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술 필요한 노벨상 프로젝트

신상구 | 2022.02.25 12:48 | 조회 4339


            대수술 필요한 노벨상 프로젝트

             

   2005년 민동필 전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를 비롯한 과학·예술·인문학 교수들이 모여 ‘랑콩트르(만남)’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세계 일류 과학자들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며 연구하는 ‘은하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 세계 물리학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초대형 시설인 가속기도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구상은 당시 대선 주자였던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은하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달됐고, 공약으로 채택됐다. 이렇게 2011년 11월 기초과학연구원(IBS)이 탄생했다. 연구단 한 곳에 연간 1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최소 10년간 연구 기간도 보장하는 전례 없이 파격적인 시스템이었다. 한국의 염원인 노벨 과학상을 받을 과학자와 연구 성과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속속 연구단에 합류했다. “연구비가 넘쳐서 굳이 IBS에 갈 이유가 없다”고 큰소리치던 한 서울대 교수도 불과 한 달 뒤 IBS에 지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남들 다 지원하는데 안 하면 수준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IBS는 수많은 성과를 냈다. 30개가 넘는 연구단이 매달 수많은 논문을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다. 하지만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IBS의 기형적인 구조가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IBS는 3개 연구단을 접기로 했고, 올해도 일부 연구단이 사라진다. 연구단이 해체되면 구성원들은 모두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한다. 10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공중분해되는 셈이다. 평가표에는 “단장과 부단장 간의 협력 부족” “차별화된 경쟁력 부족” “적합한 차기 연구단장 후보자가 없음” 같은 신랄한 내용이 가득 담겨있다. 올해 평가에 대해서는 과학계 내부의 정치적인 고려가 있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KAIST의 한 교수는 “처음부터 예고된 참사”라고 했다. 학자로서 정점이 지난 과학계 인사들이 명성을 앞세워 연구단장을 맡다 보니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 성과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보통 30~40대에 연구한 결과로 20~30년 뒤 노벨상을 받는데, IBS 연구단장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고 연구 분야도 혁신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원래 본인들이 하던 연구를 소속만 바꿔서 하는데 갑자기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나올 리가 없다. 내부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한 연구단장은 특허를 빼돌린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고 상품권깡, 허위 견적서 등으로 징계를 받은 연구원들도 있었다. IBS의 핵심 시설인 중이온가속기 ‘라온’은 2017년 가동이 목표였지만 계속 일정이 지연되면서 2027년에나 완공될 전망이다. 이 가속기에 조금이라도 관여했던 사람들은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혀를 내두른다. 표면적으로는 기술적 문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알력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10년간 IBS에 투입된 예산은 1조6849억원에 이른다. 서울대 1년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돈을 30여 개 연구단에 쏟아부었는데 노벨상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처음부터 노벨상을 받으려고 연구를 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노벨상을 만들겠다며 특정 과학자들에게 돈을 몰아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수상자들이 입을 모은다. 3000만원, 5000만원이 없어서 하고 싶은 연구를 못하는 젊은 과학자들이 넘쳐난다. 이들의 머릿속 아이디어가 IBS 단장들의 과거 연구 성과보다 노벨상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10년간의 실험이 성공적이지 않았다면, 과감히 칼을 빼들고 수술을 할 때다.                                                                                                                                                             <참고문헌>                                                     1. 박건영, "대수술 필요한 노벨상 프로젝트-저명 과학자에 돈 몰아준 IBS 연구단 잇따라 공중분해 10년간의 실험 사실상 실패… 편중된 R&D 예산 재분배해야", 조선일보, 2022.2.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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