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브렉시트의 '보이지 않는' 경고

환단스토리 | 2016.07.07 21:28 | 조회 3932

브렉시트의 '보이지 않는' 경고


문화일보 2016-07-07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자유무역 체제로부터 가장 큰 이익을 봐 온 영국이, 다른 나라에 군함과 대포로 개방을 강요하던 나라가 스스로 폐쇄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유럽연합(EU)은 한마디로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 통합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다국간 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국이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교역까지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통화의 통합,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까지 대륙과 같이 하기는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라고 이해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민투표에 부쳐진 것은 EU의 탈퇴 여부에 대한 판단이고, 시장 통합과 자유로운 교역에까지 역행하는 선택을 한 것이 됐다. 이것이 모든 나라에 잠재해 있는 분리주의, 보호주의 경향을 부추긴다면 세계 경제는 침몰을 면치 못할 것이다. 미국 정치인들도 한국과의 FTA에서 미국이 손해(損害)를 보고 있다고 유권자들에게 영합하고 있지 않은가.


일시적인 금융시장의 요동은 반복되겠지만, 각국이 폐쇄주의로 치달을 경우 식량과 에너지를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에는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선택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국제 무대에서 이러한 분위기의 확산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라 안에서라도 국론(國論)을 단단하게 통일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국론 통일에 기초가 될 몇 가지 사실을 상기시켜 두고자 한다.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다.


대외 개방과 시장 통합은 원래 정치 이슈화할 사안이 아니다. 개방의 이익은 전 국민에게 고르게 조금씩 미치는 반면, 그 부담은 대외 경쟁력이 없는 업종의 종사자들에게 집중적으로 미치기 때문에 지지 세력을 결집하긴 어렵고 반대자들을 부추기긴 너무 쉽다. 상호 개방의 이익을 추구해 세계 무대로 뻗어 나가는 젊은이들은 국민투표에 참여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이런 비대칭성에 기생해 쉽게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는 만큼 그들의 선동에 국가의 명운을 거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도 한·미 FTA를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았고, 정치적 선택에 맡기지도 않았다.


또, FTA와 같은 상호 시장 개방은 수출을 더 많이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개방은 경쟁력 없는 국내 공급자들을 분발하게 하고, 소비자가 더 낮은 가격에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선진국과의 FTA가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개방으로 얻은 이익(利益)을 거둬서 개방으로 손해를 본 사람들의 피해를 보상해 주자는 주장이 적절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개방과 경쟁이 원칙이다. 경쟁력이 없는 것은 자랑이 아니고 국제 경쟁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어떤 국민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 식량과 에너지를 확보할 외화를 벌어 오는데, 국내 시장에서조차 경쟁력이 없는 공급자를 국민의 부담으로 보호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도 비대칭성이 작용한다. 보호의 부담은 온 국민에게 분산돼 잘 인식하지 못하는 반면, 보호의 이익은 제한된 수의 공급자들에게 집중되므로 훨씬 생색이 난다. 정치인들이 보호와 폐쇄 쪽으로 기울기 쉬운 이유다. 


그러나 어떤 산업도 정치가 보호해 주진 못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쌀 시장을 지키기 위해 통상 교섭 과정에서 ‘더 얻을 수 있는 많은 이익을 포기’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지만, 그렇게 해서 쌀 산업, 쌀 시장이 지켜졌는가? 많을 때는 국민 1인당 137.5㎏까지 먹던 쌀을 지금은 62.9㎏밖에 먹지 않는다. 이는 쌀이 다른 먹거리에 시장을 뺏기고 있음을 입증한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먹거리가 직접적인 상호 경쟁 관계에 있는데 쌀 수입을 막는다고 쌀 시장이 지켜지겠는가? 정치인들이 쌀 시장을 지키겠다고 하고 국민도 지지하는 듯하지만, 바로 그 국민이 쌀에 등을 돌리고 있다.


어떤 산업과 일자리를 지켜주겠다는 정치인을 믿어선 안 된다. 경제는 정치인의 선택이나 의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품질·가격 경쟁력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 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 온 국민의 소비 지출은 매일매일 이뤄지는 실시간 국민투표다. 그 외에 무슨 국민투표가 또 필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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