리가 하느님’이라 말해” 
한겨레 2021-07-07
수운 최제우가 쓴 ‘동경대전’ 초판
지난해 구하자마자 번역·해설서 써
꿈에서 초판본 뺏으려 해 실랑이
들이받다가 실제 머리 찢어지기도
<동경대전>1,2권에서 이분법적 서구신관과 한판 씨름을 벌인 도올 김용옥 전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동경대전>1,2권에서 이분법적 서구신관과 한판 씨름을 벌인 도올 김용옥 전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도올 김용옥(73) 전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사고를 쳤다. 30대에 그 좋다는 정규직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학교 밖에 나선 이래 강경 발언으로 사고를 친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번에 친 사고는 다르다. 지구 문명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이분법적 서구 신관(神觀)을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나섰다는 점에서 다른 차원이다. <동경대전>(통나무 펴냄) 1, 2권을 통해서다.

애초 <동경대전>은 근대 한민족을 깨운 동학의 1대 교조 수운 최제우(1824~1864)가 쓴 경전이다. 수운이 써서 해월 최시형에 전한 초판 원고로 만든 목활자본을 지난해 10월 김용옥이 구하자마자 번역·해설한 책이 이번 도올판 <동경대전>이다. 1천여쪽이 넘는 방대한 이 책은 짧은 기간에 출간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도올은 이미 고려대 철학과에서 동학을 만난 이래 1991년 동학2대 교조 해월 최시형(1827~98)을 그려 개봉한 영화 <개벽>의 시나리오를 썼고, 동학도였던 표영삼(1925~2008)을 따라 수운과 해월의 흔적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바 있다. 표영삼은 비록 초등학교(국민학교) 졸업이 학문의 전부였음에도 한문에도 달통하고 수운과 해월의 순수한 면모를 그대로 계승해 ‘도올이 살아있는 동학’으로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그 표영삼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이 동경대전 초판 목활자본을 애타게 찾았다고 한다.

이 책은 50년에 걸친 동학 순례의 대미지만, 우리가 흔히 동학 혹은 천도교로 아는 한 종교의 경전 해설서는 아니다. 도올이 생각하는 동학이란 흔히 초기 천주교로 일컬어지는 서학의 대립 개념이 아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을 ‘해동’으로 불렀듯이 그가 생각하는 동학의 ‘동’(東)은 태초부터 우리 민족사를 관통하는 한민족의 정체성으로, 이를 바탕으로 둔 학문이 동학이란 말이다. <동경대전>의 부제를 1권 ‘나는 코리안이다’, 2권 ‘우리가 하느님이다’라고 한데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성경, 사서삼경, 불경, 노자 등 수많은 동서양사상을 강연하고 책을 썼으면서도 이번 <동경대전>을 ‘제 인생의 결정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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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대전>1,2권. 조현 기자

그는 “서구가 추구해온 근대라는 이념을 추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선언한다. 서구의 근대가 낳은 터무니없는 인간의 교만, 서양의 우월성, 환경의 파괴, 불평등 구조의 확대, 자유의 방종, 과학의 자본주의에로의 예속 같은 서구적 패턴을 우리가 반복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참다운 평등과 조화는 오로지 황제적인 신이 사라지고, 모든 인간이 하느님이 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하느님이다’(인내천· 人乃天), ‘사람을 하느님으로 공경하라’(사인여천·事人如天)고 외치며 일제와 부패권력자들의 총칼에 쓰러져 죽어간 30여만명의 동학교도와 3·1 만세운동의 동포들의 여망을 안고 거대한 기득권에 부딪힐 계란이 되려고 각오를 할 때 그를 짓누르는 압력이 없었을 리 없다. 그는 <동경대전> 번역을 시작할 당시의 고백을 이렇게 썼다.

‘너무도 많은 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너무도 많은 터무니없는 편견들과 싸워야 한다. 혼자 알고 혼자 뒈지는 것이 낫지, 내가 뭔 첨병이라고 이 어지러운 전쟁터, 이 지루한 지옥의 여로를 걸어갈 것이냐? 이 싸움을 해본들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잡설 욕지거리밖에는 없을 것이다.’

