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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의 그늘

2021.08.05 | 조회 4214 | 공감 0

*이 글은 2016년 8월 11일 방영된 뉴스타파 특별기획 <훈장과 권력 - 3부 건국훈장의 그늘>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훈장은 국가와 민족에 헌신한 이에게 바치는 최고의 영예이다."

대한민국 훈장에는 건국훈장 등 모두 12개 종류의 훈장이 있는데, 1948년 이후 지난 68년 동안 대한민국이 수여한 훈장 건수는 모두 72만 건에 이른다. 전체 훈장 기록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원본영상: 



뉴스타파는 지난 넉 달 동안 자료 조사와 현장 취재를 병행하며 대한민국의 전체 서훈 72만 건의 상세 내역을 샅샅이 찾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천여 명을 새롭게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2,220명 넘는 친일 인사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에서 4백 건 넘는 훈장을 받은 사실을 찾아냈다. 이 작업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했는데, 대한민국 서훈 72만 건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와 민족문제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친일파를 교차 분석한 결과다.




대한민국 국가 서훈자 명단에는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도 있는데, 노덕술은 일제로부터 훈7등 서보장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지만,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의 훈장을 받은 사실은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또 A급 친일파에다 반민특위 1호로 체포된 박흥식, 동족을 배반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은 민영휘도 각각 1977년과 1964년에 훈장을 받는다.


친일인사들에게 수여된 상훈의 전모를 확인해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그 전체 명단은 뉴스타파 특별기획 ‘훈장과 권력’ 4부작 다큐멘터리와 뉴스타파 웹페이지를 통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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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훈장의 그늘

경북 경산시에 있는 조폐공사. 이곳에서는 화폐 뿐 아니라 대한민국 훈장도 만들어진다. 장인들의 손끝에서 하나씩 탄생하는 훈장. 그 중에서도 건국 훈장은 안중근, 김구, 윤봉길, 이상용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 몸을 바치고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쌓은 이들에게 바쳐졌다. 12가지 훈장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다른 훈장,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준다던지 행정 수반이 주는 그런 훈장과는 격이 다르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독립운동가 14,000여 명이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는데, 일부 수훈자 중에 독립운동과는 반대의 행적이 드러났다. 독립운동을 했으나 끝까지 지조를 지키지 못한 사람에게도 건국훈장이 수여 된 것이다.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

"선先 독립운동, 후後 친일, 이 경우는 배신자라고 해서 국가에서 훈장 서훈을 안하는 게 기본 원칙으로 돼 있죠."


이강안(광복회 전북지부장)

"정말로 가족 형제들 다 버리고 목숨 바친 분들이 계시잖아요. 비교는 되어야죠."


그러나 이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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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취재진은 넉 달 동안 건국훈장 수훈자를 대상으로 일제 협력 등, 흠결이 의심되는 행적을 추적했다.그중 독립운동 경력으로 건국훈장을 받았지만, 친일행적도 의심되는 한 수훈자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데, 그가 세웠다는 학교에 가서 진위를 물어보지만 쫓겨난다.


수소문 끝에 이 지역 독립운동 연구자를 만나는데 그에게서 충격적인 말이 나온다

황성근 (익산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

"어떻게 본다면 변절자지. 그런 건 확실하게 변절한 거야. 왜 그러냐면 이건 잠깐 변절한 게 아니야. 오랫동안이잖아."


그가 변절자라고 지목한 이는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배헌. 배헌은 신흥무관학교를 나왔고 1927년 신간회 활동을 하다 일제에 체포돼 징역 6개월 옥고를 치렀다. 이때까지는 독립운동에 길을 걸었다고 했다.


황성근 : "초창기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신간회 운동까지 왔다면 이만한 지성인이 없어요. 또 계속적으로 신문기자를 했고."


그러나 이후 그의 행적은 사뭇 달라진다. 배헌은1931년부터 1942년까지 10년 넘게 익산읍 읍회 회원을 지냈다. 지금의 익산시 시의원에 해당한다.




