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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의 고향을 찾아서 (4) - 야망野望

2020.08.20 | 조회 932 | 공감 0

왕적王績의 「들을 바라보며(야망野望)」 

 

상생문화연구소 원정근


【제목풀이】 

이 시의 제목은 「야망野望」이다. ‘야망’은 들판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왕적王績(590?-644)은 수당의 교체기에 생존했다. 자는 무공無功이고 호는 동고자東皐子이며 강주絳州 용문龍門(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만영현萬榮縣 통화진通化鎭) 사람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왕적의 이름과 자가 서로 모순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왕적의 이름인 적績은 공적을 뜻하고, 자인 무공無功은 공적이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왕적의 이름과 자는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의 관계를 대변한다. 호는 동고자인데, 도연명의 「귀거례혜사병서」에 나오는 동쪽 언덕을 뜻하는 ‘동고東皐’에서 따온 것이다. 왕적의 이름과 자와 호에서 그의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 


어스름녘 동쪽 언덕에서 바라보나니,

서성이며 무엇에 기댈꼬? 

나무마다 죄다 가을빛, 

산마다 온통 석양빛.

목동은 송아지 몰고 돌아오고,

사냥 말은 날짐승 매달고 돌아오네.

돌아봐도 아는 이 없고, 

길게 노래하며 들완두 캐던 이 그리워하네.


동고박모망東皐薄暮望, 사의욕하의徙倚欲何依? 

수수개추색樹樹皆秋色, 산산유낙휘山山唯落暉. 

목인구독반牧人驅犢返, 엽마대금귀獵馬帶禽歸.

상고무상식相顧無相識, 장가회채미長歌懷采薇. 


늦가을 어느 날 해질 무렵이다. 동쪽 언덕에 올라서 들판을 바라보다가 온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무마다 모두 가을빛이 완연하고, 산마다 온통 석양빛이 붉게 물들었다. 긴 하루가 어느덧 지나고 붉은 석양이 온 누리를 물들이고 있다. 석양은 조만간 서산을 넘어 제 집을 찾아 돌아갈 것이다. 


해질 무렵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돌아오는 때이다. 소치는 아이는 송아지를 몰고 식구들이 따뜻한 저녁밥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사냥꾼은 사냥에서 포획한 짐승들을 말에 얹고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시인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저녁노을 아래에서 이리저리 오가면서 배회하고 있다. 무엇이 시인을 이토록 방황하게 만드는 것일까?  




시인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지음知音이 없다. 그러다 시인은 문득 까마득한 옛날 수양산에서 은거하던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생각했다. 백이와 숙제는 은殷나라 말기의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두 사람은 모두 왕위 계승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였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러 떠날 때,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폭력으로 폭력을 제압하는 것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무왕이 백이와 숙제의 말을 듣지 않고 은나라를 정벌하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에서 나오는 곡식을 거부하고 들완두를 캐먹다가 쓸쓸히 죽었다.


사마천의 『사기』 백이열전에는 백이와 숙제가 죽기 전에 불렀다는 노래를 전하고 있다. 들완두를 캐면서 부른 노래인 ‘채미가采薇歌’이다. ‘채미가’에서 ‘미薇’는 고사리가 아니라 들완두를 가리킨다.  


저 서산에 올라, 들완두를 캐도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고도, 

그 잘못을 알지 못하누나. 

신농과 우와 하나라가 홀연히 사라졌으니, 

나는 어디로 돌아갈꼬?

아아, 떠나련다! 

운명이 쇠한 것을. 


登彼西山兮, 采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适歸矣? 

于嗟徂兮, 命之衰矣.


시인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어처구니없는 불의한 세상을 떠나서 백이와 숙제처럼 심심유곡에서 은거하면서 고고하게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왕적의  「야망野望」은 오언 율시로서 그의 시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구가 다섯 글자씩으로 된 여덟 줄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너무도 흔한 시체詩體이기 때문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변려체騈儷體의 시풍이 풍미했던 육조六朝의 시가사詩歌史를 돌아보면, 왕적의 이 시가 얼마나 질박한 풍격을 지니고 있는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왕적 이후 오언 율시는 당시의 중요한 시가체제로 정형화된다. 