도올이 초판본을 손에 쥐고, ‘우리 민족의 원전을 찾았다’며 기쁨에 들떠 잠든 그 날 밤부터 고난은 시작됐다. 그는 모두가 잠든 새벽 자택에서 사고를 당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 무려 20바늘을 꿰맸다. 꿈에 초판본을 뺏으려는 자를 밀쳐내면서 자던 몸이 침대에서 날아가 방구석의 판자에 머리를 부딪치며 머리 윗부분이 훌러덩 벗겨졌다고 한다. 그는 이로 인해 많은 피를 흘려 병원에 긴급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그 사고를 시작으로 그는 거대한 서구적 신관과의 한판 씨름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대학로 통나무출판사에서 동경대전의 의미를 들었다.

지난 2007년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감신대 대강당에서 개신교 신학자들과 신학대토론회를 펼친 도올 김용옥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지난 2007년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감신대 대강당에서 개신교 신학자들과 신학대토론회를 펼친 도올 김용옥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동경대전>의 초판목활자본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지금 성경 27서는 예수시대의 것이 아니라 4세기경에 확정된 것이다. 오리지널이 아니다. 그러나 이건 오리지널이다. 해설서도 일제강점기 개화기 지식인들이 쓴 것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역사에 찌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만들었다. 나도 수운은 서자로 태어나 고생하다 과거 시험도 못 본 인물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수운의 진면목을 알게 됐고, 내겐 충격적인 이 만남을 가감 없이 썼다. 수운이란 인물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었다. 수운의 삶 자체가 우리 조선의 운명이었다. 따라서 동경대전은 우리 민족의 고전인 동시에, 모든 서양철학이 가야 할 ‘오메가 포인트’(궁극의 종착점)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내 인생의 피땀을 용해시킨 결정체다.”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자란 수운이 당시 세계를 얼마나 알았나?

“수운은 10대 후반까지 최고의 유학자였던 부친 근암공 아래서 유학적 지식을 확고히 쌓은 뒤 20대에 10년간 장사를 하며, 조선반도뿐 아니라 만주지역까지 다녔던 것 같다. 견문을 넓히면서 기독교가 엄청난 문제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래서 기독교를 연구하려고, 교회 집회도 갔다. 기독교의 성격을 어설프게 알다가, <천주실의>를 만나면서 근본적으로 기독교와 씨름하게 됐다. 수운은 중국이 아편전쟁으로 망해가는 것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대포와 함대를 앞세운 서양 열강 뒤에는 기독교가 있다는 것을 직시했다. 수운은 기독교를 이기는 정신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길은 개벽 사상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때까지 모든 종교적 혁명은 신 앞에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었다. 서구적 인간 평등의 배경엔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하느님이 있다. 그러나 그런 서구적 평등이란 사기고 위선임을 직시했다. 신과 평등하지 않으면 인간이 결코 평등해질 수 없다고 보았다. 그것이 수운의 개벽이다. 모두가 대포와 함대를 앞세운 서양의 강력한 힘과 기독교에 경도될 때 이를 넘어설 고민을 해간다는 자체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지난 2014년 전남 순천대에서 강연 중인 도올 김용옥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지난 2014년 전남 순천대에서 강연 중인 도올 김용옥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동학이 ‘우리 민족의 개벽 세상을 맞이하기 위해 알아야만 할 우리 조선 민족의 유일한 성경’이라고 한 이유는?

“같은 시대 청나라에서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은 기독교를 무속적으로 받아들여 하늘에 가서 야훼를 만나고, 예수 형님을 만난다며 현실에선 80명의 미녀 사이에 둘러싸여 별짓을 다 했다. 그는 외래종교의 초월적 하느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켜 악용하며 사악하게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수운은 우리가 소박하게 여긴 본래의 하느님, 장독대에서 물 한그릇 떠놓고 빌던 하느님상에서 자연주의적인 동시에 초월주의적이고, 인간을 초월하면서도 인간적인 기묘한 양면성이 있는 전통적 감정을 살렸다. 초월성을 빙자해 약자와 타자를 미워하거나 억압하는 서구의 신이 가진 사기성이나 거짓이 없었다. 수운에게 모든 인류가 배워야 할 것은 종교가 항상 사기성을 띠어야만 하는 게 아니며, 절대적인 신앙심을 심어 주기 위해 항상 교주가 있어야 하고, 교주는 특별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망상을 깨우쳐준 점이다. 수운은 인간존재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보고, 인간이 하느님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인간이 하느님인데 ‘왜 인간이 그 모양이야. 왜 그렇게 나쁜 놈이 많으냐’고 하지만, 거기에 동학의 위대한 사고가 있다. 동학에서는 ‘하느님 자체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고 본다. 항상 생성 중인 하느님이며, 불완전한 인간과 같이하는 하느님이다. 어린아이도 하느님으로 봐서 그들이 가진 순수성을 북돋워 주었다. 우리 민족의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한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 민중의 애환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야만 했던 보통 사람이었다.”

