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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의 고향을 찾아서(18) - 두보의 시「석호촌의 관리(石壕吏)」

2023.10.27 | 조회 1435 | 공감 0



상생문화연구소 원정근


【풀이】 

당 숙종 건원 2년(759) 곽자의 등이 60만 대군의 토벌군이 업성에서 안록산의 반란군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토벌군의 지휘부가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사명의 구원병에 의해 대패하였다. 당 왕조는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낙양에서 서쪽으로 동관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강제로 징집하였다. 이때, 두보는 낙양에서 동관을 거쳐서 화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

날 저물어 석호촌에 묵었는데,

관리가 밤에 사람을 잡으러 왔네.

할아범은 담 넘어 달아나고,

할멈은 문 밖에 나가보네.

관리의 호통은 어찌 그리 사납고,

할멈의 울음은 어찌 그리 괴로울꼬?

할멈이 앞으로 나가 말하는 걸 들으니,

“세 아들 업성에서 수자리한다오.

한 아들이 편지를 보내 왔는데,

두 아들이 요사이 싸움에 죽었다 하오.

산 사람은 잠시나마 구차하게 살아가겠지만,

죽은 사람은 영양 그만이라오.

집안에는 다시 사람이 없고,

오직 젖먹이 손자뿐이라오.

손자가 있어 어미는 떠나지 못하였지만,

나들이할 온전한 치마도 없다오.

늙은 할미가 기력은 비록 노쇠하나,

나리를 따라 밤에 가기를 청하옵니다.

급히 하양의 전투에 나가게 된다면,

오히려 아침밥을 지을 수 있을 겁니다.”

밤 깊어 말소리 끊겼으나,

흐느껴 우는 소리 들리는 듯하네.

날이 밝아 길을 떠날 제,

홀로 할아범과 이별하누나.

모투석호촌暮投石壕村,

유리야착인有吏夜捉人.

노옹유장주老翁踰墻走,

노부출문간老婦出門看.

이호일하노吏呼一何怒,

부제일하고婦啼一何苦?

청부전치사聽婦前致詞,

“삼남업성수三男鄴城戍.

일남부서지一男附書至,

이남신전사二男新戰死.

존자차투생存者且偸生,

사자장이의死者長已矣.

실중갱무인室中更無人,

유유유하손惟有乳下孫.

유손모미거有孫母未去,

출입무완거出入無完裙.

노구력수쇠老嫗力雖衰,

청종리야귀請從吏夜歸.

급응하양역急應河陽役,

유득비신취猶得備晨炊.”

야구어성절夜久語聲絶,

여문읍유인如聞泣幽咽.

천명등전도天明登前途,

독여노옹별獨與老翁別.


시의 제목은 「석호촌의 관리(石壕吏)」다. 석호촌에서 하루 밤을 보내다가 우연히 관리가 백성들을 징발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보의 시는 개인의 불우한 처지와 신세에 대한 감개를 노래한 시도 많지만, 그의 주요한 주제의 하나는 혼란한 시국상황에 대한 우국충정을 노래하는 것이다. 두보의 시는 시로 쓴 역사라는 의미에서 시사詩史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밤중에 백성을 전쟁터로 잡아가기 위해 관리들이 어느 한 가정집을 급습하였다. 할아범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담을 넘어 달아났다. 할멈은 집안 사정을 하소연했다. 세 아들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두 아들은 전사했다는 것이다. 며느리는 젖먹이 어린 손자가 있어 개가하지 못하고 집에 남아 있지만, 변변한 옷이 없어 밖에 나돌아 다닐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할멈은 자신이 부역에 나가겠다고 자청하였다. 할아범 대신에 할멈이 관리를 따라 전쟁터에 끌려갔다.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참혹한 현장을 역사소설처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

 맑은 강 한 굽이 마을 안고 흐르나니,

긴 여름 강촌에는 일마다 그윽하네.

절로 가고 절로 오는 건 들보 위의 제비,

친하고 가까운 건 물 가운데 갈매기.

늙은 아내는 종이에 그려 바둑판을 만들고,

어린 아이는 바늘 두드려 낚시 바늘을 만드네.

병 많아 필요한 건 오직 약물뿐이니,

미천한 몸 이 밖에 무얼 구하리오?

청강일곡포촌류淸江一曲抱村流,

장하강촌사사유長夏江村事事幽.

자거자래량상연自去自來梁上燕,

상친상근수중구相親相近水中鷗,

노처화지위기국老妻畵紙爲碁局.

치자고침작조구稚子敲針作釣鉤,

다병소수유약물多病所須唯藥物,

미구차외갱하구微軀此外更何求?


안록산의 난을 피해 성도成都에 정착하여 살던 시절에 지은 시다. 이때 시인의 나이는 49세였다. 두보는 주위의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과 오붓하게 평화로운 삶을 누렸다. 전란으로 고향에 대해 그리움을 노래하던 것과는 달리, 가족들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삶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은 「강촌江村」이다.


긴긴 여름날 한가로운 강촌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맑은 강이 마을을 안고 흐르고, 제비와 갈매기가 한가로이 날고 있다. 시인의 평화로운 심경을 엿볼 수 있는 자연의 풍경이다. 늙은 아내는 종이에다 장기판을 그리고, 아들은 고기 잡을 낚시 바늘을 만들고 있다. 시인이 바라는 건 오직 병을 치료하는 것뿐이다. 이 밖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런 삶을 오래오래 누리며 살고 싶은 것이 시인의 꿈이다. 


━━━━⊱⋆⊰━━━━

좋은 비가 시절을 알아,

봄이 되니 만물을 싹 틔우누나.

바람 따라 밤에 몰래 들어와,

가늘게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시네.

들길은 검은 구름으로 온통 컴컴한데,

강 위의 배만 불을 밝혔네.

이른 아침에 붉게 젖은 땅을 보니,

금관성에는 꽃이 활짝 피었으리라.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

당춘내발생當春乃發生.

수풍잠입야隨風潛入夜,

윤물세무성潤物細無聲.

야경운구운野徑雲俱黑,

강선화독명江船火獨明.

효간홍습처曉看紅濕處,

화중금관성花重錦官城.


시의 제목은 「봄밤의 단비(춘야희우春夜喜雨)」이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호우시절’은 이 시의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에서 따온 제목이다. 이 시는 두보가 49세 때 지은 것으로 성도에서 초당을 짓고 살아갈 때 지은 것이다.


만물을 촉촉이 적셔주는 봄비가 밤사이 소리도 없이 내렸다. 참으로 반가운 손님이다. 두보는 이 시에서 안록산의 난으로 얼룩진 정치현실에도 때맞춰 내리는 반가운 손님인 봄비처럼 새로운 소식이 날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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