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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바로알기] 한국사 왜곡의 결정적 사건 8가지 (4)

2021.05.10 | 조회 12519 | 공감 1

한국사 왜곡의 결정적 사건 8가지 (4)

- 불태워진 「서효사」, 잿더미가 된 역사의식!


대한의 후손들은 고구려가 멸망당한 후 만주를 상실하고 한반도에 갇혔다. 고려 시대에는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에 굴욕을 당하기도 했고, 조선에 이르러서는 소중화를 자처할 지경까지 국력이 쇠잔해졌다. 이 와중에 실로 중차대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태종太宗 이방원의 「서효사誓效詞」 소각 사건이다.


이번 달에는 지나족의 눈치를 보며 우리 스스로 태운 「서효사」에 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까 한다. 태종은 왜 동방 조선의 역사서인 「서효사」를 불태웠을까? 불타 버린 「서효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서효사」란 어떤 글인가?

「서효사誓效詞」는 ‘맹세할 서誓, 본받을 효效, 말씀 사詞’ 자로 문자적으로는 ‘하늘에 맹세하고 본받는 글’이라는 뜻이다. 이 「서효사」를 일명 「신지비사神誌秘詞」라고도 한다. ‘신지神誌에 의해 기록된 비밀스러운 글’이라는 뜻이다.


그럼 하늘에 고하는 글, 제천문인 「서효사」(신지비사)에 관한 현재 전하는 문헌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며 진면목을 파악해 보자. 「서효사」는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환단고기』 등에 기록되어 전한다.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나타난 「서효사」

自稱姓盖名金(자칭성개명금) 位至蘇文(위지소문) 乃侍中職也(내시중직야)

그(개소문)는 스스로 성을 개盖라 하고 이름을 금金이라 했으며 지위가 소문蘇文에까지 이르니 바로 시중侍中의 벼슬이다.


唐書(당서) 云(운) 盖蘇文(개소문) 自謂莫離支(자위막리지) 猶中書令(유중서령)

『당서』에는 개소문이 자칭 막리지莫離支라고 했으니 당나라의 중서령과 같은 것이라 했다.


又按(우안) 神誌秘詞序(신지비사서) 云(운) 蘇文(소문) 大英弘(대영홍) 序幷注(서병주)

또 「신지비사」의 서문을 보면 ‘소문 대영홍이 서문을 쓰고 주를 달았다’고 했다.


則蘇文乃職名(즉소문내직명) 有文證(유문증) 而傳云(이전운) 文人蘇英弘序(문인소영홍서) 未詳孰是(미상숙시)

그렇다면 소문은 직책명이라는 증거이다. 전傳에는 문인 소영홍이 서문을 썼다 했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삼卷第三 흥법興法, 보장봉노寶藏奉老 보덕이암普德移庵)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일연 스님은 보장왕寶藏王과 (연)개소문蓋蘇文의 대화를 통해 「서효사」의 다른 이름인 ‘신지비사’를 전한다. 다만 그 본문은 전하지 않고, “‘소문蘇文 대영홍大英弘 서병주序幷注’, 소문 대영홍이 서문을 쓰고 주를 달았다.”라고만 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일연 스님 시절에 분명 「신지비사」라는 문서가 존재했고, 관직명이 소문蘇文인 대영홍大英弘이 서문과 주석을 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사』가 전하는 「서효사」

「서효사」 본문의 일부는 세종대왕 시절 편찬된 『고려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려사』를 보면, 고려 중기 숙종 임금 때 김위제金謂磾라는 신하가 『도선비기道詵秘記』와 「신지비사神誌秘詞」를 근거로 하여 남경 천도를 건의했다고 한다.




金謂磾(김위제) 肅宗元年(숙종원년) 爲衛尉丞同正(위위위승동정)

김위제는 숙종 원년(1096)에 위위승동정衛尉丞同正이 되었다.


新羅末(신라말) 有僧道詵(유승도선) 入唐學一行地理之法而還(입당학일행지리지법이환) 作秘記以傳(작비기이전)

신라 말기에 승려 도선道詵이 당에 들어가 일행一行의 지리법地理法을 배우고 돌아와 비기秘記를 지어 후세에 전하였다.