-수운은 왜 기도 중 나타난 상제(하느님)가 준다는 재상 자리도, ‘조화’의 능력도 다 거부했나?

“조선왕조가 여러 가지 문제가 많다지만, 우리 민족에게 가르친, 위대한 것 하나는 유학을 통해 상식을 가르쳤다는 점이다. 수운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영웅인 최진립 장군의 후손이다. 최진립장군 집안에서 양심적인 경주 최부자댁과 수운이 나왔다. 수운의 부친 근암공 최옥은 퇴계의 학맥을 이은 탁월한 학자였다. 그런 부친으로부터 엄격한 도덕주의 훈련을 받았기에 (상제가 준다는) 조화라는 것은 차력사나 요술쟁이들이나 하는 것인데, 그런 것으로 세상을 구하라고 한다면, 기존 종교들처럼 또 하나의 사기술을 펼치라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간파했다. 따라서 수운은 상제를 만났다기보다 최상의 도인 무극대도를 깨우친 것이다. 그는 서구 종교가 말하는, 초월신을 초월했다. 수운은 무극대도라는 궁극의 심오한 철학을 말하면서도, 서구적인 인격신을 살려냈다. 달을 보고 달님, 해 보고 해님이라고 했다. 나무도 오래 살면 소나무에 제사 지내고, 부모를 존경해 부모님이라고 한 게 우리 전통이다. 대상으로서 ‘님’이 아니라, 친근하게 부른 것이다. 수운이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을 ‘님’화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초월적 존재나 상제가 저 하늘 위에 앉아서 다스린다며 사기 쳐서는 안 된다는 데, 눈을 뜬 것이다.”

동학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2대 교조 해월 최시형, 동학을 전해준 표영삼의 사진을 배경으로 인터뷰 중인 도올 김용옥 전 교수. 조현 기자
동학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2대 교조 해월 최시형, 동학을 전해준 표영삼의 사진을 배경으로 인터뷰 중인 도올 김용옥 전 교수. 조현 기자

-지금에 와서는 조선 말기에 서학을 받아들인 이들을 실학자들이라고 높게 평가하지 않는가?

“<동경대전>을 깊게 연구하면, <동경대전>에 깔린 생각들을 통해 유학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개화기 사상이 들어오면서 개화기 이전을 ‘전근대적 사유’라고 전제한다. 주자학적 사유도 전근대적 사유라고 하고, 반계 유형원과 성호 이익부터 근대적 사유라고 하는데, 터무니없다. 주자학자들이 당파에 사로잡혀 노론의 이념으로 활용되어 끔찍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서구 사상의 수준은 아직도 주자학의 언저리도 못 따라갔다. 미래적 사유의 깊이에서 주자학의 깊이와 서구 사상은 그만큼 차이가 크다. 가톨릭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동양 선교를 위해 쓴 <천주실의>가 이야기하는 것은 아버지, 할아버지, 조상부터 아담, 하와로 올라가 창조, 즉 시작이 있으니 종말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유학자들은 ‘무슨 시작이 있고, 무슨 종말이 있느냐’며 시종 없는 우주를 통찰했지만, 서양 종교는 종말론과 천당·지옥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허접한 논리에 놀아났다면 실학이 아니라 허학일 뿐이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많은 실학자가 <천주실의>를 보고, 서학으로 넘어갔는데, 왜 수운은 서학으로 넘어가지 않았나?

