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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시베리아의 유래(2)

2021.04.09 | 조회 4703 | 공감 0

지명 ‘시베리아’의 유래를 찾아서 (2)


상생문화연구소 홍미선(불어학 박사)



‘시비르’는 종족명인가, 지명인가

‘시베리아’라는 지명이 ‘시비르’ 칸국에서 왔다면, ‘시비르’는 본래 지명이었을까, 아니면 종족명에서 유래했을까? 


『몽골비사』(『원조비사』)에 나오는 ‘시비르’는 지명보다는 종족명으로 보인다. 그 첫째 근거는 최초의 번역서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인 한문본 『원조비사』에서 ‘失必兒等種실필아등종(시비르 등의 종족)’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근거는 몽골어 복원본에서 ‘시비르’가 지명으로 읽힐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근거는 중국학, 몽골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몽골비사』를 프랑스에 처음 소개하고 연구했던 P. 펠리오(1878-1945)가 “[여기에서] 시비르는 종족명이다”라고 단언했다는 것이다(Pelliot, 1949:141).


펠리오는 독일의 저명한 중국·몽골학자 E. 해니쉬(1880-1966)의 독일어 번역서에 Sibir가 종족명으로 번역되지 않은 것을 오류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몽골어 복원본을 번역한 해니쉬(Haenisch, 1941:117)가 Sibir를 종족의 이름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 풍승균(馮承均, 2015:343)이 『원조비사』 속 失必兒실필아를 지명으로 언급했다는 점, 최초의 영어 번역서인 클리브스(Cleaves, 1982:173)에서 Šibir와 관련하여 펠리오를 참조하라는 주석을 단 점 등등, 곳곳에서 종족명과 지명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따른 망설임이나 논쟁의 흔적이 발견된다.


필자의 글 제1편에서 지명으로 언급되었던 14-15세기 페르시아·아랍어권 문헌 속 ‘시비르’(‘이비르 시비르’ 혹은 그 변이형들 포함) 역시 언어에 따라 번역자에 따라 지명이 아닌 종족명으로 번역된 경우가 있음을 확인했다.


마찬가지로 『원사元史』(1370)와 『신원사新元史』(1922)의 「옥와실전玉哇失傳」에 나온 ‘亦必兒失必兒’(이비르시비르)는 서로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옥와실전」은 쿠빌라이 칸(원의 초대 황제)의 장수였던 옥와실의 전기로, 이 용맹한 장군이 ‘이비르 시비르’(혹은 ‘이비르시비르족의 땅’)에 가서 카이두(하이두) 칸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신원사』에서는 “戰於亦必兒失必兒”(이비르시비르에서...)라 하여 지명이 확실하지만, 『원사』에서는 “戰於亦必兒失必兒之地”(이비르시비르라는 땅에서.../이비르시비르족의 땅에서...)라고 하여 지명일 가능성이 크지만 종족명으로 해석도 가능하다. 브렛슈나이더(1888)에서는 「옥와실전」의 亦必兒失必兒를 ‘the country of Ibirh Shibirh’(p.37), ‘the country Ibirh Sibirh’(p.88)라고 하여 분명하게 지명으로 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몽골비사』라는 제한된 콘텍스트 안에서 ‘시비르’가 종족명으로 한번 나왔다는 것이 그 무렵 이 이름이 오직 어떤 종족만을 가리켰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몽골비사』 속의 종족명 ‘시비르(失必兒)’는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1180-1227)와 관련된 1207년의 이야기에 나오고, 『원사』 「옥와실전」과 『신원사』 「옥와실전」 속의 지명 ‘시비르(失必兒)’는 칭기즈 칸의 손자 쿠빌라이(1215-1294)와 증손자 카이두(1230-1302) 사이에 있었던 몽골제국 내전의 한 장소로 등장한다. 요컨대, 두 사건은 최대 10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차이를 두고 모두 13세기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13세기에 ‘시비르(失必兒)’는 이미 종족명이자 지명이었거나, 종족명이었다가 지명으로 의미전이가 되었을 것이라는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시비르’와 선비족, 사비르인의 연관성

‘시베리아’와 ‘시비르’의 어원적 관련성은 정설로 굳어지고 있지만, 15-16세기 서시베리아에 존재했던 이 튀르크-몽골계 국가의 이름 ‘시비르’의 어원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지금까지 명쾌하게 통일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설이 분분하고 심지어 억측이 난무하기도 하지만 몇몇 석학들은 매우 흥미롭고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어 보이는 견해들을 제시했다. 