謂磾學其術(위제학기술) 上書請遷都南京曰(상서청천도남경왈)

김위제가 도선의 술법을 공부하여 남경으로 천도하자고 요청하는 상서를 올리며 말하기를,


道詵記云(도선기운) 高麗之地(고려지지) 有三京(유삼경) 松嶽爲中京(송악위중경)

木覓壤爲南京(목멱양위남경) 平壤爲西京(평양위서경)

「도선기道詵記」에 이르기를, ‘고려의 땅에는 3경京이 있으니, 송악松嶽이 중경中京이 되고, 목멱양木覓壤이 남경南京이 되며, 평양平壤이 서경西京이 된다.


十一十二正二月(십일십이정이월) 住中京(주중경) 三四五六月(삼사오유월) 住南京(주남경)

七八九十月(칠팔구시월) 住西京(주서경) 則三十六國朝天(즉삼십육국조천)

11월·12월·1월·2월에는 중경에 거주하고, 3월·4월·5월·6월에는 남경에 거주하며, 7월·8월·9월·10월에는 서경에 거주하면 36개 나라가 와서 조공을 바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중략)


又神誌秘詞曰(우신지비사왈) 如秤錘極器(여칭추극기) 秤幹扶疎樑(칭간부소량)

錘者五德地(추자오덕지) 極器百牙岡(극기백아강)

또 「신지비사神誌秘 詞」에서 말하기를, ‘저울추[秤錘]와 저울접시[極器]에 비유하자면 저울대[秤幹]는 부소량扶疎樑이며, 저울추는 오덕五德을 갖춘 땅이고, 저울머리는 백아강百牙岡이다.


朝降七十國(조항칠십국) 賴德護神(뇌덕호신)

(이곳에 도읍을 정하면) 70개 나라가 항복하여 조공을 바칠 것이며 땅의 덕에 힘입어 신기神氣를 수호할 수 있을 것이다.


精首尾(정수미) 均平位(균평위) 興邦保太平(흥방보태평) 若廢三諭地(약폐삼유지) 王業有衰傾(왕업유쇠경)

저울의 머리와 꼬리를 정밀하게 하여 수평을 잘 잡을 수만 있다면 나라를 융성하게 하고 태평성대를 보장받을 것이고, 만약 비유로 들은 세 곳의 땅을 버린다면 왕업은 쇠퇴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김위제는 고려의 수도(중경)인 송악, 서경인 평양과 더불어 남쪽에 남경을 열어 왕이 넉 달씩 순회, 거주하며 국정을 볼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면서 도선道詵의 풍수지리서인 『도선기道詵記』와 「신지비사」를 통해 삼경三京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삼경제도는 석 삼에 서울 경 자로 수도를 셋을 두고 통치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려 중기까지 『신지비사』의 핵심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가 전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핵심은 삼한의 저울추와 저울대, 저울접시에 해당하는 세 수도가 조화롭게 유지될 때 ‘조항칠십국朝降七十國’, 즉 주변 칠십 나라가 조공을 하고, 태평성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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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이 전하는 「서효사」 소각 사건

이제 「서효사」 소각 사건의 핵심을 『조선왕조실록』 원문을 통해 살펴보자.

命史官金尙直(명사관김상직) 取忠州史庫書冊以進(취충주사고서책이진) …

1412년(명 영락永樂 10년) 사관史官 김상직金尙直에게 명하여 충주忠州 사고史庫의 서적을 가져다 바치게 하였는데 ...


且命曰(차명왈) 神秘集(신비집) 毋得披閱(무득피열) 而別封以進(이별봉이진)

「신비집神秘集」 은 펴 보지 못하게 하고 따로 봉하여 올리라.


