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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인도 탐방단 보고: 불교 유적지 8편

2020.08.28 | 조회 5272 | 공감 0

유마거사의 고향 바이샬리에서 『유마경』을 읽다


상생문화연구소 노종상 연구위원


바이샬리는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Mahāvíra(BCE 448?~BCE 376?)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붓다와 동시대에 활약한 인물이었다.


그는 붓다의 닮은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불교와 자이나교의 창시자라는 점이 그렇다. 두 성인은 당시 인도사상계의 전통을 거부하고 개혁을 외친 대표적인 자유사상가였다.


2천5백여 년이 흐른 지금, 두 성인이 인도에서 남긴 결과는 어떤가? 불교는 인도에서 거의 종적을 감추었다. 대신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자이나교는? 인도에서 아직도 건재하다. 인도 거리를 걷다 보면 이따금씩 나체의 자이나교 고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요깃거리’다. 자이나교는 기원후 1세기경에 백의파Śvetāmbara와 나행파Digambara로 분열되었는데, 나체 고행자들은 주로 후자에 해당한다. 



▲열반에 드는 마하비라. 

자이나교 경전 가운데 하나인 <칼파수트라>의 한 대목. 1472년경.

(출처wikipedia) ; 박중서, 『인물세계사』 


북방 대승불교의 상징적 인물, 유마거사

탐방객이 눈길을 주는 풍경은 아무래도 붓다와 그의 사람들 풍경이다. 바이샬리에 와서, 바이샬리 거리를 거닐면서, 암바빨리가 기증한 망고 숲 암바빨리 숲과, 붓다 반열반 후에 그곳에 세워졌을 암라수원정사菴羅樹園精舎와 함께 떠오르는 거룩한 풍경이 있다.


주인공은 유마維摩(Vimalakīrti, 생몰년 미상) 거사다. 아니, 유마거사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유마경』(『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다. 바이샬리에 와서 유마거사, 그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유마경』을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마거사가 누구인가? 흔히 중국에 방거사龐居士·한국의 부설거사浮雪居士와 함께 회자되는, 아니 거사 중의 거사로 불리는 인물이 인도의 유마거사다. 그는 재가불자의 우뚝 선 거인이다. 한자로 유마힐維摩詰, 비마라힐毘摩羅詰 등으로 음역하며 정명浄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라고도 의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전 빨리어 문헌에서는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가공의 인물이라고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그는 북방 대승불교의 상징적 인물이다.



▲유마거사상. 송대 화가 이공린李公麟의 백묘화白描畫. 

세로 91.5cm×가로51.3cm. (소장처) 교토국립박물관.



유마거사. 그는 바이샬리의 대부호였다. 그는 부유하였으나 인색하지 않았다. 붓다의 가르침을 지탱하는 두 개의 큰 축은 자비와 지혜다. 유마거사는 두 축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재가불자로서 그런 자질, 그런 경지에 오르기는 쉽지 않을 터다. 따라서 그는 성공한 재가불자의 대명사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




유마거사는 널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였다. 자비심의 발로다. 인과는 불교를 이루는 하나의 큰 축이다. 일체 만상의 생성괴멸生成壞滅하는 미오迷悟 세계의 모양들은 어느 하나도 인과관계에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흔히 ‘인과응보’라고 한다. 착한 인에는 착한 과, 악한 인에 악한 과가 상응하게 나타나는 법이다. 유마거사의 삶이 하나의 증거다. 그는 널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를 좋아하였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착한 인이다. 그런 인은 필연적으로 좋은 결과를 맺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가 착한 인을 쌓을수록 비례하여 재물은 더욱 쌓여갔다. 또한 그는 부유함으로 더욱 큰 자비를 실천했다. 


불전문학에 따르면 유마거사는 전생에 묘희국妙喜国에 살았다. 물론 불도를 잘 닦았다. 불전문학의 또 다른 전승에는 유마거사가 금속여래金粟如來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대방등대집월장경』에서는 과거세 31겁 전에 비사부여래毗舍浮如来가 세상에 났을 때 당시 석가모니 부처의 전생의 형제였다고 한다.