황성근 : "1929년에서 32년 사이에 그때는 일제 통치잖아요. 익산이 일본인들 도시예요. 일본인들이 세운 도시인데 익산에 익산시 운영위원을 했어. 지금으로 말하자면 시의원이죠.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았잖아요. 일본 사람들 눈치를 봐야 되거든. 이거는 사실이죠. 신문에 났는데. 읍회 의원이 친일파들이 하는 거지. 당연하지 그거는"


더 충격적인 자료도 나왔다. 1939년 이리 소학교에서 열린 친일집회.




이 자리에서 배헌은 친일단체인 배영동지회 이리지역 부회장에 선출된다. 배영동지회는 일제가 저지른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영국과 미국 타도와 징병을 추천한 친일단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그때 당시 친일파들이 내세웠던 것 중에 그 하나가 귀축영미, 미국과 영국은 귀신하고 축생들이니까 쫓아내자 몰아내자. 귀축영미라고 그랬어요. 깃발을 그렇게 들었습니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그 단체의 지역의(배영동지회) 부회장이라고 하면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지역의 어느 정도의 유지급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죠. 이 하나만으로도 흠결이 굉장히 큰 거죠."


그는 해방직후 이리裡里주민들에 의해 친일파로 지목 됐고, 광복절 행사장에서 쫓겨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황성근 : "나중에 어떤 입장에 섰냐하면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해방절 행사할 때 친일파라고 끌어내렸어. 시민들이. 일본인들 하고 같이 저기를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의 이런 행적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독립운동 공훈록에는 그가 해방할 때까지 청년운동에 전념하는 등, 민족운동을 계속했다는 기록만이 남아 있다. 그가 받은 건국 훈장 애국장은 건국훈·포장 6개 단계 중 네 번째 등급이다.


충남 당진에서 의병을 이끌다 순국한 의병장 최고현에게 추서된 훈장도 애국장이었다. 그 정도로 건국훈장 애장은 독립을 위해 끝까지 헌신한 이에게 줘야 되는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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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2

친일 의심행적은 가려진채 독립운동 경력만 부각해 대한민국 건국 훈장의 수여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다지난 2016년 2월 29일 대한의사협회는 삼일절을 앞두고, 의사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을 선정 발표했다. 서재필 등 모두 쉰 명이었다. 의사협회는 이미 훈격이 확정된 분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선정 과정에 객관성과 공신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는데, 과연 그럴까?


1992년 건국 포장을 받은 송영찬.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 4학년 재학 중 삼일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재판을 받았다.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그렇다면 의대 졸업 후 해방 때까지 송영찬의 행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신문 자료 등을 검색해 일제 강점기 중후반 그의 이력을 추적했다. 삼일만세운동 등 초기 독립운동 이력과는 전혀 다른 행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의대 졸업 이후 그는 1925년부터 1941년까지 일제식민통치의 본산인 조선총독부와 수탈의 상징인 동양 척식에서 공의와 촉탁의를 지냈고, 1937년에는 황해도 민선도회 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도회 위원은 지금의 광역자치단체 의원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사실은 신믹지 지배체제가 구축되고 그게 잘 작동하는데 상당히 역할을 한 지역의 핵심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다. 일제의 국방헌금도 냈다. 1937년 동아일보, 일제의 비행기 황해호 건조비와 국방비를 바친 사람들의 명단이다. 송영찬이 백원을 낸 것으로 나온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볼 때 수백만원에 이른다. 




건국 포장 대상이 되기에는 심각한 흠결이 잇따라 드러난 것이다.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면 훈장 추서는 불가능하다. 국가 부훈처의 독립유공자 심사가 너무 허술했던 것이다 .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는 최대한 하는 게, 일본한테 협력한 사람들한테는 독립유공자 포상되는 일이 없어야 된다."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장(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독립운동과 친일은 이게 공존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독립운동도 하고 동시에 친일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러니까 독립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일제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 독립을 꿈꾸는 운동인데, 그런 운동에 방해가 되는 활동을 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훈장을 줘선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자꾸 흠결을 따지는 겁니다."


어떤 경위로 송영찬을 선정했을까? 취재진은 의사협회를 찾았다. 그러나 협회는 답변을 피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

"저희 선에서는 이제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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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풍문으로만 전해졌던 건국훈장 수훈자의 친일행적이 조금씩 확인되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전체 건국훈장 수훈자로 조사를 확대한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건국훈장을 받은 14,000여 명을 대상으로 일제 강점기 전 시기의 행적을 찾아 보며, 총독부 관보와 면 직원록, 일제가 작성한 각종 공적조사 등을 샅샅이 조사했는데, 그 결과는 예상을 뛰어 넘었다. 




