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영국 데일리메일 특파원인 프레더릭 아서매켄지가 1907년 고발한 의병 양민 학살 참상 고발

대선 | 2024.09.07 10:39 | 조회 335

                  

                   친일파 영국 데일리메일 특파원인 프레더릭 아서매켄지가 

                   종군기자가 되어 1907년 고발한 의병 양민 학살 참상 고발


1907년영국데일리메일특파원인프레더릭아서매켄지가의병항쟁의현장인경기양평등에서찍은의병사진두장.매켄지는군대해산직후요원의불길처럼번진항일의병투쟁의현장을직접누볐다.일제의만행을목도했고,의병들을만나인터뷰했다.항일투쟁을종군한유일한기자가매켄지였다.의병사진도이두장이유이(唯二)하다. 매켄지의<대한제국의비극> 독립기념관제공

 

 얼마전구한말항일의병장들의체취가물씬풍기는자료가발굴되었다.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일본에서구입환수한항일의병장들의친필편지등13건등이다.일제헌병경찰이었던아쿠타가와나가하루(芥川長治)가1939년 두루마리형태로묶어보관한문서들이다.이 중 유중교(1832~1893)와 최익현(1843~1906)의 편지등4건에붙인아쿠타가와의주석이눈길을끈다. …1918년4월의주헌병대가…국경을넘어…<의암집>(유인석의 문집)을편집하는곳을급습하여 압수한 불온문서 중 일부 라 했다.

  이를두고어윤적(1868~1935)의<극재일기>는 일본군이서간도로망명한유인석(1842~1915) 가문의집을습격해서서책을불태우고 <의암집> 50여질을 탈취했다 면서 분서갱유의 화를 오늘 다시본다 (1918년 음 1월20일)고 개탄했다.군대해산 직후(1907~1908) 요원의불길처럼일어난항일의병시기에의병장들이 주고받은 육필 편지도 심금을 울린다.

                                           일제가인정한친일파기자

  필자는106~115년만에모습을드러낸의병문서자료를본김에 한장의사진을떠올렸다. 영국데일리메일특파원인프레더릭 아서 매켄지(1869~1931)가1907년항일투쟁에나선의병들을현장에서찍은2장중한장이다.이두장외에남아있는항일의병사진은없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1869년 캐나다퀘벡주에서태어난매켄지는영국 스코틀랜드계 언론인이다. 매켄지는 러일전쟁(1904~ 1905)의종군기자로한국을찾았다.당시영국은일본의맹방이었고, 매켄지역시대표적인친일기자였다.일본정부는종군을신청한다수의서양기자중매켄지등2~3명에게만취재허가증을내줬다.

  …일본신문들은일본군을칭찬하는매켄지의기사를매일받아썼다…매켄지는 마침내 일왕의 훈장까지 받았다. (1920년 12월임시정부파리위원회간행구주의우리사업-정의의친우 )매켄지는 러시아 전쟁포로들을 관대하게다루고,규율이확실한일본군을극찬하는글을계속실었다.

                                         군대해산과박승환참령의자결

  그런매켄지가친일파에서항일투사로변신하게된결정적인사건이1907년8월1일일어났다,헤이그밀사사건으로고종이 퇴위하고(7월20일) 정미7조약(7월24일)에따라한국군대가해산된그날이었다. 서울시위대제1연대제1대대장박승환 참령(1869~1907)이 항전의 방아쇠를당겼다.박참령은 군인으로나라를지키지도, 신하로충성을다하지도못했으니만번죽어도애석하지않다(軍不能守國臣不盡忠萬死無惜) 는유서를남긴뒤권총으로자결 순국했다. 연병장에도열해있던 병사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면서무기고문을부수고무장했다.궐기한한국군은일본군과3시간가까이처절한전투를벌였다.그러나중과부적이었다.이날전투로일본군40여명이죽거나다쳤고, 한국군사상자는 170여명(전사 70여명,부상104명)에이르렀다.성벽을넘어탈출한부대원들은지방으로속속내려가그곳의병들과합세했다.

