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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로 문화읽기] 고래의 길, 온돌의 길 (1)

2023.11.14 | 조회 1752 | 공감 0



한재욱 / 본부도장


〈다큐 공감 74회 - 한반도에서 알래스카까지! 고래의 길을 가다〉


다큐 소개

이번 호에서는 KBS 1TV에서 방영된 〈다큐 공감 74회 - 한반도에서 알래스카까지! 고래의 길을 가다〉의 내용을 정리해 보려 한다. 2003년, 국내뿐 아니라 세계 고고학계가 깜짝 놀랄 만한 발굴이 이뤄졌다. 한국형 온돌이 알래스카에서 발굴된 것이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3,000년 전 것으로 밝혀졌다. 도대체 누가 왜 알래스카에 한국식 온돌을 짓고 살았던 걸까?


2014년 11월 1일 방송된 이 다큐멘터리에서 제작진은 시베리아 대륙에서 시작해 만주 대륙과 한반도를 잇는 대륙 로드에서 벗어나 한반도와 캄차카반도, 알류샨 열도, 알래스카를 잇는 북태평양 해양 로드를 조명하고 고대 한반도인의 삶을 추적한다. 고래를 잡던 해양 어로 문화권의 고래의 길과 한국인의 독특한 주거 문화인 온돌의 길을 조사하며 이 두 개의 길이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밝히고 알래스카의 선사인들이 한국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밝힌다.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온돌 유적의 충격

세계 최대의 고래 서식지라 불리는 알래스카는 1년 내내 고래를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선사 시대 문명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알래스카에서 영국 애버딘 대학의 고고학자 리차드 크넥Rick Knecht 교수가 알래스카 정부와 공동으로 발굴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2003년 온돌 집이 발굴됐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발굴팀을 이끌고 있던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리차드 크넥 교수는 약 3,000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식 온돌과 매우 낯익은 인상의 탈 조각을 발굴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탈이 고래 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3,000년 전 이곳에 한국식 온돌을 만든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고래와 무척이나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이곳에 살게 된 것일까?


크넥 교수팀이 발굴하는 곳은 주로 선사 시대 알래스카 원주민이 살았던 곳이다. 고고학의 불모지로 알려졌던 알래스카지만 영국 애버딘 대학과 알래스카주 정부의 후원으로 발굴이 시작된 이후 알래스카는 선사 시대 주요 유적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크넥 교수는 고고학적으로 볼 때 미척개지와 같은 알래스카의 유적을 발굴하는 일을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인류 문화를 발전시키는 엄청난 진보라고 생각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혁명’, ‘인류문화의 엄청난 진보’는 모두 한국과 관련이 있다.




아낙막 섬 발굴지는 놀라움 그 자체였어요. 마치 ‘한국의 온돌’ 같아 보였어요.

- 리차드 크넥 교수


미국 고고학회가 발간하는 격월간지 《고고학(Archaeology)》 2007년 5~6월호는 알래스카주 어널래스카Unalaska시 아막Amaknak섬에서 다리 건설을 위한 발굴을 하던 중 온돌을 갖춘 집터가 나왔다고 보고했다. 땅 밑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돌을 정교하게 쌓아 만든 선사 시대 집터로 약 3,000년 전에 조성된 것이었다. 문명의 불모지라 여겨 온 알래스카에 선사 시대부터 상당히 발달된 수준의 문명이 존재했음을 말해 주는 엄청난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당시 크넥 교수는 “지난 1997년에도 이 지역에서 온돌 구조가 발굴됐지만 그때는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크넥 교수에게 한국의 온돌을 떠올리게 한 것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것이 굴뚝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크넥 교수는 이 터가 ‘국보급 유적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발굴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이곳은 새로운 다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굴된 유적인데 발굴 시작 후 1년도 못 돼서 사람들은 다리 건설을 택했고 유적은 다시 깊은 땅 밑에 묻히고 말았다.


다시 묻힌 그 유적이 정말 한국식 온돌이었을지 확인하기 위해 취재진은 크넥 교수에게 한국에서 발견된 온돌 유적 자료를 보여 주었다. 자료들을 본 교수는 매우 놀란 표정으로 당시 발굴 사진들을 보여 주며 비교를 했다. 비록 유적은 다시 어둠 속에 묻혔지만 알래스카에 흔적을 남긴 고대 한반도인에 대한 강력한 호기심을 남겨 주었다.


“정말 놀라워요. 정말 비슷한데요. 한국에서 찍었다고 해도 믿겠어요. 보세요. 한국의 선사인들이 이 유적과 비슷한 집터를 사용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한국과 알래스카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죠.”