왕적은 「약야계에 들어가며(입약야계入若耶溪)」에서 타향에서 벼슬살이하는 괴로움을 토로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배는 둥실둥실, 

하늘과 강물 모두 아득아득.

노을은 먼 산굴에서 피어오르고,

햇빛은 도는 강물 따라 비추네. 

매미 울어대니 숲 더욱 고요하고, 

새 지저귀니 산 더욱 그윽하네.  

이 땅 고향 생각 일으키니,

오랜 세월 떠돌다보니 지겨워 슬프네. 


여황하범범艅艎何汎汎, 공수공유유空水共悠悠. 

음하생원수陰霞生遠岫, 양경축회류陽景逐廻流. 

선조임유정蟬噪林逾靜, 조명산갱유鳥鳴山更幽.

차지동귀념此地動歸念, 장년비권유長年悲倦遊.


이는 왕적이 소흥의 회계산 아래에 있는 골짜기 약야계若耶溪에 들어가며 지은 시다. 약야계는 월나라의 미녀 서시西施가 빨래를 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배를 띄우고 유유자적하게 노닐자니, 하늘과 강물이 하나로 어우러져 아득히 펼쳐 있다. 노을은 먼 산굴에서 무심히 피어오르고, 햇빛은 빙 돌아가는 강물을 따라 비춘다.




5구와 6구는 만고의 절창이다. “선조임유정蟬噪林逾靜, 조명산갱유鳥鳴山更幽.”는 고요함 속에서 움직임을 드러내는 시적 기법을 사용하였다.


매미는 요란하게 울어대건만 숲속은 외려 고요하고, 새는 시끄럽게 조잘대건만 산속은 더욱 그윽하기만 하다. 왕적은 오랫동안 객지의 벼슬살이에 얽매여 사는데 넌더리가 났다. 입약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바라보며 고향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고픈 마음을 되살리고 있다.  

 

인생 백년 늘 시끌시끌, 

모든 일 죄다 아득아득.  

햇빛은 뜻대로 지고, 

강물은 뜻대로 흐르네.

예악은 주공을 가두었고, 

시서는 공자를 묶었다네. 

베개 높이 베고, 

자주 취하여 근심 잊느니만 못하리라.  


백년장요요百年長擾擾, 만사실유유萬事悉悠悠. 

일광수의락日光隨意落, 하수임의류河水任意流.  

예악수희단禮樂囚姬旦, 시서박공구詩書縛孔丘.

불여고침상不如高枕上, 시취취소수時取醉消愁. 


이 시의 제목은  「정처사에게 주며(증정처사贈程處士)」이다. 왕적은 유가의 도덕질서에 얽매여 살아가는 주공과 공자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였다.


주공은 자신이 제정한 예악제도에 얽매여 살았고,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힘쓰다가 말년에 『시』, 『서』를 정리하는 데 모든 열정을 다 바쳤다.


왕적은 유가의 가치관에 얽매여 살기보다는 혼곤히 술에 취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다 잊고서 도가의 자연질서에 따라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는 자신의 인생관을 표출하고 있다. 


북쪽 텃밭에서 콩 매는 걸 마치고, 

동쪽 언덕에서 기장 베고 돌아오네.

만나니 가을 달 둥글거니와,

더욱이 밤에 반딧불이 나는구나. 


북장예곽파北場芸藿罷,

동고예서귀東皐刈黍歸. 

상봉추월만相逢秋月滿, 

갱치야형비更値夜螢飛. 