上覽其集曰(상람기집왈) 此書所載(차서소재) 皆怪誕不經之說(개괴탄불경지설)

임금이 그 책을 보고 말하기를, “이 책에 실린 것은 모두 괴탄怪誕하고 불경不經한 설說이다.” 하고,


命代言柳思訥焚之(명대언유사눌분지) 其餘下春秋館藏之(기여하춘추관장지)

대언代言 유사눌柳思訥에게 명하여 이를 불사르게 하고, 그 나머지는 춘추관春秋館에 내려 간직하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 8월 7일(기미) 둘째 기사)


태종太宗 이방원(1367~1422)은 충청도 충주忠州의 사고史庫(역사도서 보관서)에 보관 중이었던 많은 도서 중에 왜 『신비집神秘集』만 별도로 올리라 했는가? 그것도 ‘무득피열毋得披閱 이별봉이진而別封以進’(펴 보지 말라. 따로 봉하여 올리라.)이라고 엄명했을까?


태종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다섯째 아들로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많은 형제와 신하를 숙청했다. 결국 태종은 1400년부터 18년간 재위했지만 상국으로 모신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왕자의 난으로 아버지의 뜻을 저버려 정통성이 약한 이방원은 대국으로 모신 중국에 작은 빌미라도 잡히지 않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찌된 연유인지 「서효사」를 ‘차서소재此書所載 개괴탄불경지설皆怪誕不經之說’이라 평가해 버렸다. 즉 이 책에 실린 내용이 ‘모두 괴탄怪誕하고 불경不經한 설說’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대권 장악을 용인해 준 상국 중국에 불경한 내용이자, 기이하게 현혹시키는 글이라는 것이다. 이런 죄목으로 『신비집』은 진시황의 분서 사건처럼 불태워진다.


우리는 진시황의 분서焚書 사건은 알지만 조선 시대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해 스스로 한 분서 사건은 잘 모르고 있다. 결국 ‘괴탄불경지설’이라는 죄목을 붙여 동방 조선의 제천문이자 역사서인 「서효사」는 불태워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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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가 전하는 「서효사」의 원문

이제 『환단고기』가 전하는 「서효사」의 원문을 통해 어떤 부분을 조선 3대왕 태종이 ‘불경지설不經之說’로 판단했는지 살펴보자.




그 전에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기록된 「서효사」의 집필 시기와 의도를 간략히 알아보자. 「서효사」는 6세 달문達門단군 때인 단기 285년, 서기전 2049년에 제작되었으며, 달문 단군이 여러 제후국의 왕들과 함께 상춘常春의 구월산九月山에 모여 천제를 올릴 때 신지神誌 발리發理로 하여금 짓게 한 제천문이다.


『환단고기』가 전하는 「서효사」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밝은 조선 땅과 삼신에 관해 전해 준다.

朝光先受地(조광선수지)에 三神赫世臨(삼신혁세림)이로다

아침 햇살 먼저 내려받는 이 땅에 삼신께서 밝게 세상에 임하시도다.


「서효사」의 일성은 ‘조광선수지와 삼신혁세림’이다. 우리 대한의 조상들은 만물을 깨우는 아침 햇살이 가장 먼저 비치는 동방의 땅에 터전을 잡았고, 이 땅을 삼신三神께서 밝게 강림하시는 성스러운 땅으로 여겼다. 이때 삼신은 대자연 그 자체인 원신元神이며, 삼신상제는 삼신과 하나 되어 온 우주를 다스리는 우주의 절대자를 말한다.


「서효사」에서 ‘삼신이 임하신다’고 했는데 이 삼신은 원신元神과 주신主神의 성격을 다 포함한다. 즉 우리 동방의 조상들은 천지광명 문화를 성취할 근본이 삼신에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동방의 원형문화를 잘 모르는 독자는 우리 조상들이 깨친 고유한 우주관, 신관이 없는 줄 안다. 그들은 우리 것은 무속, 샤머니즘이 아닌가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제日帝가 우리 문화 말살을 위해 의도적으로 깎아내린 식민사관에 오염된 의식이다.


왜 서양 사람들만 고결한 하나님을 인식했고, 해가 먼저 뜨는 이 동방 땅의 선조들은 하나님을 몰랐단 말인가? 우리의 신에 관한 암각화나 기록은 유대족의 기록보다 앞선다. 하나님이란 언어는 고유한 한민족의 언어이지 서양의 GOD의 번역어가 아니다.