 

인간으로 화생한 뒤에도 유마거사는 비록 속세에 있었으나 대승불교의 깊은 뜻에 통달하였다. 지혜의 꽃이 활짝 피었다는 얘기다. 그는 무생인無生忍의 경지를 얻어 법신의 대거사로 불렸다. 본인뿐만 아니다. 유마거사의 아내의 이름은 무후無垢라고 알려졌다. 부부는 자녀 한 명씩 두어 아들의 이름은 선사善思, 딸의 이름은 월상녀月上女라고 하였다. 이들 유마거사의 가족 모두가 불법을 깊이 깨달았다. 



유마힐소설경 Vimalakīrtinirdeśasūtra

유마거사가 중심인물이 되는 경전이 저 유명한 『유마힐소설경 Vimalakīrtinirdeśasūtra』이다. 줄여서 『유마경』이라 하며, 별칭으로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ㆍ『유마힐경維摩詰經』ㆍ『정명경淨名經』이라고도 한다.


이 경전의 무대는 바이샬리다. 정확하게는 암마빨리가 바친 암바빨리 망고 숲이다. 또한 이 경전은 장차 인간으로 오실 미륵과 깊은 인연이 있다.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높이 123.5cm. 일본 국보 제1호

(소장처) 일본 교토京都의 고류사廣隆寺



『유마경』은 AD 1세기 혹은 2세기경에 성립되었다고 알려졌다. 서력기원 전후에 인도에서는 부파불교의 출가중심주의, 율법주의,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적 발전으로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등장한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들 가운데 반야부 경전이 있다.


『유마경』은 반야부 경전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반야사상을 바탕으로 성립된 경전이다. 초기 대승경전 중에서는 비교적 그 성립이 오랜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 『유마경』을 ‘대승경전의 선언서’라고 주장하는 것은 내용도 그렇지만, 성립시기에서도 선언적 의미가 있다. 성립 시기는 물론 내용에 있어서도 『유마경』이야말로 ‘경전의 왕’ 『법화경』과 함께 대승불교의 선언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터다.


『유마경』은 반야부 경전 다음에 성립된 초기 대승경전의 하나로서, 교리적으로는 반야개공般若皆空 사상에 의거하여 대승보살의 실천도를 선양하는 한편 정토교의 취지에 의한 재가신자의 종교적 덕목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내용상 반야계통의 문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보살행의  강조, 새로운 불국토관의 제시 등 매우 참신한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대승불교권에서 일찍부터 매우 존숭 받아 왔다.



유마경의 내용

경전 내용의 큰 줄거리는

바이샬리(경전에서는 ‘비야리성’으로 표현한다)의 장자이자 거사인 유마힐이 편협된 소승적 견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불제자들을 각성시켜 속히 대승적인 의식에 눈뜨게 하고자 방편으로 꾀병을 앓아 불제자들에게 문병을 오게 하고, 찾아온 그들에게 대승사상을 현실생활에서 실천하도록 설법한 경전이다.


『유마경』의 한역은 일곱 차례에 걸쳐 번역되었다. 이 가운데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가장 널리 읽혀진 것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유마힐소설경』이다. 구마라집은 406년 중국 장안에서 『유마경』을 번역했다.


구마라집 번역본은 모두 3분分 14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분序分은 제1 「불국품佛國品」에서부터 제4 「보살품」까지이고,

정종분正宗分은 제5 「문질품」부터 제12 「관여래품」까지이며,

유통분流通分은 제12 「관여래품」부터 제14 「촉루품囑累品」까지이다.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제1 「불국품」에는 이 『유마경』이 설해지게 된 배경을 제시하고 있다. 