이 시의 제목은 「가을밤 왕처사를 만나 기뻐하며(추야희우왕처사秋夜喜遇王處士)」이다. 앞의 두 구절은 시인이 서로 다른 두 곳인 북쪽 텃밭과 동쪽 언덕에서 농사짓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동고’는 동쪽 언덕을 뜻하는 것으로 도연명의 시구에서 빌려온 것이다. 뒤의 두 구절은 시인의 정감과 자연의 풍경을 하나로 융화하여 정경교융의 경지에서 표현한 것이다.


뒤의 첫 번째 구절은 마음에 맞는 벗인 왕처사를 만난 심정을 표현한 것이고, 뒤의 두 번째 구절은 가을밤에 개똥벌레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는 경물을 표현한 것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초당시대의 왕적의 전원시가 동진시대의 도연명의 전원시와 성당시대의 맹호연과 왕유의 전원시를 이어주는 교량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왕적의 삶에서 도연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왕적은 벼슬살이를 떠나서 전원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던 도연명을 진심으로 존숭하였다. 또한 술 속에서 우주와 인생의 참뜻을 얻고자 했던 도연명을 온몸으로 존경하였다.  


완적은 깨어 있을 때가 적었고, 

도연명은 취한 날이 많았지.

백년 인생 어찌 헤아릴 필요가 있겠는가?

흥 오르면 잠시 길게 노래해야지. 


완적성시소阮籍醒時少, 도잠취일다陶潛醉日多. 

백년하족탁百年何足度, 승흥차장가乘興且長歌. 


이 시의 제목은 「술에 취한 뒤(취후醉後)」이다.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지은 시다. 위진시대에 술을 사랑한 대표적인 인물은 위나라의 완적阮籍(210-263)과 동진시대의 도연명陶淵明(365-427)이다.


술을 사랑한다는 측면에서, 왕적은 완적이나 도연명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자주 수레를 타고 다니다가 술집을 지날 때 술 향기가 풍기면 수레에서 즉시 내려 실컷 술을 퍼마시고 며칠토록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돌아보면, 인생은 너무도 속절없다. 백년도 못되는 덧없는 인생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맘껏 술을 마시고 취흥이 오르면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일이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교체기에 생존했던 인물 가운데 술에서 인간의 이상향을 찾은 인물이 있다. 왕적王績이다. 왕적은 진정한 삶의 고향을 술에서 찾았다.




왕적은 도연명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모방하여  「오두선생전五斗先生傳」을 지어 언제나 술에 취해 사는 술꾼을 이상적 인간상으로 제시하고, 「취향기醉鄕記」에서는 술을 통해 인생의 참뜻에 꼭 맞게 사는 주객일체의 고향인 취향醉鄕을 찾고자 했다.


왕적은 완적과 도연명이 술에 혼곤하게 취해 즐기던 삶의 경지인 취향醉鄕을 꿈의 이상향으로 설정한다. 

 

취향은 중국과 몇 천리나 떨어져 있는지 모른다. 그 땅은 드넓어 끝이 없고, 구릉과 골짜기가 없다. 그 기후는 온화하고 평온하여 한결같고, 밤과 낮이나 추위와 더위가 없다. 그 풍속은 크게 같아서 마을이나 부락이 없고, 그 사람들은 매우 순수하여 사랑과 미움이나 기쁨과 성냄이 없다. 바람을 마시고 이슬을 먹으며 오곡을 먹지 않는다. 잠잘 때는 느긋느긋하고, 행동할 때는 느릿느릿하다. 물고기와 자라와 새와 길짐승과 한데 섞여 살면서 수레와 배와 기계의 쓰임을 알지 못한다.


옛날 황제가 그 도읍에 노닌 적이 있었는데, 돌아와 아득히 천하를 잊어버렸다. 새끼를 묶어 다스리던 정치가 이미 천박하다고 여겼다. 요순에 이르러 온갖 술을 예물로 삼아 막고야 신인에게 길을 빌려 취향의 변경에 이르러 평생토록 태평성세를 누렸다.


