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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인도 탐방단 보고: 불교 유적지 7편

2020.08.21 | 조회 912 | 공감 0

바이샬리의 최고 미녀 암바빨리Ambapālī,

『유마경』의 설법지 암바빨리 동산[菴羅樹園]을 바치다


상생문화연구소 노종상 연구위원 



▲인도 비하르주 바이샬리 거리


바이샬리 저자를 걸으면서 탐방객은 몇 개의 풍경이 떠올랐다. 하나는 암바빨리(팔리어: Ambapālī, 산스크리트어: Āmrapālī, 한자음역 : 菴摩羅、菴没羅 등, 의역: 㮈女、柰女、非浄護 등. 생몰년 미상)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붓다의 여성 제자(비구니)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암바빨리는 바이샬리 사람으로 바이샤 출신이었다. 어려서 바이샬리 성 밖의 망고 숲에 버려져서 그곳 관리인에 의해 길러졌다. ‘암바빨리’라는 이름은 ‘망고 숲 관리인의 자식’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미인이었다. 그녀의 미모는 바이샬리뿐만 아니라 인도 전역에 알려졌다.


남전불교의 경전인 『마하박가』에는 그녀의 미모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들어 바이샬리 성내가 인파로 넘쳐났다고 할 정도였다. 



▲ 〈드라마 붓다〉에서 암바빨리  (출처 BTN불교TV)


마침내 주변 일곱 나라의 왕들이 그녀에게 구혼하겠다며 바이샬리 성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암바빨리의 의견을 묻기도 전에 전쟁을 벌였다. 이에 암바빨리는 자청해서 기녀가 되었다.


"제가 만약 한 왕을 고르면 다른 왕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차지하지 못한 왕은 자신의 권위가 흔들렸다고 생각하여 분노할 것이고 왕들의 분노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차라리 저는 모두의 여인이 되고 누구의 여인도 되지 않겠습니다."


암바빨리는 미모뿐만 아니라 마음도 고왔다. 또한 기녀가 된 후에는 춤, 노래, 음악에도 뛰어났다. 그녀를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를 돌며 막대한 재물을 축적했다. 


BTN불교방송에서 〈드라마 붓다〉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같은 프로를 몇 차례에 걸쳐 방영하였다. 이 드라마에서 암바빨리는 마가다국의 빈비사라왕頻婆娑羅王의 애첩으로 묘사되고 있다. 빈비사라왕은 붓다의 친구요, 비호자였다. 그러나 그는 비운의 왕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는 야심가였던 아들 아자타샤트루Ajātasatru(493?~462?) 태자에 의해 감옥에 유폐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인간사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 당시 아자타샤트루 태자를 교사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붓다의 사촌으로 배교자인 데바닷타Devadatta였다. 왕위에 오른 아자타샤트루는 바이샬리, 당시 왓지국과 전쟁을 일으키는데, 전쟁에서 패하여 쫒기는 아자타샤트루왕과 암바빨리는 한동안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시 암바빨리는 그가, 한때 그녀가 사랑했던 빈비사라왕의 아들 아자타샤트루 왕인지 알지 못했다.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없으나 드라마는 역시 드라마로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편 라자가하 독수리봉(영취산)을 떠나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떠난 붓다가 웨살리(바이샬리)에 당도하였을 때였다. 그때 붓다는 웨살리에서 암바빨리 숲에 머물렀다. 암바빨리의 소유였으므로 불전문학에서는 ‘암바빨리의 숲’으로 불렀다.


다음은 『대열반경』의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암바빨리는 ‘붓다께서 웨살리에 오셔서 나의 망고 숲에 머물고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멋진 마차에 올라서 웨살리 자신의 숲으로 갔다. 붓다는 그녀를 위해 법을 설했다. 잠자코 붓다의 가르침을 받든 뒤에 그녀는 말씀 드렸다.


“붓다시여, 붓다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희들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붓다는 침묵으로 허락하였다. 암바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붓다에게 절을 올려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붓다가 암바빨리 숲에 와서 머문다는 소식은 온 웨살리에 전해졌다. 왓지국을 대표하는 종족 릿차위들도 붓다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아주 멋진 마차에 올라 웨살리 성을 나갔다. 중간에 암바빨리가 타고 있는 마차와 마주쳤다. 그들은 물론 그녀를 알아보았다. 


릿차위들은 암바빨리에게 말했다.


“암바빨리님, 무슨 일로 그리 급하게 가시는가요?”

"젊은 분들이여, 붓다께서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에 초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잘 됐군요. 암바빨리님. 그러면 십만의 ‘돈’으로 그 공양을 우리에게 파시오.”


