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17만명 강제 이주 ​

신상구 | 2021.08.26 16:49 | 조회 2998


고려인 17만명 강제 이주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이끈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유해가 최근 카자흐스탄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홍범도 장군이 머나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별세한 걸까요? 그 배경에는 1937년 러시아 연해주 등에 살던 우리 동포 약 17만명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야 했던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독립하기 전까지 옛 소련의 일부였습니다. 홍범도 장군 역시 소련이 강제 이주시킨 사람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죠.

느닷없는 강제 이주

1937년 9월 9일 밤, 고려인(옛 소련 지역에 사는 우리 동포) 이주민을 태운 첫 수송 열차가 러시아 동쪽 연해주의 라즈돌노예역을 출발했습니다. 1주일이나 2~3일 전, 심지어 바로 전날 '짐을 싸고 역에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열차가 기적을 울리자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얼굴에는 슬픔과 눈물이 가득했고 "슬퍼 말라. 또 올 날이 있으리라"고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김호준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고려인 대다수는 재산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화물차와 가축 운반차에 짐짝처럼 실려 시베리아를 횡단해야 했습니다. 유리창 하나 없이 문을 널빤지로 막아 '검은 상자'라고 한 열차 안에서 3~4주 동안 무려 6000㎞를 이동했습니다. 그동안 굶주림과 추위, 질병, 사고로 숱한 동포가 안타깝게 죽어갔습니다. 강제 이주를 전후해 숙청당한 사람까지 합치면 당시 고려인 사망자는 2만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나라 없는 약소민족의 비애였습니다.

소련 당국은 강제 이주 직전 고려인 지도층 인사 2500명을 '일본 간첩' '반(反)혁명자'라는 구실로 체포해 대부분 총살했는데, 김단야·박진순 등 소련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이때 희생됐습니다.

스탈린의 민족 탄압 정책

고려인 강제 이주는 특정 민족을 철저히 탄압하는 '국가 테러리즘의 극치'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책임자는 당시 소련의 최고 권력자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었어요. 그는 훗날 북한의 남한 침공 계획을 승인하고 지원해, 한반도에 6·25전쟁의 비극을 일으킵니다.

스탈린은 왜 고려인을 강제 이주시키라고 지시했던 걸까요? 그는 중·일 전쟁이 닥치자 '일본이 연해주로 쳐들어올 수 있는 상황에서 고려인이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고 의심했다고 합니다. 또한 고려인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치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우려했다고 해요. 최근엔 소련이 '고려인의 독립운동이 오히려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고 걱정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중 어떤 것이라 해도 결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이주시킨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한민족 무대를 넓힌 개척자' 고려인

중앙아시아로 간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에 7만여 명, 카자흐스탄에 9만여 명이 배치됐고 이후 다른 지역으로도 분산됐습니다. 생전 처음 겪는 열악한 환경과 맞닥뜨린 이들은 절망했습니다. 마을 하나 없는 벌판도 많았고, 땅굴을 파고 거주하거나 움막에서 살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이들은 끝내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넓이가 한반도의 18배인 중앙아시아에서 조금씩 적응해 가며 벼농사와 목화 농사를 시작해 경작지를 크게 늘렸습니다. 1983년에 이르면 소련 전역의 쌀 생산량 300만t 가운데 카자흐스탄에서 90만t, 우즈베키스탄에서 50만t이 생산됐다고 해요.

고려인의 임차 농업 방식도 주목받았어요. 이 방식은 거주지를 떠나 다른 지역에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거예요. 고려인들은 1년 중 8~9개월을 가족과 떨어져 황량한 들판에서 땀을 흘린 결과 임차료를 내고도 많은 농산물을 자기 몫으로 챙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근면함 때문에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대체로 다른 소수민족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올라섰다고 합니다. 교육열도 대단했고,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노력도 지속됐습니다.

스탈린이 죽은 뒤인 1956년 이들은 비로소 거주 이전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1989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스탈린의 강제 이주에 대해 '불법적 범죄 행위'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중앙아시아 여러 신생국에선 토착민이 세력을 얻고 고려인이 차별 대우를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이들 중 일부는 다시 러시아나 한국으로 이주했죠. 현재 러시아와 옛 소련 지역의 고려인은 약 50만명입니다. 이들에게는 "유라시아 중심부 지역을 한민족의 활동 무대로 만든 선구적 개척자"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연해주]

강제 이주 전 소련에 있던 대다수 고려인은 연해주(프리모르스키)에서 살았어요.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러시아 동쪽 영토 중에서도 두만강을 경계로 한반도와 맞닿아 있는 16만5900㎢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예전엔 발해 영토였고, 1860년 청나라와 러시아의 베이징 조약 이후 러시아 영토가 됐습니다. 그 직후 조선 농민들이 경작지를 찾아 두만강을 넘어 월경하면서 러시아 이주가 시작됐습니다. 1882년 연해주에는 조선인 이주자 수가 1만명을 넘어서, 8000여 명이었던 러시아인보다 많아졌어요.

이곳은 20세기에 들어서서 항일·독립운동의 기지가 됐습니다. 한반도와 인접해 있고 일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덜 미치는 곳이었기 때문이죠. 연해주의 조선인 수만 명이 의병 운동에 참여했고, 최재형·이범윤 등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계획을 세운 곳도 연해주였습니다. 1920년에는 러시아 혁명기의 혼란을 틈타 시베리아를 침략한 일본군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한인 300여 명을 학살한 '4월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참고문헌>


1. 김연주, "[뉴스 속의 한국사] '지옥 열차' 타고 6000㎞ 강제 이주… 척박한 땅 개척해냈죠", 조선일보2021.8.26일자. A29면.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194개(32/80페이지)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회원게시판 이용수칙] 관리자 51001 2023.10.05
공지 상생의 새문화를 여는 STB 상생방송을 소개합니다. 환단스토리 211282 2018.07.12
727 [역사공부방] 대전 15년만의 혁신도시 추가 지정으로 숙원 해결 신상구 3920 2021.10.29
726 [역사공부방]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기념하며 신상구 3752 2021.10.26
725 [역사공부방] 존 로스 선교사, 성경 한글 번역으로 한글 대중화에 기여 신상구 3682 2021.10.25
724 [역사공부방]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 사진 신상구 3823 2021.10.24
723 [역사공부방] 화천대유 사건은 정치적 무능 보여줘 사진 신상구 3695 2021.10.24
722 [역사공부방] 세계 문화유산 백제 예술문화는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신상구 4147 2021.10.24
721 [역사공부방] 위정자들 역사관의 중요성 사진 신상구 3367 2021.10.21
720 [역사공부방] 근대사가 응축된 군산 기행 사진 신상구 4171 2021.10.19
719 [역사공부방] 미국 노벨과학상 35%는 이민자 출신 사진 신상구 3831 2021.10.19
718 [역사공부방] 세계 대학 순위, 서울대 54위 사진 신상구 3723 2021.10.18
717 [역사공부방] 서산 마애삼존불의 유래와 가치 사진 신상구 6743 2021.10.18
716 [역사공부방] 문학상, 무엇이 문제인가 사진 신상구 4851 2021.10.17
715 [역사공부방] 제575돌 한글날의 의미와 유래와 현안 과제 사진 신상구 4329 2021.10.16
714 [역사공부방] 독일의 베냐민 리스트와 미국의 데이비드 맥밀런이 2021년 노벨화학상 공 사진 신상구 4574 2021.10.16
713 [역사공부방] 일본계 미국인 슈쿠로 마나베와 독일의 클라우스 하셀만, 이탈리아의 조르조 사진 신상구 4159 2021.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