또한 우리 대한의 조상들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발견해 우주관을 세웠고, 오행사상을 정립했다. 이런 우주관과 더불어 우주의 하나님을 인식했다. 동방의 하나님관은 서양의 GOD 관념보다 대자연 섭리를 잘 이해하고, 인간의 가치를 높여 주었다. 한마디로 이 삼신상제문화 속에 동방조선의 원형 정신과 위대한 깨침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하여튼 우리는 「서효사」의 첫 구절을 통해서 삼신에 의해 큰 축복을 받은 동방 땅, 배달과 단군조선의 밝은 터전에서 동방 조선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대한 국통맥의 핵심 인물에 관해 전해 준다.

桓因出象先(환인출상선)하사 樹德宏且深(수덕굉차심)이로다

환인께서 삼신의 도를 먼저 여셔서 덕을 심으심이 크고도 깊도다.


諸神議遣雄(제신의견웅)하사 承詔始開天(승조시개천)이로다

모든 신성한 이들이 의논하여 환웅을 보내시니

환인께서 환인의 명을 받들어 처음으로 나라를 여셨도다.


蚩尤起靑邱(치우기청구)하시니 萬古振武聲(만고진무성)이로다

치우천황께서 청구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용을 떨치셨도다.


淮岱皆歸王(회대개귀왕)하니 天下莫能侵(천하막능침)이로다

회수, 태산 모두 천황께 귀순하니 천하에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도다.


王儉受大命(왕검수대명)하시니 懽聲動九桓(환성동구환)이로다

단군왕검께서 하늘의 명을 받으시니 기뻐하는 소리가 구환에 울려퍼졌다.


魚水民其蘇(어수민기소)오 草風德化新(초풍덕화신)이로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백성들이 소생하고 바람이 풀 위에 불 듯 덕화가 백성을 새롭게 했도다.


怨者先解怨(원자선해원)이오 病者先去病(병자선거병)이로다

원한을 가진 자는 먼저 그 원한을 풀어주고, 병든 자는 먼저 고쳐주셨도다.


一心存仁孝(일심존인효)하시니 四海盡光明(사해진광명)이로다

일심으로 어짊과 효를 지니시니 온 천하가 광명으로 충만하도다.


하늘에 고하는 제천문인 「서효사」는 삼신께서 점지해 주신 이 땅을 개척한 대한 국통맥의 핵심 인물들을 명확하게 잡아 준다. 환인, 환웅, 치우천황, 단군왕검으로 전개된 큰 역사의 맥을 전해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효사」는 『환단고기』가 전하는 3,301년 환국 환인의 역사, 1,565년 배달국 환웅, 치우천황의 역사 그리고 2,096년간 지속된 단군조선의 개창자 단군왕검의 통치정신을 짧은 글 형식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리가 「서효사」와 『삼국유사』 「고조선」 조를 함께 보면 대한의 국통맥인 환국과 배달, 단군조선의 맥을 명확히 잡을 수 있다.




환인천제께서 삼신의 도를 먼저 심어 환국을 여셨고, 환웅천황께서 환국 말기에 환인의 명을 받아 천부와 인을 가지고 동방 땅을 개척하여 동방의 첫 국가(배달)를 세웠다. 배달의 14세 치우천황은 서방으로 진출해 청구 땅을 개척하였는데 그때 회수, 태산 지역이 모두 귀순하고, 천하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었음을 전한다.


또 단군왕검께서 배달국 말기에 흩어졌던 구환九桓의 백성들을 덕화德化와 해원解怨, 일심一心의 정신으로 크게 통일하여 단군조선이라는 대제국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단군조선의 통치 정신인 삼한관경제와 삼경제도가 어떻게 하면 영원할 수 있는지 전해 준다.

眞韓鎭國中(진한진국중)하니 治道咸維新(치도함유신)이로다

진한이 삼한의 중심을 굳게 지키니 다스림의 도가 다 새로워졌도다.


慕韓保其左(모한보기좌)하고 番韓控其南(번한공기남)이로다

모한(마한)은 왼쪽을 지키고 번한은 남쪽을 제압하도다.