『원조비사』의 주석가로 유명한 중국인 몽골학자 이문전李文田(『元朝秘史注』, 1896)은 시비르(失必兒)를 선비鮮卑의 후손인 석백錫伯, 석백席伯, 서북西北, 석북席北이나 시베리아를 뜻하는 서필이사과西畢爾斯科, 서백리西伯利 등의 지명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문헌학과 역사학의 대가였던 전 하버드대 교수 프리챠크 역시 시베리아라는 지명이 ‘선비’에서 왔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Pritsak, 1976:17-30).


프리챠크(1976)는 ‘선비’족에서 ‘사비르’족이 나왔고 이것이 오늘날 ‘시베리아’의 어원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보다 앞서 파트카노프Patkanoff(1900:258-277) 등의 학자들도 이미 Sibir/Siberia와 Sabir 사이의 어원적 관련성을 제기하였었다.


터키·중앙아시아 전문 역사학자인 골든 교수는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사비르족이 시베리아에 머문 적이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시베리아라는 지명에 흔적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한다(Golden, 2013:51).




사비르족은 5-6세기경 카스피해 연안에서 거주하다 동유럽까지 진출했던 유목민족인데 그리스의 역사가 프리스쿠스(410-472)의 사서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463년 아바르족의 공격으로 서쪽으로 밀려난 사비르족이 사라구리족Saraguri, 우로기족Urogi, 오노구리족Onoguri을 공격하여 밀어내고 그들의 영토를 차지했다(Blockley, 1983:344–345).


6세기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요르다네스Jordanes는 사비르족을 사비리Saviri라고 불렀다(Howorth, 1892:614). 사비르국은 6-7세기경 멸망하였고 사비르족은 Sabir, Sabar, Savir, Savar, Sawar, Sawer, Suwar, Saber 등 조금씩 다른 수많은 이름을 남긴 채 흩어져 버렸다. 골든 교수는 사비르족이 서시베리아, 톈산 서쪽, 일리강 지방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았다(Bell-Fialkoff, 2000:231).



시비르, 그리고 『환단고기』 속의 ‘사백력’, ‘사비려아’, ‘아이사비’

안함로의 『삼성기』에서는 일신一神이 ‘사백력斯白力’의 하늘에 계시다고 하였고, 원동중의 『삼성기』에서는 인류의 남녀 시조가 처음 만난 곳을 ‘아이사비阿耳斯庀’라고 하였다. 이맥의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에서는 인류의 남녀 조상이 처음 만난 곳을 ‘아이사비阿耳斯庀’라고도 부르고 ‘사비려아斯庀麗阿’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사백력과 사비려아를 시베리아라고 보는 견해들이 있다. 


진실이야 과학적 검증을 통해 밝힐 일이지만, ‘사백력斯白力’과 ‘사비려아斯庀麗阿’는 소리가 비슷하여 같은 곳을 지칭하는 말일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같은 입말(하나의 동일한 지역을 부르는 말소리)이 글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생겼다거나, 입말 자체가 시공간적 위치에 따라 조금 달라졌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사비阿耳斯庀’와 ‘사비려아斯庀麗阿’가 같은 곳을 말한다는 이맥의 설명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런데 현대 한국어의 표기나 발음에 집착하지 않고, 그 먼 옛날에 어떻게 불리던 곳이 ‘아이사비阿耳斯庀’와 ‘사비려아斯庀麗阿’라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13-15세기 페르시아, 아랍, 중국의 고문헌에 나타난 시베리아의 옛 이름들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안함로와 원동중이 『삼성기』를 쓰고 다소간의 시간이 흐른 뒤, 조선의 이맥이 『태백일사』를 쓰던 무렵에 페르시아와 아랍 사람들이 지금의 서시베리아 부근 어느 곳을 [Ibir-Sibir이비르시비르] / [Sibir-Ibir시비르이비르] 또는 [Abir-i-Sabir아비리사비르] / [Sibir-i-Abir시비리아비르] 등과 같이 불렀던 것이다.


13세기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한 중국 문헌 『원조비사』에 나온 [Shībìer](失必兒실필아)가 『원사』 「옥와실전」에 나온 [Yìbìer shībìer](亦必兒失必兒역필아실필아)와 같은 말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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