- 리차드 크넥 교수


알류샨 박물관과 고래 뼈 탈

유적이 발견된 어널래스카시는 수천 년 동안 미국 내 최고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항구 도시이다. 이곳 주민들에게도 한국형 온돌을 가진 선사 시대 유적의 발견은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주민들의 안전 문제로 유적이 땅에 묻혔지만 어널래스카의 당시 셜리 마콰르츠 시장도 이 유적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적이) 한국과 알래스카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다면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죠.”라고 말하며 무척 흥미로워했다. 이 유적이 알래스카 고대사의 중요한 단서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상한 관심 덕분에 유적과 함께 발굴된 많은 유물들은 다행히도 인근의 ‘알류샨 박물관’에 보존 조치되었다. 아막낙섬 발굴 터에서 수습한 유물들에는 선사 시대 사람들이 사용했던 돌로 된 기름등잔이 있다. 이 등잔에는 지금도 고래기름을 태운 흔적이 뚜렷하다. 선사 시대의 고래기름은 연기가 나지 않고 화력이 좋은 최첨단 연료였다.




이곳엔 등잔과 함께 수많은 고래 뼈들이 보관돼 있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이 천장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사다리를 고래 뼈로 만들었다고 한다. 알래스카는 나무가 아주 귀했으니까 고래 뼈로 사다리를 만드는 게 더 쉬웠을 거라는 얘기다.


나무 대신 고래 뼈로 집에 대들보를 세웠던 이들은 고래 사냥법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고래를 활용해 척박한 삶의 환경을 극복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

(알래스카 선사인들은) 고래의 내장으로 비옷을 만들었고, 고래 신경으로 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고기는 음식으로 먹었죠. 기름은 태워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거나 불빛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고래는 버릴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뼈는 그 자체로 작살을 만들거나 작은 그릇이나 병을 만들고 탈도 만들었죠. 그렇게 고래의 모든 부위는 각각의 용도를 위해 보존되었을 것입니다.

- 잉그리드 마티스 알류샨 박물관 학예사




공식적으로 고래잡이는 금지됐지만 국제포경위원회의 허가에 따라 알래스카에서는 지금도 1년에 103마리의 고래를 잡을 수 있다. 단 알래스카 전통 방식으로 사냥을 해야 하고 잡은 고래는 마을 주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 자료 화면에는 고래를 잡아 육지로 끌어 올릴 때 족히 백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줄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보인다.


3,000년 전 한국형 온돌을 만들고 이곳에 정착했던 이들도 고래와 함께 이런 모습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사실을 말해 주는 중요한 단서 하나가 알류샨 박물관 특별 전시실에 있다. 그것은 2007년도에 발견된 고래 뼈로 만든 탈이다.




발견된 것은 두 개의 조각뿐으로 최근에 조각을 합쳐서 원래 모양을 알게 됐다. 고래 뼈로 만든 이 탈의 부드러운 눈썹의 선과 가느다란 눈매가 어딘가 우리 눈에 익숙하다. 온돌 터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물 중에 유독 이 탈을 특별하게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의 울산 울주군 태화강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사 시대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전 이곳에 살던 선사인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암각화에는 해양과 육상 동물들 그리고 사냥 장면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353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그림이 한 면에 있는 것이다. 그중 58점이 고래 그림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주인공은 고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고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암각화에는 많은 동물들 속에 유일하게 사람 얼굴 형상이 있다. 선사 시대 암각화 전문가인 이상목 전 울산암각화박물관 관장은 알래스카 고래 뼈 탈의 얼굴이 이것과 닮았다고 말한다.




많이 닮았어요. 특히 눈썹하고 눈 사이 빈 공간이라든지. 눈썹과 코 모양을 마치 고래 뒤집어진 것처럼 그린 부분이 (반구대 암각화와) 유사성이 굉장히 많아요. 전체적으로 얼굴이 굉장히 길고 역삼각 형태의 모습들이 중국이나 이런 데서 보이는 둥근 형태의 탈과는 차이점이 많네요. 그리고 이것들은 알래스카 이누이트족의 마스크 그림입니다.


실제로 고고학적으로 물고기가 생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먹거리였는데 (유적에) 물고기가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물고기가 가면 형태로 바뀌었다는 거죠. (탈의 형태) 모티브는 고래 꼬리들, 이것도 고래 꼬리잖아요. 왜냐면 물고기는 꼬리가 수직인데 고래는 수평이잖아요.


- 이상목 전 관장/울산 암각화 박물관





고래가 사람에게 남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고래의 꼬리 모양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알래스카 고래 뼈 탈과 반구대 암각화의 얼굴상은 같은 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마도 고래 토템이라고 볼 수 있는 문화가 고래 뼈 탈에서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반구대 암각화 역시 이 주장을 잘 보여 주는 유물이다. 선사 시대 고래는 우리 민족에게도 중요한 존재였다.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를 사냥하던 집단들이 새긴 그림인데 사실 그쪽 지역(알래스카)에도 마찬가지로 고래를 사냥했던 해양 어로 민족들이 만든 탈이겠죠. 이들 사이에는 분명히 신화적인 공통성이 충분히 내재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 이상목 전 관장/울산암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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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길, 온돌의 길 (2) - 한국 문화속의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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