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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三一神誥」가 인도하는 진아眞我(6)

2020.07.21 | 조회 1145 | 공감 0

「삼일신고」 2장에서 “일신一神”의 정체성正體性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문계석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일신’의 기원은 ‘대광명’에서 비롯된다. 동북아 한민족의 태고인들은 ‘대광명’의 중심이 되는 태양을 ‘일신’으로 받들었다. 이후 역사가 진행되면서 태양신의 개념은 그 영역이 확대될 수 있고 지위가 높여질 수 있는 천신天神으로 승격되었다.


천신은 바로 사고와 언어의 증진과 함께 모든 것을 포섭하고 포섭되는 ‘일신’이 된 것이다. ‘일신’은 형이상학적(존재론적)인 의미에서 모든 것들의 ‘존재근원이요 전체를 포괄하는 하나의 신’이다.


「삼일신고」 2장은 ‘일신’이 무엇인가를 간명하게 정의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신은 더 이상의 상위가 없는 존재니라(神在無上一位).

광대한 덕과 지혜와 창조력이 있어(有大德大慧大力)

하늘(天: 존재이법)을 낳고(生天),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를 주관하고(主無數無世界),

온갖 것들을 짓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림이 없느니라(造兟甡物 纖塵無漏).

밝고 영험하고 신령하여 감히 (신의 그런 조화를)

헤아려 이름을 붙일 수가 없지만(昭昭靈靈 不敢名量),

음성과 기운으로 서원하고 기도하면(聲氣願禱)

절연絶緣한 상태에서 (일신을) 친견하리니(絶親見),

진성眞性에서 씨앗을 구하라(自性求子).

그러면 이미 너의 머릿속에 내려와 있느니라(降在爾腦)”. 


‘일신’에 대한 정의를 네 관점에서 분석하여 좀 더 부연敷衍해 보자.

「삼일신고」 2장은 맨 먼저 ‘일신’의 존재론적 위격位格을 밝히고 있는데, ‘일신’은 우주전체를 통틀어 포괄하는, 그 무엇보다도 지극히 존귀하고 더 이상의 상위가 없는 최고의 존재[至尊無上]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일신’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요 시작이고, 모든 것들을 포섭하고 포섭되는 총체성의 존재임을 뜻한다. 따라서 ‘일신’은 모든 것들이 지향하는 바의 형이상학적 제1존재고, 주재위격에 있어서 최고의 존재임을 함축한다.


다음은 ‘일신’의 창조적 본성이 무엇인지를 기술하고 있다. 즉 ‘일신’은 본성상 세 가지 속성, 즉 언제 어디에서나 아낌없이 베푸는 광대하고 위대한 덕성[大德], 그 무엇에도 비견比肩될 수 없는 최고의 지혜[大慧],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위대한 능력[大力]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신’은 ‘덕혜력德慧力’으로 하늘과 땅과 인물 등 온갖 것들을 짓고, 최고의 위격에서 이것들을 총체적으로 주재한다. 


셋째는 ‘일신’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현상의 모든 것들이 산출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즉 ‘일신’은 언제 어디서든 모든 것에 침투해 들어가 커다란 덕성을 발휘하여 티끌만한 것도 빠짐없이 지으며[纖塵無漏], 최고의 지혜로 뭇 세계를 전체적으로 질서 있게 창조하여 관장하고[主無數世界], 위대하고 강력한 힘으로 무수하게 존재하는 개별적인 일체의 것들을 신묘하게도 서로 다르게 지었다[造兟甡物].


따라서 ‘일신’의 모습은 태양과 같이 환하여 아름답고 빼어나기가 영험하고 신묘하기가 이를 데 없지만[召召靈靈], 그로부터 창조되어 어떤 목적을 향해 변화해가는 우주만물은 감히 모두 헤아려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不敢名量]는 것이다. 


마지막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신’과 합일하여 신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일신’이 우주만물을 초월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時空의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 세계 안으로 들어와 모든 것들에 내재하여 있음을 함축한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이는 내면에 비장되어 있는 진아眞我를 회복할 때 가능하다. 진아를 회복하는 길은 수행修行을 통해서다. 




요컨대 마치 고요한 상태에서 하느님께 소원을 빌듯이, 음성과 기운으로 경전을 읽고 주문을 외우며 ‘일신’에게 원을 세우고 기도하노라면[聲氣願禱],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잡념과 외부의 접촉으로부터 발생하는 일체의 망념妄念이 절연된 중도中道의 경계 ‘일신’과 서로 감응하게 되고, 이로부터 ‘일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絶親見].


결과적으로 우리가 ‘일신’으로부터 생명을 품부 받아 태어날 때 원래 갖추고 있는 본연의 진성眞性에서 그 씨앗을 구하면, ‘일신’이 이미 우리 안에 내려와 충만하게 내재해 있음[自性求子 降在爾腦]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일신’의 정체성正體性은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 보자. 그것은 본성상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적인 두 가지 특성, 즉 우주만물에 대한 새로움의 창조성創造性, 그리고 안정과 질서유지를 위한 주재성主宰性으로 요약할 수 있다.


