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上帝)라는 호칭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Q┃ 상제가 하나님의 본래 호칭이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불러왔던 호칭이라면 더 친근하게 와 닿아야 하는데 오히려 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상제님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한민족의 문화는 신교였고 신교에서 삼신 상제님을 섬겨 왔어요. 그런데 이 뿌리 문화의 실상이 잊혀지고, 완전히 왜곡·말살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우주의 참하나님을 부르던 본래의 호칭인 ‘상제’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뒤집혀져 버렸습니다.
신교의 뿌리 문화 토양에서 태어난 도교, 유교, 또 민간 신앙에서 상제 문화를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식이 뒤집어져서, 뿌리 문화의 본래 하나님 신앙인 상제 신앙을 마치 유교, 도교 등에서 빌려온 것인 양 인식하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겁니다. 다시 말해서 신교가 제 1의 뿌리 문화인데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태어난 제 2의 줄기 문화인 유교, 불교, 도교와 서양 기독교의 구원관, 신관, 하나님관에 길들여져서 그릇된 상제 인식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난 19세기 후반,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를 회복하려는 역사의 몸부림이 있었어요. 마지막 왕조 조선의 비극의 임금 고종이 1897년에 이 상제 문화를 복원하기 위하여, 그리고 상제님의 참된 아들 노릇을 하고, 진정한 조선의 천자로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아득한 예로부터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던 제천단인 원구단(圓丘壇)을 쌓고 10월 11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 이름을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라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당시 애국가만 해도 오늘 우리가 부르고 있는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구절이 아니라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라 하여, 상제 문화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지난 20세기 초엽만 해도 팔팔하게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양 기독교의 『신약전서』가 번역되어 처음 출간된 1906년 당시의 성서를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상제지자(上帝之子) 야소(耶蘇)’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 우주를 다스리는 생명의 아버지 하나님을 본래부터 ‘상제’라 불러 왔습니다. 그 전통이 문서로 확인되는 것만 해도 4천 년 이전이요, 또한 우리 민족의 원형 문화를 알 수 있는 신교의 3대 경전인 「삼일신고」, 「천부경」, 「참전계경」의 역사를 소급해 들어가 보거나 신교 문화 시대인 한국-배달-조선의 역사 전통을 바르게만 이해하면 상제님에 대한 신앙의 시원 역사가 장장 1만 년을 소급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한민족이면서도 본래 우리들이 부르던 하나님의 호칭, 상제 문화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하나님이 상제님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상제님이냐?” 하고 오히려 반문을 하고, 쉽게 우리들 마음속에 와 닿지 않는 것일까요?
그 모든 원인이 우리 뿌리 문화의 원형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이렇게 큰 문제를 던져 주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는 본래 우리의 역사인 삼신 문화, 삼신 상제님의 시원 문화, 잃어버린 고대 역사의 원 바탕인 환국-배달-조선의 시원 역사를 회복하는 참 역사 공부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제님을 제대로 알려면 상제님이 주관하시는 우주의 조화 세계, 삼신의 세계에 눈을 떠야 합니다.
동양에서는 원 대자연의 바탕이 되는 조물주를 삼신 하나님, 즉 얼굴이 없는, 형상이 없는 원신(元神, Primordial God)이라 하고, 상제님은 형상을 가지고 이 우주를 직접 통치하시는 천상 옥좌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상제님이 바로 이 우주의 삼신의 조화권을 직접 쓰시는 참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삼신을 제대로 이해할 때, 비로소 상제님께서 이 우주를 경영하시는 이법과 상제님의 실상을 깊이 있게 성숙된 진리의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