巉岩圍四壁(참암위사벽)하니 聖主幸新京(성주행신경)이로다

거룩하신 임금께서 새 수도에 납시도다.


如秤錘極器(여칭추극기)하니 極器白牙岡(극기백아강)이오

秤榦蘇密浪(칭간소밀랑)이오 錘者安德鄕(추자안덕향)이로다

삼경이 저울대, 저울추, 저울판 같으니 저울판

은 마한 수도 백아강이요 저울대는 진한 수도

소밀랑이요 저울추는 번한 수도 안덕향이로다.


首尾均平位(수미균평위)하야 賴德護神精(뇌덕호신정)이로다

머리와 꼬리가 고르게 균형을 이루어서

임금의 덕에 힘입어 삼신의 정기를 잘 간직하도다.


興邦保太平(흥방보태평)하야 朝降七十國(조항칠십국)이로다

나라를 흥성시켜 태평성대를 이루니 일흔 나라가 조회하도다.


永保三韓義(영보삼한의)라야 王業有興隆(왕업유흥륭)이로다

삼한의 근본정신을 영원히 보전해야 왕업이 흥하여 번성하리로다.


興廢莫爲說(흥폐막위설)하라 誠在事天神(성재사천신)이로다

나라의 흥망을 말하지 말지니 진실로 천신(삼신상제님)을 섬기는 데 달려 있도다.




동방 문명의 장자국인 단군조선은 독특한 문화인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로 통치했다. 단군조선은 한민족 원형정신인 삼신관에 따라 셋이면서 하나인 체계, 즉 삼한관경제로 통치했다.


넓은 영토의 중앙은 대단군이 직접 통치하고, 주변은 부단군을 두어 다스린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만주의 중앙은 진조선의 대단군이 통치하고, 요서와 북경 주변의 번조선과 한반도의 마조선은 부단군이 통치한 것이다. 이것이 고유한 한민족의 국가 통치제도였다.




그리고 「서효사」는 단군조선의 삼경三京제도가 균형을 이룰 때 임금의 덕에 힘입어 삼신의 정기를 잘 간직해, 영원히 단군조선이 태평성대를 이룰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조항칠십국朝降七十國’이 실현될 것이라 했다. 실제로 삼경제도가 굳건했던 단군조선은 칠십여 나라의 조공을 받은 대제국이었다.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연구』에서 ‘단군조선은 강역이 넓었기에 신하의 여러 나라들을 거수국渠帥國(제후국)으로 삼아 다스렸다’고 했고, 이덕일 교수는 『이덕일의 한국통사』에서 ‘고조선은 중국의 제후국과 같은 거수국을 거느린 황제국가였다’라고 했다.


태종이 두려워한 서효사

태종 이방원은 ‘조항칠십국’ 즉 70여 제후국가에서 조공을 바칠 것이라는 놀라운 구절을 보고, 중국 사신의 눈치를 보며 불살라 버렸을지도 모른다. 태종은 중국 변방의 작은 소국 조선의 상고사가 70여 나라에게 조공을 받을 정도였다니 심히 놀랐을 것이다.


「서효사」야말로 중국이 알면 큰일 날 문서, 불안한 자신의 입지를 흔들 도서라 여기고 별도로 올리라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태종은 「서효사」를 ‘불경지설不經之說’로 규정하며, 불태워 버렸다. 자신의 안정적인 통치를 위해서 상고사 원전을 포기한 것이다.


조선 초기에 한민족 뿌리를 노래한 대서서시 「서효사」가 불태워질 때 대한의 혼과 역사 정신도 함께 불살라졌다. 찬란한 천손민족에게 내려오던 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의 역사 교훈도 모두 불살라졌다. 이는 찬란한 상고사를 잃어버린 소중화 조선의 아픔이자, 울분이며, 죄악인 것이다.