如是我聞。

一時에 佛在毘耶離菴羅樹園하사 

與大比丘眾 八千人이며 俱菩薩三萬二千이니.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부처님께서 비야리성의 암바빨리 동산에 비구 팔천 명과 보살 삼만 이천

명과 함께 계셨다.


『유마경』은 이렇게 시작된다. 본문 중의 ‘비야리’는 물론 탐방객이 지금 강시명 박사, 김현일 박사, 칸 앞잘 아흐메드 박사 등 일행과 함께 걷고 있는 바이샬리를 가리킨다. ‘암라수원’은 다름 아닌 암바빨리가 시주한 동산이다.  




불교경전에서 누가 이 경(의 가르침)을 듣느냐, 그 사람들을 ‘대고중對告衆’이라고 한다. 대고중이란 붓다가 법을 설하는 데 대해 상대가 되는 대중을 가리킨다.


경전읽기를 할 때 대고중이 누구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 경전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까닭이다. 


대고중은 비구比丘(남성출가자)·비구니比丘尼(여성출가자), 우바이優婆夷(남성 재가불자)·우바새優婆塞(여성 재가불자)도 있고…, 천룡팔부天龍八部 그리고 보살도 있다.


본문 중에 ‘대비구중’은 비구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성문중聞衆‘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성문śrāvaka이란 붓다의 음성을 들은 불제자를 말한다. 본문에서 비구중이 8천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보살이 3만2천이다. 무엇을 말하는가? 『유마경』이 대승경전이라는 얘기다.


보살 3만2천 명 가운데 앞좌석에는 미륵이 있다. 




제2 「방편품」에서는 이 경의 중심인물인 유마거사(경전에서는 ‘유마힐’로 기록하였다)가 병을 방편으로 삼아 몸의 무상無常함에 대해 일깨워주고, 무아無我의 도리와 법신에 대해 설한다.


제3 「제자품」에서는 붓다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사리불, 목건련 등 성문의 대제자들이 각기 유마힐과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문병 가는 것을 사양한다.


그리고 제4  「보살품」에서는 미륵보살 등 많은 보살들이 등장하여 유마힐의 덕을 찬탄한다.


특히 보살 중에서 미륵보살이 가장 먼저 불려 나온 것이 눈길을 끈다. 이기영 박사에 따르면 그 다음에 나오는 보살들은 ‘별로 이름 없는 보살들’이다(이기영, 『유마경 강의』). 미륵보살은 과거에 유마힐과 있었던 인연에 대해 말했다.


제5 「문수사리문질품」에서는 문수보살이 붓다의 분부를 받들고 유마힐의 문병을 간다. 경전의 무대가 비야리성의 암라나무 동산에서 유마힐의 방장方丈(후대에 사찰의 주지스님을 방장이라 칭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다)으로 옮겨졌다는 얘기다.


이 자리에서 유마힐은 병의 근본이 나에 대한 집착에 있다고 말하고 보살행에 대해 설한다. 진정한 보살행이란 생사에 머물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청정행을 닦으며, 열반에 들지라도 보살의 길을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오히려 재가거사인 유마힐이 보살의 우두머리격인 문수보살에게 훈수를 둔다. 




이후 문수보살과 유마힐의 대화는 절정을 향해 달린다. 두 현자가 주고받은 문답이 바로 『유마경』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문수보살이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해야 불도에 통달할 수 있습니까?”

유마거사가 대답한다. “만약 보살이 도가 아닌 길[非道]을 간다면 곧 불도에 통달한 것입니다.”


역설의 논리다. 말인즉, ‘도가 아닌 길을 행하되 그것에 구애되거나 빠져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불도에 통달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대승경전에서 이런 언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마경』이 손에 꼽힌다.


깨달은 자의 언설이란 그런가. 유마거사의 언설이 심금을 울린다. 유마힐은 지혜는 아버지이고 방편은 어머니라고 말한다. 또한 보살에게는 병이 없지만 중생이 병든 탓으로 보살도 병이 든다고 하였다. 자식이 병든 것을 본 부모가 병이 없음에도 아프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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