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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왜 지내야 하는가

2020.01.16 | 조회 1388 | 공감 1

 제사 왜 지내야 하는가


증산도 용인신갈도장 형경숙 도생(undoundo@hanmail.net)



나 어린 시절 제사는 행사이고 축제였다. 마을에서의 기우제, 추수와 김장이 끝난 다음의 시제는 마을의 행사이면서 축제이고, 집안에서의 제사는 가족적인 행사였다. 


제사가 돌아오면 할아버지께서는 머슴과 함께 장에 가셔서 건어물, 생선, 고기 등을 구입해 지게에 지어오게 하셨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산자, 약과, 다식 등을 미리 만드셨다. 


어린 우리들로서는 어른들의 그런 준비과정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고 가슴 부푼 기대가 가져졌다. 


돌아보면 어른들로서는 제사준비로 고생들이 많으셨을 것이지만, 어린 우리들로서는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해서 마냥 신바람이 나고 즐거웠던 것이다. 


명절이나 제사 말고는 볼거리, 먹을거리가 딱히 없던 그때로서는 그보다 더 신바람 나고 즐거운 일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의 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남원 시골에서 전주 도시로의 유학이었는데, 그때당시 전주라는 도시는 내게 있어 거대 공룡과도 같은 세상이었다. 거대 공룡세상에서 외로움을 탔던 나는 천주교회라는 단체로 흡수가 되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나타난 현상은 제사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즐겁기만 하던 제사가 미신행위로 여겨지면서 꺼림칙스러워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돌아가신 분이 드실 것도 아닌데 뭣 하러 지내나. 미신행위 아닌가.


부정적인 생각은 제사만이 아니었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모님이니시까 참여하지만, 손녀인 내가 굳이 참여해야 되나 싶었다. 


그로부터 나는 가족관계보다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의 소유자로 성장이 되어갔던 것 같다. 왜 그리되었는가.


그 시절 학교는 교과과목 외에 인성, 역사, 한문 등을 가르치지 않았다. (학원이 거의 없던 그 시대에 역사 한문 등은 배울 수도 없었으니.) 그렇다면 역사, 한문 인성은 당연히 학교에서 교육시켜야할 일이다. 그러나 학교는 그런 교육이 없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인성, 역사, 한문 같은 것이 살아가는데 무슨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가?


그 시절은 먹고사는 일이 전쟁일 정도로 너나없이 살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부모님은 먹이랴, 입히랴, 학교 보내랴 자식들에게 인성을 가르칠 경황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럼으로써 빚어진 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나마 성장은 했지만(어른이 되기는 했으나) 사회의 일원으로 어우러지기보다는 뿔뿔이 개인적인 존재들이 되어갔다.  


왜 그리 되었는가.  

우리는 역사에 너무 무지해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에 무지하다보니 조상이나 민족애가 있을 리 없고, 조상이나 민족애가 없는데 어찌 나라에 대한 자긍심이 가져지겠는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면서 미래의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역사는 반 토막 난 일제 식민지 시대에 조작된 역사를 답습해왔을 뿐이다.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울 길이 없고,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보니 역사가 빈곤한 우리 민족 자체가 근간이 송두리째  뽑혀나가 버렸다. 역사가 없는데 무슨 자존감이 세워지겠는가.


역사는 개인에게 있어 근간이며 자아이다.  


우리에게 있어 역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제사일 것이다.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온 혈통의 계보. 


유년시절 그토록 신바람 나던 추억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사적인 빈곤과 기독교로 인해 천제, 기우제, 제사 등을 미신행위로 단정지어버렸다.  


반평생을 살고 나서야 역사를 접하게 된 나는 민족의 거대 흐름과, 조상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게 되었고, 제사에 대해서도 효 사상으로 이어져 내려온 숭고한 사상이자 아름다운 풍습이고 후세에 물려줄 정신적 자산임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은 집단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가족이라는 혈연집단, 친구라는 동아리집단, 직장이라는 사회집단, 그 밖에도 여러 집단들이 있다. 인간이란 원래부터가 부족집단적인 존재인 까닭에 집단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제사가 문제가 되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설 명절, 추석명절을 없애달라는 청원 글들이 올라온다. 


며느리들의 반란. 반란을 일으킨 며느리들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제사를 없앤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나 하는 것인가. 조상을 송두리째 뽑아내버리는 일이잖은가. 


조상과 자손과의 관계를 송두리째 뽑아버린다는 건, 자손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걷어 내버리는 일이 된다.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편하기는 하겠다. 편해서 좋기는 할 일이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결혼을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고 했다. 가문과 가문이란 남편과 아내만의 단독세대를 이름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만의 단독세대로 규정짓는다면, 가문의 혈통관계가 단절되고, 가문의 반경은 단독세대라는 핵가족이 돼버리고 만다. 


핵가족이라는 테두리로 반경이 좁아지면, 태어날 자손들로서는 가문의 뿌리가 절단돼버리고 마는 것이다. 


자손은 자자손손 가문의 혈통을 이어가는 존재이다. 그러니 제사를 없앤다는 건 혈통을 걷어내 버리는 일로서 가문의 혈통을 걷어내 버린 며느리의 자손은 그럼 어디에다 근간을 두고, 어디에다 존재가치를 두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존재가치 없는 삶에 무슨 자긍심이 있겠는가. 그냥 인간이라는 동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설 명절과 추석명절을 없애자는 청와대 청원게시판 글을 다시금 언급해보자. 설명절과 추석명절은 제사라고 하지 않고 차례라고 한다.  그렇다면 차례는 무엇이고 제사는 무엇인가. 


명절에 올리는 차례는 말 그대로 찻상의 의미인 것이고, 제사는 살아생전 조상님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올리면서 감사를 표하는 예이다. 




예로부터 제사는 정성이라고 했다. 차례상은 차례상대로, 제사상은 제사상대로 온가족이 정성스레 마련하고, 온가족이 정성스레 마련한 차례 상이나 제사상이니만치 조상님이 기뻐하시리라는 마음만으로도 자손 된 자로서의 예는 갖춰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설과 추석에 여행을 떠난다는 며느리들, 세사가 싫어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며느리들, 그 여행이 진정 즐겁고 행복할 것인가.  


바라건대, 설과 추석명절, 제사 등이 축제처럼 치러진다면, 그리하여 조상과 자손과의 연대감이나 존재감이 깊어진다면, 민족적 존재감은 더욱 굳건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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