“마테오 리치는 목재가 스스로 의자가 될 수 없듯이 만물은 스스로 이루어질 수 없고 총체적인 디자이너 즉 ‘천주’(天主)가 있어 된 것이라며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안정복(조선후기 실학자·성리학자·작가) 등은 그런 주장이 대우주의 생명 변화를 말하기엔 형편없는 논리로 보았다. 정약용도 <중용>을 쓰면서, 산에 오를 때도 호랑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심하지 않느냐며 아주 형편없는 논리로 천주, 즉 기독교를 수용했다. 기독교라는 외래 문명에 의탁해 조선왕조에 새로운 물줄기를 트려고 생각한 게 조선 유학자들의 한계였다. 다산은 알기는 많이 알았지만, 쓰러져가는 조선을 부둥켜안고 새로운 세계를 제시하지 못했다. 수운은 그것을 근본적으로 뛰어넘었다. 어차피 조선은 끝났고, 새로운 논리로 새로운 시대를 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수운은 서학이 겉으로는 도덕적인 선으로 위장하면서, 실제로는 침략을 목표로 하고, 이 나라를 망가뜨려 소유하려는 수단으로 교회당을 짓는 것을 간파했다. 아편으로 중국을 궤멸시키는 것을 보고 제국주의 음모를 이미 간파했다. 장사할 때 보부상 조직에 가담해 모든 정보를 수집했던 수운의 정보력은 전남 강진에서 책과 씨름하던 다산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수운만큼 서구 문명의 본질을 간파한 이는 세계사적으로 없다. 그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앞서갔다. 서양이 20세기 들어서야 여성 참정권을 줬지만, 수운은 이미 한세기 전에 고통받는 여성들과 아이들이 하느님이라고 했다.

조선 민중의 혁명이 수운의 사상 속에 배태되었다. 다산이 남긴 게 있다면 지식의 과시로는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반면교사가 됐다.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뭘 남길 수 있겠는가. 결국 수운과 같은, 행동하는 지성이 되지 않으면 역사를 바꿀 수 없다. 수운은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21세기는 우리 스스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고, 우리 삶의 방식을 만들기 위해 정신 차려야 할 때다.”

2011년 홍상수 감독이 만든 영화 &lt;다른 나라에서&gt;에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배우 이자벨 위베르, 윤여정, 유준상 등과 함께 출연한 도올 김용옥 전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2011년 홍상수 감독이 만든 영화 <다른 나라에서>에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배우 이자벨 위베르, 윤여정, 유준상 등과 함께 출연한 도올 김용옥 전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동경대전>이 우리 민족의 전통과 맥이 닿아있다고 본 이유는?

“<동경대전>을 읽으면 동학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눈물이 느껴진다. 수운은 근원적인 진리를 삶 속에서 리얼하고,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고조선부터 내려오는 ‘홍익인간’ 사상에서 축적된 자신감이 있었기에 거의 30만명이 목숨을 내놓고 나아갈 수 있었다. 19세기 마지막에 엄청난 희생을 통해 민주라는 이상을 실천했고, 3·1 만세운동을 거치고, 반독재투쟁 거쳐 오늘날까지 와있는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들의 희생 위에 있다. ”

-<동경대전>이 그렇게 앞선 사상인데도 서구 종교가 승승장구한 것은?

“1920년대 통계에 천도교인이 200만이고 기독교인이 30만명이었다. 기독교 세력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이 등장하면서 ‘좌파 탄압’을 명분으로 삼았다. 빨갱이로 안 몰리려면 크리스천이 되는 게 안전했다. 친미반공이라는, 미군정 하에서 형성된, 아주 불건강한 현상이 세계사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기형의 대형교회를 낳았다. 19~20세기 우리가 정신사적으로 너무 공허해진 틈새로 들어온 서양 종교사상은 완벽한 초월적 존재라는 허구적 존재를 내세워 우리를 공략했다. 그 문명이 과학도 만들어냈지만, 너무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다. 서구 문명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반성이 필요한 때다. 돌멩이 하나에도 생명이 있으며, 모든 대자연이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으며, 자기만 하나의 생명이 아니고 모든 생명이 하나라는 동학의 동귀일체(同歸一體)라야 인류와 지구를 동시에 살릴 수 있다.”

-<성서>의 종말론적인 모습과 달리 수운은 <동경대전>에서 서두르지 말라고 한 이유는?

“가톨릭은 죽음을 권장해 순교자를 만들어 신도를 늘려가는 선교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수운은 ‘나로 인해 너희들이 박해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자신으로 인해 인생을 파탄 내고 고문받지 말라고 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한 뒤에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이란 글을 남긴다.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죽을 테지만 무극대도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테니,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배교를 하고 떠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 ‘그것은 하느님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라고 했다. 떠나면 떠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니, 간다고 시기하고, 저주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서양 종교와 다른 점이다. 수운은 결국은 승리할 텐데 각자 조심하면서 이 도를 지키라고 했다. 동학은 수운이 처형된 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까지 무려 30년 동안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는 동안 조선 정부에서 전혀 알지 못할 만큼 철저히 지하에서 퍼져나갔다. 자기가 희생될 것을 알면서도 남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수운의 마음이 우리가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본 아주머니, 할머니들의 마음이었으니 그렇게 공감을 얻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것이다. 죽음으로 내몰기보다는 조급해하지 말라며, 감싸주고, 감춰주고, 안아주는 게 우리 민족의 심성이 아닌가.”