우와 탕이 법을 세움으로써 예법이 번잡하여 수십 세대 취향과 단절되었다. 그들의 신하 희화는 천문과 역법을 관장하는 직책을 버리고 도망가서 취향에 이르기를 바랐지만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도중에 일찍 죽었으므로 천하가 마침내 평안하지 않게 되었다.


말기의 후손에 이르러, 걸과 주가 성을 내어 술지게미 언덕을 만들고 천 길 계단을 올라가 남쪽으로 향하여 바라보니 마침내 취향을 볼 수 없었다. 주 무왕이 천하를 얻은 뒤에 주공 단에게 명하여 주인씨의 직책을 세우게 하고 술 빚는 것을 관장하게 하며 칠천 리의 땅을 넓히게 하여서 겨우 취향에 이르렀다. 삼십 년을 형벌을 쓰지 않았다.


유왕과 여왕에 미치고 진나라와 한나라에 이르러 중국에 전란이 일어나서 마침내 취향과 단절되었다. 그러나 신하 가운데 도를 얻은 자가 이따금 남몰래 거기에 이르렀다. 완적과 도연명 등 10여 사람이 함께 취향에서 노닐면서 평생토록 돌아오지 않았다. 죽어 그 땅에 묻히었는데, 중국에서는 그들을 주선으로 여기고 있다. 아아! 취향씨의 풍속은 아마도 옛날 화서씨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어찌 이같이 순수하고 고요한고! 내가 거기에서 노닐 수 있었으므로 이 때문에 「취향기」를 쓰노라. 


醉之鄕, 去中國不知其幾千里也. 其土曠然無涯, 無邱陵阪險; 其氣和平一揆, 無晦明寒暑. 其俗大同, 無邑居聚落; 其人甚精, 無愛憎喜怒. 吸風飮露, 不食五穀. 其寢于于, 其行徐徐, 與鳥獸魚鱉雜處. 不知有舟車械器之用. 昔者黃帝氏嘗獲游其都, 歸而杳然喪其天下, 以爲結繩之政已薄矣. 降及堯舜, 作爲千鍾百壺之獻, 因姑射神人以假道, 蓋至其邊鄙, 終身太平. 禹湯立法, 禮繁樂雜, 數十代與醉鄕隔. 其臣羲和, 棄甲子而逃, 冀臻其鄕, 失路而道夭, 故天下遂不寧. 至乎末孫桀紂, 怒而升其糟丘, 階級千仞, 南向而望, 卒不見醉鄕. 武王氏得志於世, 乃命周公旦立酒人氏之職, 典司五齊, 拓土七千里, 僅與醉鄕達焉. 三十年刑措不用. 下逮幽厲, 迄乎秦漢, 中國喪亂, 遂與醉鄕絶. 而臣下之受道者, 往往竊至焉. 阮嗣宗、陶淵明等十數人, 並遊於醉鄕, 沒身不返. 死葬其壤, 中國以爲酒仙云. 嗟乎! 醉鄕氏之俗, 豈古華胥氏之國乎? 何其淳寂也如是! 予得游焉, 故爲之記. (「취향기醉鄕記」)

 

취향은 까마득한 옛날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태평시절을 누리던 황금시절의 이상세계를 뜻한다.


나와 남을 구별함이 없이 주객일체를 이루던 고대의 황금시절의 순박한 풍속이 사라지자, 인간세상은 마침내 취향과 단절되었다.


왕적은 중국의 역대 왕조를 평가하면서 취향을 제시하고 있다. 왕적이 보기에 은주시대의 폭군이었던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이후 진나라와 한나라에 이르러 전란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어 취향의 자취는 아득히 멀리 사라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위나라의 완적과 동진의 도연명 등이 음주행위를 통해 현실 역사에서 취향을 새롭게 창조했다는 점이다. 왕적은 주객일체의 술 마시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인 취향을 꿈꾼 것이다. 거나하게 술을 마시면 진정한 삶의 고향을 찾아 돌아갈 수 있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그러니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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