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 수난사

신상구 | 2020.11.22 02:45 | 조회 3957

                                                                                 속리산 법주사 수난사
▲ 법주사 전경. 보은군 제공

    아들 고종을 앞세워 대권을 잡은 대원군 이하응은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경복궁을 중건하는 대역사를 벌였다.

왕실에 자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안동김씨 세도에 빛을 잃은 왕권의 회복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많은 돈을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당백전'이라는 이름의 화폐(동전)이다.

    하지만 그 많은 동전을 찍어낼 자재, 청동이 부족했다. 이렇게 청동이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 해결책을 건의했다.

    "속리산 법주사에 '금동미륵장륙상'이 있는데 이것을 헐면 가능하오나 워낙 유명한 사찰의 상징이라 문제입니다."

    대원군은 이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당장 가서 그것을 헐어 한양으로 가져 오라!'

    대원군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 법주사의 일주문. 보은군 제공
▲ 법주사의 일주문. 보은군 제공

    이미 대원군은 가야산에 있는 큰 절을 불태워 없앤 이력이 있다. 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에 묘를 썼는데 그 묘 자리가 바로 가야사라는 절이었다. 이곳에 묘를 쓰면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것이라는 풍수설을 믿고 절을 불태워 없애버리고 그곳 스님들도 쫓아냈던 것. 그렇게 그는 불교와 악연이 겹친 셈이다.

    이렇게 하여 속리산 법주사의 '금동미륵장륙상'은 철거되었고 경복궁을 짓는 경비 충당을 위한 '당백전'으로 제조되었다. 그렇게 그 당시 권력은 거침이 없었다. 만약 요즘 세상에 그와 같은 일이 자행된다면 언론은 물론 불교계에서 들고 일어나 감히 꿈도 못 꿀 것이다.

   이렇게 없어진 금동장륙상을 1939년 청동 대신 시멘트를 자료로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멘트 자재가 갖는
한계성 때문에 전체적 이미지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0년 진짜 청동을 사용하여 불상 재건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청동 160톤이 투입되었고 순금도 20키로가 넘게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동원된 공사 인력만 해도 4500명이나 되었고 3만 명 불자들이 성금을 냈다.

기단 높이 8m에 위에 25m의 높이로 우뚝 선 미륵대불은 아시아에서 제일 큰 불상이므로 법주사의 대표적 이미지가 되고 있다. 특히 아침 동이 틀 무렵과 일몰 때의 황금빛 나는 미륵대불의 모습은 장엄하기만 하다.

▲ 생명수. 보은군 제공
▲ 생명수. 보은군 제공

   참으로 법주사는 우리 역사와 명운을 함께해온 '호국 불교'의 상징이다.

    무엇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 이곳 벽암대사가 궐기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이 때문에 법주사 대웅전 등이 불에 타는 수난을 겪었다.

    이때 국내 유일의 목조 5층탑(국보 55호) 팔상전도 애석하게 소실됐다가 인조 때 다시 복원했다.

정말 속리산 법주사는 국보 15호 쌍사자 석등, 보물 413호 철솥 등 국보와 보물의 보고다.

    심지어 소나무까지도 국보 취급을 받고 있으니 속리산 입구에 있는 '정이품 소나무'가 그것이다. 천연기념물 103호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600년 수령의 이 소나무는 세조 임금과 연관이 있다. 1464년 세조 임금이 법주사를 방문하기 위해 이곳을 지나는데 소나무 가지가 길게 뻗혀 있었다. 그래서 '임금님 연이 가지에 걸리겠다'고 하자 그 가지가 위로 치켜 올려 무사히 통과가 됐다는 것이며 세조 임금은 감동하여 이 소나무에 '正二品(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는 것. '정2품'이면 지금의 장관급. 나무에게도 벼슬을 내린 세조의 성품을 짐작할 만하다.

    신라 진흥왕 14년(서기 553년) 의신(義信)대사가 인도에서 돌아오면서 나귀에 경전을 싣고 이곳에 와서 절을 세웠다는 법주사. 法(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절이라는 뜻의 법주사, 초겨울 경치가 정말 '탈속'을 느끼게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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