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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인도 탐방단 보고: 불교 유적지 6편

2020.08.17 | 조회 1007 | 공감 0

붓다,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안거安居를 보내다


상생문화연구소 노종상 연구위원


▲바이샬리 대림정사 앞 가게들


대림정사를 나와서 바이샬리의 저자거리를 걷는다. 말이 ‘저자’이지, 대림정사 앞 도로 양쪽으로 가게들이 늘어선 거리다.


사람보다 귀중한,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보다 ‘보물’이 있을까.


증산도 『도전』 성구 한 구절이 생각났다. 


  • 임인(壬寅 : 道紀 32, 1902)년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아랫목에 앉으시어 윗목에 모인 성도들을 바라보시며 “너희들, 심심하면 심심풀이 좀 해 봐라.” 하시거늘 성도들이 꽃타령을 부르니 “너희들은 꽃 중에 무슨 꽃이 좋으냐?” 하고 물으시니라.

    이에 누구는 ‘나락꽃이 좋다.’ 하고, 누구는 ‘목화꽃이 좋다.’ 하고, 또 누구는 ‘담배꽃이 좋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방안 꽃이 제일이니라. 다른 것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하면 사랑이 멀어지는 법이나 사람은 볼수록 정이 드는 것이니 참으로 꽃 중에는 인간꽃이 제일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자식을 낳아 보아라, 볼수록 새 사랑이지. 나무가 외줄로만 크는 놈은 윗동을 쳐야 가지를 뻗듯이 사람이 자식을 낳으면 그것이 곧 가지를 뻗는 셈이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8:2:1~9)


과연 ‘꽃 중에 제일 좋은 꽃’은 ‘인간꽃’이다! 이 한 구절을 처음 대했을 때의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렇다. 대림정사를 나온 탐방객은 잠시 짬을 내어 ‘인간꽃’을 구경한다.


여기서 처음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붓다의 나라 인도에 와서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인도답사를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탐방객의 뇌리에는 오래도록 이런 혼잣말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인도 땅 어디를 가도 사람 살지 않은 곳은 없더라! 그들이 영락없이 붓다의 모습, 그것이었다고 한다면, 과연 탐방객이 너무 가식적일까.


그러하거나 말거나 탐방객은 짧게 주어진 시간을 이용하여 바이샬리 거리를 돌아보면서, 그런 느낌을 확인할 생각이다. 


잠깐! 위의 인용문에 등장하는 상제가 누구인지 간단하게 확인한다. 인도에 왔으므로, 인도와도 친연성이 있는 대목을 가지고 해명한다면, 상제는 곧 미륵불이다. 상제, 당신께서 그렇게 자신의 신원을 밝혀 주셨다. 


  • 내가 미륵이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2:66:5 ,  6:7:2 , 10:33:5) 


붓다와 바이샬리의 인연은 각별하고도 각별하다. 바이샬리는 붓다가 마지막 마흔네 번째 안거安居를 보냈던 곳이다. ‘안거’의 산스크리트어 varṣa, 원뜻은 우기雨期를 뜻한다. 수행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다.


고대 인도의 수행자들은 우기 3개월 동안에는 동굴이나 사원에서 수행에만 전념하였는데, 이를 우안거雨安居라고 하였다.


이 전통을 본받아 한국 불교계에서는 음력 4월 15일에 시작하여 7월 15일에 마치는 하안거夏安居와 음력 10월 15일에 시작하여 이듬해 1월 15일에 마치는 동안거冬安居를 실천한다. 


바로 안거를, 그것도 붓다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 안거를 이곳 바이샬리에서 보냈다. 정확하게는 바이샬리 인근의 벨루와가마이다. 제자들은 바이샬리 각지에 흩어져 안거를 하였다. 


▲ 붓다 고행상. 높이 83㎝. 시크리 출토.

2-4세기. 라호르박물관 소장


안거를 하는 도중에 붓다는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는 병에 걸렸다. 붓다는 이때 당신의 반열반과 승가의 앞날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면서 정진의 힘으로 병을 가라 앉혔다. 붓다는 승원의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때 아난다가 다가와 절을 올렸다. 


“부처님께서 승가에 아무 말씀도 없이 대열반에 들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난다여. 그런데 비구 승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바라는가?” 붓다가 말했다. “나는 안과 밖이 없이 법을 설하였다. 무엇을 더 당부한단 말인가?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나이 들고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여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말씀의 행간을 보면 아난다의 태도가 좀 야속하다는, 원망스럽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거야 범부의 소견에 지나지 않을 터다. 붓다는 마지막 그날까지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열과 성을 다하였다. 


이때 붓다는 참으로 멋진 말씀이자 중요한 유훈을 내린다. 저 유명한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에 관한 설법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자등명]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자귀의]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법등명]법을 귀의처로 삼아[법귀의]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중략)


아난다여, 누구든지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공부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
(「대반열반경」, 『디가 니까야』, 각묵스님 역)


그리고 붓다는 제자들을 향해 더욱 간절한 음성으로 당신의 반열반을 분명하게 밝혔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나는 당부하노라. 모든 것은 소멸하게 마련이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 오래지 않아 여래는 세상을 떠날 것이다. 지금부터 석 달이 지나지 않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다."



▲대림정사 앞 학교에서 바이샬리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 


붓다 입멸 후 당신의 사리는 8등분 된다. 바이샬리의 릿챠비족도 그 중 한 몫의 사리를 분배 받았다. 릿챠비족은 붓다의 사리를 모신 스투파를 세웠다. 처음에는 1곡이던 부처님 사리를 아쇼카 왕이 발굴하여 아홉 말은 갖고 가고, 나머지 한 말은 원래 있었던 스투파에 묻었다. 


13세기 불교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도에서 멸망당한 이후 줄곧 아웃사이더였다. 답사하는 동안 줄곧 느끼는 풍경이었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 세상에 알 수 없는 일이야 한두 가지가 아닐 터이로되, 붓다의 나라 인도에 와서 불교 유적지를 찾는 탐방객에게도 상상 이상의 낯선 풍경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불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으나 정작 그가 태어난 고국 인도에서는 십중팔구 파괴되고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한 유적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바이샬리에 릿챠비족이 세웠다는 붓다의 사리가 봉안된 스투파도 예외가 아니다. 스투파는 이미 형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1958년 이곳의 발굴조사 결과 붓다의 사리가 발굴되었다는 얘기만 전할 뿐이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아마도 탐방객이 걷고 있는 근처 어디쯤일 터다. 그러나 탐방객은 그 유적지의 터조차 답사할 수 없었다. 탐방단의 정해진 일정이 빡빡한 탓이다.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사리탑 터 사진이나 만지작거리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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