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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三一神誥」가 인도하는 진아眞我(7)

2020.08.18 | 조회 938 | 공감 0

“일신一神”의 두 의미, 무형의 원신과 유형의 주재자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문계석

  

「삼일신고」에 등장하는 ‘일신一神’은 동북아 한민족이 숭앙해온, 우주만유의 근원으로 전체를 관할하는 최고의 신으로서의 천신天神, 즉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서구 중세 기독교 초기의 사유로 말하면 최고의 유일신(God)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런데 ‘하느님’으로서의 ‘일신’은 의식의 진화와 더불어 학문의 진보가 보편화되면서 개념적인 구분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우주만물의 창조에 직접 관여하는 ‘존재론적인 근원의 문제’와 형상화形象化된 만유가 혼돈이 아닌 질서를 유지하도록 주관하는 주재主宰에 대한 구분이다.


전자는 우주만유를 짓는 ‘조물주造物主’의 문제가 핵심이고, 후자는 조직화된 국가 사회의 정치체제에서 보듯이, 진리에 있어서나 가치에 있어서나 최고의 위격位格으로 전체를 아울러 조화롭고 질서 있게 주재하는 ‘인격적 통치자’의 문제가 핵심이다.


‘조물주’와 ‘인격적 통치자’에 대한 표현은 ‘조물주 하느님’과 ‘주재자主宰者 하느님’의 개념으로 압축된다.


증산도의 진리개념으로 표현하면. ‘조물주 하느님’은 으뜸이면서 전체성의 근원이라는 의미에서 세계에 내재하는 ‘무형의 원신(元神, primordial god)’이고, ‘주재자 하느님’은 모든 신들 중의 주신主神으로 으뜸의 자리에서 창조된 우주만물을 총체적으로 관할하여 무위이화無爲以化로 질서 있게 다스리는 ‘유형의 주재자(主宰者, governing god)’이다.




조물주로서 ‘무형의 원신’과 주신으로서 ‘유형의 주재자’는 각기 다른 존재인가 아니면 같은 존재의 두 측면인가?

이는 같은 존재의 두 측면이다. 즉 원초적으로 근원의 본체本體 자리에 있다는 의미에서는 동일한 ‘하느님’이다. 그러나 진리가치나 존재가치의 의미에서는 다르다.


왜냐하면 ‘무형의 원신’은 본질의 실현에 있어서 존재와 그 본질이 분리된 상태이므로 가능적 존재이고, ‘유형의 주재자’는 본질이 완전히 실현되어 있어서 존재와 그 본질이 하나 된 현실적 존재[實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신’의 ‘하느님’은 양가적인 ‘하느님’, 즉 가능적 존재로서의 ‘하느님’현실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능적 존재로서의 ‘무형의 원신’과

현실적 존재로서의 ‘유형의 주재자’를

우리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동북아 한민족 ‘무형의 원신’이란 우주만물의 근원으로 본체本體이고, ‘유형의 주재자’란 근원의 본체가 온전하게 실현된 지고지순한 인격신, 즉 신들과 우주만유를 전체적으로 주재하는 하늘 임금[上帝]으로 인식해왔다.


이와는 달리 서구의 지성사에서는 ‘무형의 원신’을 세계에 내재적인 ‘하느님’으로, ‘유형의 주재자’를 세계를 초월해 있는 완전한 ‘하느님’으로 이원화二元化하여 인식하기도 한다.


내재적인 ‘하느님’으로서의 ‘무형의 원신’은

현실계에서 어떻게 창조와 변화의 근원으로 작용하는가

‘무형의 원신’은 천지의 순수한 영적인 힘의 원천이다. 이는 시공時空 안에 내재하면서 우주만유의 창조변화에 실질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보존하는 신임을 함축한다.


이에 대해서 『증산도 도전甑山道 道典 4:62 』은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서양 중세기의 형이상학은 ‘무형의 원신’을 ‘존재신存在神’으로 규정하여 존재론적 지위를 확보하기도 했다. ‘존재신’의 도입은 시공의 제약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절대적인 유일신이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했다는 기독교의 창조설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서양의 고대 형이상학적 통찰에서 비롯된 근원의 존재를 창조신과 결합한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존재신’에 대한 이론을 설파한 대표적인 인물토마스 아퀴나스(Saint Thomas Aquinas, 1224~1274)이다.


아퀴나스는 천지만물을 구성하는 요인으로 ‘본질(essentia)’과 ‘현존(existentia)’, 그리고 ‘신(God)’을 말한다.


여기에서 ‘본질’은 사물의 성질과 활동을 규정하는 본성(nature)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본질’은 현실화될 수 있지만 아직 사실화되지 않은 ‘가능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현존’이란 ‘사물이 실제적으로 있게 되는 바의 활동적 존재(the very act, in virtue of which the thing actually is)’이다.


이로부터 아퀴나스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창조변화란 ‘존재신’이 사유의 대상이면서 스스로의 규정성을 가진 ‘본질’을 ‘현존’에 부여하여 ‘사실적인 존재’가 생겨나도록 하는 활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존재신’은 ‘현존’이 ‘본질’을 받아들이고, 그 본질이 그 현존 안에서 실제적으로 실현되도록 하는 작용인作用因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신’에 대한 아퀴나스의 신론은 근대에 이르러 범신론(pantheism)으로 정착된다.