창조성은 ‘일신’이 우선 우주만유가 존재하게 되는 이법을 창조하여 현실적으로 현존하게 하는 것이고, 주재성은 ‘일신’이 우주만유가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생장염장生長斂藏으로 순환해가도록 무위이화無爲以化로 주재한다는 것이다. 


‘일신’의 창조성과 주재성은 어떻게 검증해볼 수 있을까?

이는 천지가 개벽開闢된 이래 더위와 추위가 번갈아 나타나면서 인간과 만물이 살 수 있는 토양과 기후와 환경이 만들어졌고, 이로부터 천지의 만물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지금도 사시사철의 운행에 따라 우주자연의 모든 것들은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창조되고 변화해가고 있는데, 봄이 오면 만유의 생명이 싹이 터서 자라고, 봄의 막바지에 여름이 오면 무성하게 자라나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결실하게 되고, 가을이 깊어지면 겨울이 찾아와 다음의 봄을 기다린다.


이러한 창조와 변화, 그리고 순환의 질서는 한 번도 착오가 없이 진행되어왔다. 이 모든 사실은 자연스럽게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신’의 정체성에서 필연적으로 연유緣由한 것이다.


이에 대해 동학東學의 창도자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는 『동경대전東經大全』에서 ‘천주의 형체가 실제로 나타나있지 않지만, 온 천하에 그 조화의 자취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天主造化之迹]고 말한다.


이제 ‘일신’은 우주세계를 초월해 있는가 아니면 그 안으로 들어와 우주와 동행하는 존재인가를 검토해 보자.


‘일신’은 당연히 신명계神明界의 영역에 속한다. 신명계는 물리적인 우주세계를 초월하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계에 내재적이다. 왜냐하면 물리적인 우주의 세계와 정신적인 신의 세계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하나의 두 측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신’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초월적인 유일신처럼, 아주 먼 우주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계 안으로 들어와 창조변화에 역사役事하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서 ‘일신’은 세계 안에서 모든 생명의 창조에 현실적으로 직접 관여하고 있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 중심에 내재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생명의 탄생에 관련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일신’은 생명의 탄생순간부터 그 안에 내재해 있으면서 끊임없이 생명활동의 중심축을 이룬다. 새로 생겨난 온갖 종류의 초목들이나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각기 자신 안에 ‘일신’이 내재하여 활동하므로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누구에게나 각자 자신 안에 ‘일신’이 내재하지만, 지혜의 눈을 뜨지 못하여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채 일상에 묻혀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일신’을 항상 모시고 있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무지몽매한 어둠의 그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단군세기檀君世紀』 「염표문念標文」은 “일신이 내려와 충만하여 그 본성과 하나가 되어 광명의 인간이 된다[一神降衷 性通光明]”고 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내 안의 ‘일신’을 중심에 극진히 섬김으로써 진인眞人이 될 수 있고, 곧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계에서 광명의 인간, 신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일신’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런 연유에서 수운 최제우는 “하늘의 명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내 마음의 밝고 밝음을 돌아보라[不知命之所在 顧吾心之明明]”, “하늘의 밝은 뜻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내 마음이 유래한 곳을 생각하라[不知命之所在 送余心於其地]”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세계에 내재적인 ‘일신’은 외연적外延的인 신앙의 대상으로 객관화 되면서 숭배되기 시작했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통해 동북아 한민족이 숭앙崇仰하고 받들어온 ‘일신’의 명칭은 지고지순至高至純한 ‘하느님’이다. 여기에서 ‘하느님’이란 ‘하늘[天]’과 존칭어 ‘님’의 합성어이다. 한자어로는 ‘하나의 지극한 대신[唯一至大神’의 의미에서 ‘하늘의 주인[天主]’을 지칭한다.


그래서 동북아 한민족은 옛날부터 ‘천주’로서의 ‘하느님’을 천상계天上界에 조정朝廷을 조직하여 운영하면서 천지만물과 신명계神明界의 전체를 지배하는 최고의 통치자로 받들어 왔고, 또한 지상계地上界에 온갖 생명들을 내려주고 길러주며, 특히 인간의 현실적인 삶에 깊이 관여하고 소통하면서 화복禍福을 가져다주는 인격신으로 숭배해왔던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명칭은 오늘날 다의적多義的인 개념으로 변용되어 등장한다. 그 용례는 한국에 널리 퍼져 있는 불교나 유교, 도교, 심지어 기독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교에서는 우주정사宇宙政事를 행하는 하늘 임금이란 뜻에서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상제上帝를 말하고, 도교에서는 천지조차 없던 시절에 최초로 생겨나 가장 높은 신이 된 원시천존元始天尊 혹은 자미궁紫微宮에 거주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를 언급하고, 불교에서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도솔천兜率天에서 내려와 인간세계를 구제하는 미륵불彌勒佛을 말하고, 서구의 기독교에서는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유일신(God)을 언급하고, 동학에서는 천주天主를 말한다.


‘하느님’에 대한 명칭이 상제, 옥황상제, 미륵불, 유일신, 천주 등으로 각기 다르게 불리더라도 사실 그 지시대상(reference)은 동일한 ‘일신’을 가리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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