지난 2018년 &lt;광주MBC&gt; 대강당에서 강연 중인 도올 김용옥 전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지난 2018년 <광주MBC> 대강당에서 강연 중인 도올 김용옥 전 교수. 통나무출판사 제공

-현재 천도교(동학)가 쓰는 ‘한울님’이란 용어는 잘못됐고, 수운은 우리 민족 고유의 ‘하느님’을 썼으니, 본래대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하느님’은 본래 우리 민족이 쓰던 고유의 언어인데, 천도교 교리를 만든 사람들이 천주교에서 하느님이라고 쓰니, 한울이라고 했다. 애국가에서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라고 한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하느님이 보우하사’라고 한 것인데, 이제 ‘기독교가 보우하사’가 되어버렸다. 한울이란 용어는 우리 민족도, 수운도 쓰지 않았고, 보편성도 없다. 동학은 빨리 원래대로 ‘하느님’이란 용어를 되돌려놓아야 한다.”

-고려대와 한신대, 타이완대, 도쿄대, 하버드대 등에서 수학하고, 많은 대학자를 만나 배웠지만,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인물로 표영삼을 꼽은 이유는?

“표영삼 선생의 얼굴만 봐도 수운과 해월이 느껴졌다. 동학 1세대 분들이 가지고 있던 본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분이다. 학교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한문 실력은 대학자보다 뛰어났다. 우리 사회가 개화기 이후 이런 분들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박사 학위가 없으면 깔보는 한심한 풍조가 있었다. 나는 이분을 몇십년 열심히 쫓아다녔다. 이분은 북한에서 동학 운동을 해왔는데, 해방 후 한국에 내려와서는 매우 기뻐했다. 동학의 성지가 모두 남쪽에 있으니 그 장소들을 홀로 다니며 샅샅이 고증해 기록했다. <동경대전>의 근거가 되는 장소들을 다 찾아냈다. 내가 이 책을 낼 수 있는 것도 표영삼 선생과 세밀하게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세미나를 했고, 그분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를 다니고도 공부의 방향을 철학으로 전환한 까닭은?

“여러 이유를 댈 수야 있겠지만, 타고난 기질 때문이다. 신학대에서 살아보니, ‘여기다 내 인생 걸다가는 숨 막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질상 못 견디고 나와버렸다. 서양철학 하다가 견딜 수 없어서 ‘중국 고전’으로 향했다. 동학을 계기로 국학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우리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지만, 어머니는 내가 승복을 입건, 무엇을 하건 존중해주었다.”

-여생의 학문과 삶을 어디로 귀결할 것인가?

“국학이다. 오랫동안 ‘음악’ 하면 서양음악을 말했다. 우리 음악은 국악이라고 한다. ‘미술’하면 서양미술을 말하고, 우리 미술은 동양화, 한국화라고 하며 우리 것을 무시했지만, 이젠 서양에서도 서양음악보다 국악과 한국의 특성을 담은 문화 예술을 더 알아준다.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 율곡은 공부한다는 것은 뜻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성인이 되기 위해 뜻을 세우려면,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을 작게 여겨 물러서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스스로 왜소하고, 비굴하게 자기를 비하한다면 어떻게 수운의 큰 뜻을 실현하며, 세상의 개벽을 이끌 수 있겠는가.

국학도 고전번역연구원에서 그간 번역조차 못됐던 국학 자료들이 많이 번역되면서 과거에 몰랐던 정보가 교차 점검되면서 풍부해져 가고 있다. 국학 분야를 건드리면 재미가 있어 미치게 된다. 나와 연결된, 우리가 살아온 삶과 역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국학이 중흥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고, 벤처할 생각만 하지 말고, 고전을 공부해서, 이 나라의 문명의 깊이를 추구해줬으면 좋겠다. 젊었을 때 지식적 기반을 풍요롭게 쌓는 새로운 풍조가 생겨 석박사 정도는 해놓고, 사업을 해도 된다. 그 정도 깊이가 있어야 우리가 세계 문명을 이끌 수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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