범신론의 대표적인 인물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1632~1677)이다. 그는 자연 전체가 곧 신[神卽自然]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연적인 모든 것들을 신의 속성이 정해진 방식으로 표현된 양태(modus)로 보았기 때문이다.


양태들이란 신 안에 있는 물리적인 것이라고 간주되는 한 “산출되는 자연(natura naturata)”이고, 신은 “산출하는 자연(natura naturans)”이다. 여기에서 신은 자연에 내재적인 원인으로 산출법칙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우주만물이 산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범신론은 현대 유기체의 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1861~1947)에 의해 범재신론(panentheism)으로 완결된다. 


화이트헤드는 우주만유의 창조변화를 설명함에 있어서 “영원한 대상(eternal object)”, “창조성(creativity)”, “신”의 개념을 도입한다.


“영원한 대상”은 크기 모양 색깔 종種 등, 사물을 규정하는 이법적理法的 개념의 범주쯤으로 이해하면 되고, “창조성”은 개별적인 사물로 구체화되는 질료(matter) 쯤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신”은 “원초적 본성(primordial nature)”과 “결과적 본성(consequent nature)”으로 분석된다.


“원초적 본성”으로서의 신은 장차 무엇이 될 가능적 존재인 “영원한 대상”을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생성하게 된다.


“결과적 본성”으로서의 신은 시간의 과정에서 완결되는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구현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신은 “원초적 본성”과 “창조성”을 함의하는 “결과적 본성”이 상호 결합하여 짜여들어가는 과정에서 생성되고 생성하는 “현실적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에서


“신이 일자一者이고 세계가 다자多者라고 말하는 것은,

세계가 일자이고 신이 다자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세계가 신에게 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이 세계에 내재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

“ 신이 세계를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가 신을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무형의 원신’은 현실세계를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자연신이요 범신汎神이지만, 현실계에 내재하여 역동적으로 ‘창조하면서 창조되는 그런 신’이라는 의미에서 범재신汎在神이요 자연에서 자신을 형상화해가는 인격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유형의 주재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유형有形’이란 형태가 있음을 뜻하고, ‘주재자’란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하는 자者를 가리킨다. 두 개념을 결합한 ‘유형의 주재자’ 개념은 ‘형태를 가진 신들 가운데 주체가 되어 통솔하는 주재신’을 뜻한다.


그런데 주재신은 본성상 인격성을 가진 신명이다. 노길명의 『한국 신흥종교연구』에 따르면, 인격신은 신이 인격으로 전화轉化된 신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간과 동일한 감정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 신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러한 주재신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형상화된 수많은 인격신들을 염두에 두면 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형상화된 신들은 신의 능력과 품격[神格]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 근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물리적인 우주세계와 신명세계가 동전의 앞면과 뒷면과 같이 음양 짝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전제前提로부터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극미세계極微世界는 물론이고 거시세계巨示世界를 구성하는 사실적 존재는 물성物性과 품성品性에 따라 무수하게 다양한 종류의 형태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배면에는 신명들 또한 지성知性과 영성靈性, 인격성에 따라 무수하게 다양한 종류의 형태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아가 우주사회 또한 무수히 많은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명사회 또한 최소한 이에 대응해서 그 이상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단체나 영역營域의 중심이 되어 맡아 다스리는 주재신은 신의 품성品性에 따라 관할영역이 다르고, 신격에 따라 활동영역도 다양하다. 이러한 주재신들은 우주사회와 마찬가지로 상호 주종主從 관계를 유지한다.


다시 말하면, 우주사회는 ‘사실적 존재’로 구성된 사회적社會的 존재의 관계망으로 구축되어 있다. 사회적 존재는 개별적인 ‘사실적 존재’로부터 전체를 포괄하는 거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상호 역동적인 지배와 종속, 배타排他와 일탈逸脫의 관계로 밀접하게 엮여 있다.


이는 이러한 사회적 존재의 관계망이, 횡적橫的으로 보면 개별적인 집단 간이나 같은 위계位階들의 존재들 간에, 종적縱的으로 보면 상하 위계의 사회들 간에,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밀접한 상호제약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주재신은 사회적 존재의 관계망에도 꼭 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주사회와 마찬가지로 신명 사회에는 고립되어 존재하는 주재신이란 없다. 이는 주재신이 종속적 사회와 환경사회를 전적으로 서로 제약制約하고 제약되는 관계망에서 주재활동을 벌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신명사회 또한 통치체제의 질서 망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것을 증산도는 천상의 신명조화정부라 부른다. 천상 신명조화정부에서 최고의 주재자는 주신으로 으뜸이 되는 지존무상의 하늘 임금[上帝]이라 호칭한다.


상제는 바로 원신의 본체와 하나 되어 조화권능으로 우주만물과 신명들을 무위이화로 주재하는 최고의 주재자의 위격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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