암바빨리는 거절했다.


“젊은 분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제게 웨살리를 다 준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중요한 공양은 드릴 수가 없답니다.”


릿차위들은 손가락을 튕기면서 말했다.


“여보게들, 우리가 망고지기 여인에게 저버렸네.

여보게들, 우리가 망고지기 여인에게 속아버렸네.”


그들은 서둘러 암바빨리 숲으로 갔다. 그들은 붓다에게 직접 공양에 초대하였다. 붓다는 암바빨리의 공양을 받기로 한 사실을 전해 주었다.

 

“여보게들, 우리가 망고지기 여인에게 저버렸네.

여보게들, 우리가 망고지기 여인에게 속아버렸네.” 


릿차위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붓다의 가르침에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암바빨리는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한 뒤 붓다에게 시간을 알려드렸다. 붓다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비구 승가와 함께 오전에 암바빨리의 집으로 갔다. 


암바빨리는 붓다를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자기 손으로 직접 대접하였다. 붓다가 공양을 마친 뒤에 암바빨리는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암바빨리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붓다시여, 이 원림을 붓다를 으뜸으로 한 비구 승가께 바치옵니다." 


붓다께서는 흔쾌히 원림을 받았다. 그리고 붓다는 그녀를 위해 법을 설하고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였다.



▲ 〈드라마 붓다〉에서 암바빨리 (출처 BTN불교TV)


암바빨리가 바친 망고 숲인 암바빨리 숲(암마라수원菴摩羅樹苑으로 한역)에는 훗날 승원이 세워졌다. 이곳이 훗날 ‘천축(인도) 5대 정사天竺五精舎’의 하나인 암바빨리숲 정사(암마수원정사菴羅樹園精舎으로 한역)이다.


한편 가이드에 따르면 탐방객이 조금 전 답사한 대림정사 역시 암바빨리가 기증한 동산이었다고 하지만, 탐방객으로서는 더 이상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탐방객이 주목하는 것은 그런 외적인 풍경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이 암바빨리 숲이야말로 ‘대승불교의 선언서’로 널리 알려진 『유마경』의 설법지이기 때문이다(다음 회에  좀 더 상세히 얘기한다). 


「장로니게주長老尼偈註」에 따르면 그 후 암바빨리는 붓다의 승가에 출가해서 고명한 장로가 된 그녀의 아들 비마라와 콘단야 비구의 설법을 듣고 출가해 비구니가 되었다. 그 후 오래지 않아서 남전불전에서 기록한 최고의 경지인 아라한과阿羅漢果의 깨달음을 얻었다.



▲ 〈드라마 붓다〉에서 암바빨리 (출처 BTN불교TV)


불전문학에는 다른 일화도 전한다. 『(불설)내녀기역인연경㮈女祇域因縁経』은 후한後漢시대에 안세고安世高가 148년에서 170년 사이에 한역하였다. 줄여서 『기역인연경』ㆍ『내녀기경』이라고 하며, 별칭으로 『내녀경』이라고도 한다. 붓다가 내녀 비구니와 기역의 전생인연을 설한 경전이다. 


이 경전에 따르면 암바빨리는 바이샬리의 바라문이 왕에게서 하사받아 심은 내수㮈樹에 맺힌 열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느 경전이나 불전문학에도 미인으로 통한다. 이 경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15살 때였다. 그녀의 빼어난 미모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일곱 명의 왕이 와서 구혼을 하였다.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 


나무 열매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를 가진 여인은 암바빨리만이 아니었다. 같은 시대에 슈마나Sumanā와 파드마Padumā라는 이름의 두 여인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각기 나무에 핀 꽃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3인의 여성은 모두 5백 명의 여성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붓다의 설법을 듣고 출가해 아라한과를 얻었다.



바이샬리 거리를 걷고 있을 때, 함께 걷고 있던 앞잘 박사가, “저 장면도 찍어요.” 하고 권했다. 한 바이샬리 여인이 소똥을 잘게 쓴 볏짚과 함께 섞어 통나무처럼 만들고 있었다. 인도의 농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바이샬리 여인은 옆에 제법 많은 양이 채곡채곡 쌓여 있었으나 나그네 따위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묵묵히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앞잘 박사가 “연료로 쓸 거에요.” 설명해 주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를 두세 컷 누른 뒤에도 탐방객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바이샬리의 여자, 암바빨리의 후예의 모습이다. 아니, 뭐, 사람 사는 모습이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것이 붓다의 모습이다. 건방진 소리라고 누가 회초리를 들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소똥에 볏짚을 섞어 연료를 만들고 있는 바이샬리의 여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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