                                         의병봉기,일본군학살 의진실?

  이후시내분위기가수상해졌다. 곳곳에서의병이봉기하고,패주한일본진압군이마을을유린하고,주민들을대량학살했다는이야기가흘러들어왔다.그러나매켄지는도무지믿을수없었다. 어디까지가진실일까.무척의심스러웠다…나는러일전쟁때일본군에종군했을때일본군인들의 자제력과 군기가 훌륭한 것에감탄했다.일본군은…난폭한행위를하지않았다.

  하지만갈수록의병관련언론보도가봇물처럼이어지고, 항전을외치는온갖격문이서울로전달되었다.명색이기자,그것도한국특파원이었던매켄지는가만앉아있을수없었다. 전국각지에서꽤심각한전투가벌어지고있는것이확실했다.나는그전투를직접보기로결심했다.

                                              속속드러나는진실

  현장 취재에 나선 매켄지는 잿더미가된 고을과, 주민들의 일관된 일본군 만행 증언을 접하며 충격에 빠진다. (경기) 이천으로향하는골짜기를내려다보았다. 70~80호 정도의마을은기둥하나도 성한 것이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벽안의 기자 (매켄지)를찾아와그들이겪은끔찍한이야기를증언했다. 일본군은집을불태우지말아일본군의 만행으로 불탄마을에서일본군의총탄에 열 살짜리 딸을 잃은 여인이 증언하고 있다.매켄지사진달라고애원하는노인을쏘아죽였다.한임신부는해산이가까워집에누워있다가참변을당했다…또어떤청년은불타는집에뛰어들어가가문의족보를구하려다가일본군이쏜총에….

  충북제천과충주의상황도 끔찍했다.매켄지는 충주와제천사이의마을중5분의4가불에탔다 고전했다.이와중에미처피하지못한남녀와아이들이불에타죽었다.그뿐이랴.총칼을든일본군이남편이시퍼렇게살아있는부인을능욕했다.심지어열살짜리여자아이에게총을쏴죽인천인공노할증언도들었다.매켄지는 권총 습격을 가까스로 피하기도했다. 강원도원주…옥수수밭주위에서있는소나무뒤에서어떤남자가무언가만지작거렸는데…잠시후 핑 하는소리가내귓전을스치고지났다.

                                            그들의애국심을보았다

  매켄지일행이 경기 양근(양평) 에들어섰을때10여개의적십자깃발이마을곳곳에게양되어있었다. 일본군이적십자깃발을단집은불태우지않는다는이야기가돌아집집마다걸어두었다는것이다.그날오후마침내매켄지의바람이이뤄졌다. 의병 5~6명이 나타나매켄지앞에도열해인사를한것이다. 18~26세사이의청년들이었다. 준수하고훤칠한청년은구식군대제복을입고있었다.다른두사람은군복바지,두사람은초라한누더기 한복 차림이었다…여섯 명의 총이제각기달랐는데녹까지슬어어느하나성한것이없었다….

  매켄지는 희망없는전쟁에서이미죽음이확실해진이사람들이매우측은하게만 보였다 고 했다. 그러나 매켄지는의병의영롱한눈초리와자신만만한미소를보고그들의애국심을보았다 고했다. 그들은 어차피우리는죽게되겠지요. 그러나일본의노예가되어사느니보다자유민으로죽는것이훨씬좋습니다라했다.

매켄지는 그들을가엾게여겼던내생각이틀렸다는것을알게됐다 면서 그들은동포들에게애국심이무엇인지를보여주고있었다 는소감을밝혔다.

                                                 의병장은누구?