「서효사」는 마지막 구절에서 나라의 흥망이 다른 데 있지 않고 ‘사천신事天神’ 즉 천신을 모심에 있음을 전한다. 여기서 사事는 일 사 자가 아닌 모실 사 자다. 동학의 시천주侍天主와 통한다. 태초에 조상들이 깨달아 섬겨 왔던 천신, 삼신상제님을 참되게 모심으로써 임금과 신하, 백성들이 바로 서고, 국가가 흥하게 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서효사의 역사관

우리는 ‘서효사 역사관’을 통해 무엇보다 삼한관경제로 다스린 단군조선 전체를 조명해 봐야 한다. 큰 안목을 갖고, 지나족의 기록과 비교해 봐야 한다.


「서효사」 역사관은 후에 행촌杏村 이암李嵒이 쓴 『단군세기』와 조선 중종 임금 때의 찬수관撰修官(사관)을 지낸 행촌의 현손 이맥李陌이 쓴 『태백일사』를 통해 보다 명확하게 정리된다.




우리는 「서효사」를 통해 사마천이 『사기』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한 연나라 추장, 위만衛滿 이야기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위만은 단군조선의 중앙 진조선 강역을 다스린 역사가 아니라, 삼한관경제의 서쪽 변방인, 기준왕이 다스리던 번조선 강역한 도적이다. 그런데 현 교과서에서는 번조선 말대의 역사를 전체 단군조선의 역사로 포장한 사마천의 『사기』를 기준으로 삼아 대한 국통맥의 중심에 놓고 위만을 문명의 전수자로 칭송한다


 이것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중화사관과 일제식민사관의 잔재이다. 현 중·고등 교과서는 지나인의 기록을 맹신한 소중화 교과서의 틀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 대한의 후손들이 「서효사」의 삼한관경제만 제대로 이해해도 사마천이 한 무제를 높이기 위해 조작한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실체를 알 수 있다. 또한 7세기 수 양제의 고구려 공격 명령만 잘 읽어 봐도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음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수 양제는 분명 현도, 낙랑 등의 한사군 강역을 지나서 고구려 평양성으로 집결하라 한 것이다. 식민사관의 주장 그대로 낙랑이 평양성에 세워졌다면 수 양제는 정신병자 황제가 되고 만다. 낙랑인 평양성으로 가는데, 낙랑을 통과해서 진군하라는 엉뚱한 명을 내린 셈이기 때문이다.


서효사는 대한의 역사 정신을 되찾아 주는 최초의 교과서다. 서효사의 진정한 가치를 볼 줄 아는 대한의 후손은 중화사관으로 조작한 역사의 실체를 단숨에 파악한다. 아울러 단군조선의 본조인 진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영웅 해모수, 동명왕 고두막한, 고주몽 성제로 이어지는 부여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서효사」 역사관, 대한사관으로 국통맥을 바로 세우자

「서효사」는 한마디로 한민족 국통의 맥과 정신 그리고 삼한관경제라는 통치제도까지를 망라한 제천문祭天文, 동방 조선의 통치자가 하늘에 고한 거짓 없는 천지 기도문祈禱文이다.


하늘에 올리는 제천문은 거짓이 없다. 환국의 신교문화 맥을 간직한 인도인印度人도 그들의 법(다르마)에 따라 자신과 남을 속이지 않고 존중하며 산다고 한다. 하물며 환국의 종통권인 천부인天符印을 받아 온 동방 배달의 대인, 배달국의 정신을 계승한 동방 조선의 선조는 어떠했겠는가?


천지를 부모로 모시려면 원만함과 참됨은 근본 중에 근본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참됨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생각했다. 이런 동방 조선의 참된 역사와 혼을 제천문에 아로새긴 것이 「서효사」요, 「신지비사」인 것이다.


우리 대한의 후손들은 이제 단군조선의 사관인 신지의 역사 기록 정신 그대로 바로 서야 한다. 대한 국통맥의 중심인 환인, 환웅, 단군왕검의 역사 정신을 터득해야 한다. 아울러 「서효사」를 체體로 하여 『환단고기』가 전하는 환국 시대의 가르침인 「천부경」과 환국 오훈을 배워야 하고, 배달국의 가르침인 「삼일신고」와 단군조선의 가르침인 「홍범구주」와 「염표문」을 배워야 한다.


대한의 원형문화 정신에 흠뻑 젖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대한의 저울대로 중화사관과 일제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 세워야 한다.


ⓒ 월간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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