  그날 밤 매켄지를 찾아온 의병대장은…제발무기좀구해달라. 우리편이되어달라 고 부탁했다. 그러나 매켄지는기자라는 직업윤리상 그럴 수 없다 고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렇다면 매켄지가만난의병장은누구일까. 1907년 8~10월에양근(양평)에서활약한의병부대를꼽아보면 8월3일 지평분파소와 관사 등을공격한 조인환 의병장(1878~1909)이 우선떠오른다.그의뒤를이은퇴역병출신의신창현(1881~?)과해산군인등19명을거느리고 활약한 김영준(1868~1910) 등도있다.

  하여튼매켄지는그날밤이새도록부상병을치료해주고, 그들의누더기옷을빨아주었다. 음식도 먹여주었다. 의병들은다음날만날때의그모습그대로떠났다.매켄지는 의병들이우리일행이갖고있던무기들을가져갔을까잠깐의심했지만그런일은없었다 고 했다. 아무리처지가궁한의병들이었지만남의물건따위를넘보는무례한짓은저지르지않았다는뜻이다.

                                              역사적인사진의탄생

  그날 숙소를 빠져나온 매켄지 일행은바위와모래가깔린강변에서또다른의병들에게포위됐다.꼭쏠것같았다.매켄지는큰소리로 난영국인이오! 라신분을밝혔다. 20여명의의병중신식제복을입은청년이지휘관이었다. 그중못생긴의병이…말했다. 당신이소리친것은정말다행한일이었소.막당신을쏠참이었소 라고….

  14~16세 정도밖에 안 된 소년도 있었다.매켄지는이때그들을한곳에서게하고 사진을 찍었다. 매켄지는 이를 두고이사진을보면그야말로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 회고했다.

  역사적인 만남을 끝낸 매켄지는 전날항일의병과일본군간전투가벌어진마을에 도착했다. 그 전투에서 의병 5명이부상을당했는데,그중3명은매켄지가새벽까지 치료해준 청년들이었다. 그러나다른2명은일본군에게붙잡혀처참하게죽임을당했다.마을주민들은 일본군이총검으로중상자두명이완전히죽을때까지찌르고또찔렀다.그들의몸을조각조각냈다.주민들이시체를주워모아묻어주었다 고증언하며몸서리를쳤다.

                                                학살의생생증언

  한말의병투쟁과정에서어느정도의희생자가 나왔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다만일본군이작성한<조선폭도토벌지>에따르면군대해산직후인1907년8월~ 1908년12월에전사한항일의병수가무려1만5189명에달한다.그것은일본군자료일뿐이다.

  박은식(1859~1925)의 <한국독립지혈사>는 희생된의병수만10만명이넘고,양민피살자는그통계를구할수없다 고했다.안중근의사(1879~1910) 역시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의 15가지죄상중9번째로 항일의병과그가족희생자가10만명에이르게한죄를꼽았다.또한대한매일신보와<한국통사> <매천야록>등여러사료의곳곳에도의병및양민학살기록이등장한다.

  그러나제3자,그것도서양기자가죽음을무릅쓰고전쟁터를누비며기록한생생자료가없었다면어땠을까. 상당수가과장혹은터무니없는거짓으로치부되었을지모른다.그런까닭에매켄지의현장기사및사진은그누구도토를달수없는객관적인사료가되는것이다.항일의병현장을몸소경험한매켄지는완전히다른사람이됐다.의병의봉기와일본군의만행등을생생한필치로전하는매켄지의기사는영국신문(데일리메일)에실리지못했다.매켄지는다른창구를찾았다.항일의 기치를 세운 어니스트 베델(1872~1909)의대한매일신보였다.

  한국의내륙을목격하고귀국한사람의목격담인데…어느날저녁에만난의병10명은… 민족을구하지않으면죽기로결심했다고밝혔다.일본인들은약탈하고능욕하고살인하고있었다.이강도만도못한무리를…. (대한매일신보영문판1907년9월24일)

  이기사에등장하는 한국의내륙상황을전한사람이바로매켄지이다.매켄지는생생취재기를담은<대한제국의비극(Tragedy of Korea)>(1908)을 펴냈다.의병사진두장은그책에실었다.

                                            친일파가항일투사로

  매켄지는 1919년 3 1운동사를중심으로<한국의독립투쟁(Korea s Fight for Freedom)>(1920)을 발간한다. 그해 10월에는매켄지가주도한친한단체인한국친우회(Friends of Korea)가발족한다.영국국회의사당에서열린창립식에는전현직국회의원과교육자,언론인,종교인,귀족과각계인사총62명이참석했다.이자리에서일제의식민정책을비판하면서한국의실상을널리알리고한국인의자유회복을위한지원등을결의했다.매켄지는한국친우회의간사로 활약했다. 이후에도한국인의독립을지지하며언론활동을벌이던매켄지는1931년타계했다.

  매켄지의 저작(<대한제국의 비극> <한국의 독립투쟁>)은 정확한 예언서로도명성을얻었다. 일본에서군부가독재하면…만주를침략하고중국에까지확대되어끝내는커다란분쟁을야기하게될것이다. 만약극동에서전쟁이일어나면미국이그부담을지게될것이다.매켄지는 이주장을 반일적이라한다면나는기꺼이일의피고가되겠다 고했다.그예언은20여년뒤현실로다가왔다.매켄지의또다른한마디가심금을울린다. 이민족(한국인)에게기회만주어지면그들은무엇을할수있을지보여줄것이다.

  제2, 제3의친일파가곳곳에서고개를들고있는지금이순간이다.매켄지같은분보기가한없이부끄러워진다. 일본의노예가되느니자유민으로살겠다 던항일의병의사진을쳐다보기도두렵다.


                                                <참고문헌>

  1. 이기환, "일본군 만행 목격에 언론인 본능 꿈틀, 의병 양민 학살 참상 고발", 경향신문, 2024.9.4일자. 18면.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400개(1/94페이지)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회원게시판 이용수칙] 관리자 130559 2023.10.05
공지 상생의 새문화를 여는 STB 상생방송을 소개합니다. 환단스토리 292460 2018.07.12
1398 [역사공부방] <특별기고> 제578돌 한글날의 역사적 의의와 경축행사 사진 new 대선 12 2024.10.10
1397 [역사공부방] 2024년 노벨 화학상’ 베이커·허사비스·점퍼 공동수상 사진 new 대선 46 2024.10.10
1396 [역사공부방]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발표 new 대선 60 2024.10.09
1395 [역사공부방] 서붕 박병배 선생 저서 국가유지론 재발간 사진 new 대선 62 2024.10.09
1394 [역사공부방] 임금 향한 충절만큼이나 한글 사랑했던 사육신 성삼문의 충절과 한글사랑 대선 72 2024.10.09
1393 [역사공부방] 세종시의 ‘뿌리’ 한글 널리 알릴 축제 열린다 사진 대선 81 2024.10.09
1392 [역사공부방] 노벨 생리의학상에 '마이크로RNA 발견' 美앰브로스·러브컨 사진 대선 88 2024.10.08
1391 [역사공부방] 금강산의 화가 소정 변관식 사진 대선 86 2024.10.08
1390 [역사공부방] 2024년 노벨문학상 후보자 발표 대선 136 2024.10.07
1389 [역사공부방] 제4356주년 개천절 경축식 개최 대선 143 2024.10.03
1388 [역사공부방] 광기의 역사에 이용당한 청소년 사례 사진 대선 154 2024.10.03
1387 [역사공부방] 76주년 국군의날을 경축하며 대선 149 2024.10.02
1386 [역사공부방] 왕과 신하의 비밀 대화 독대 사진 대선 161 2024.09.30
1385 [역사공부방] 산업데이터 연계로 생산성과 제조업 경쟁력 높여야 대선 179 2024.09.29
1384 [역사공부방] 시간이 멈춘 땅, 한반도 허리를 걷다 대선 175 2024.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