#사례3

대구 달성공원. 시민들의 대표적 휴식 공간. 70년 전 일제 강점기 때에는 여기에 일제가 건립한 대구 신사가 있었다. 신사는 1960년대 사라졌지만 아직도 주춧돌 등 일부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 대구 시민들은 이곳에서 신사참배와 함께 황국신민이 될 것을 강요받았다.


변성호 (대구향토역사관 학예연구사)

"천황의 자식이니까 너희들도 똑같이 여기서 신사에다가 절도 하고 징병에도 너희들이 해야 된다라는 소위 민족말살정책 그런 거 일환으로 이걸 하면서, 각급 학교 학생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를 했던 거예요." 


일제 강점기 대구 신사에선 수 많은 친일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일제가 미국 진주만을 공습한지 6일 후  대구신사에선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징병을 선동하는 대회가 열렸다. 당신 신문은 피 끓는 국민대회가 성대하게 열렸다고 이날 집회를 대서특필했다.




참가자 대표들은 목청높여 이렇게 외쳤다. "멸사봉공 신도(臣道) 실천에 매진하여 총력을 결집, 미국과 영국을 타도하여 정전을 관찰하자"


참가자 대표들의 면면을 찾아보았는데. 그 중 한 명이 서상일로 확인됐다. 그는 대구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다. 서상일은 1913년 광복단을 조직해 군자금을 모으고, 조선국권회복단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는데 이런 서상일이 대구 신사대회에 대표자격으로 참가한 것 외에도 친일의심 행적이 계속 나왔다.


지금의 서울시 의회 건물. 옛 부민관에서는 일제강점기 친일단체들의 궐기대회가 자주 열렸는데, 일제의 침략전쟁이 본격화 되던 1941년 10월. 최림, 한상용, 박종혁, 박흥식 등 거물급 친일파가 대거 부민관에 모였다. 조선 최대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 결성식(1941.10)에 참여자들은 황국 신민으로 일황에 목숨을 바쳐 충성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적극 지원할 것을 결의한다. 




<조선임전보국단 선서문 중>

2,400만 반도의 민중 전체가 일치 결속하여 성전의 완수를 통해 황국의 융흥을 기하고 성은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것을 맹세한다.


그런데 이 임전보국단의 발기인과 평의원 명단에 거물급 친일파와 함께 서상일의 이름도 등장한다. 임전보국단에 참여한 친일파는 대부분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규명위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서상일은 이에 앞서 1939년 조선군 사령부가 주최한 병사부장 회의에 대구 병사부 소속 대표로도 참석한 사실이 당시 신문기사에서 확인되었는데, 독립운동가의 모습과는 상반된 행적. 그를 어떻게 봐야 할까?





[중략]


넉 달 동안에 취재 결과

14,000여 건국훈장 서훈자 가운데, 일체 협력 또는 친일로 의심될 만한 행적이 발견된 사람이 모두 167명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 분류해 보니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단체에, 모두 23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제의 국방헌금 등을 낸 사람도 9명이나 된다. 일제의 대례기념장과 국세조사기념장 등 각종 포장을 받은 이도 9명이었다.




건국 훈장 서훈자중에 일제강점기에 면장을 지낸이는10명. 면과 읍협의회 회원은 110명. 면직원도 16명이 나왔다. 이들의 행적을 곧바로 친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건국훈장 서훈시에는 중대한 결격 사유가 된다왜 그럴까?


1940년대 일제가 작성한 지나사변 공로자 공적 조서(1940년)가 그 이유를 잘 보여준다. 지나사변 공적조서는 중일 전쟁에 적극 협력했던 조선인들의 친일행적을 상세하게 정리해놨다.



1940년에 작성된 한 면장의 공적조서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일본이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중국 대륙을 이제 침략합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 대해서 포상을 주기 위해 공적 조사한 것인데. 전체적으로 일본 정부가 공적을 조사한 다음에 상을 주기 위해서 만든 조서들이죠."




군수품으로 보낸 돼지의 보리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침략전쟁을 선동하는 강연과 교육을 잘 수행했는지, 비행기 헌납과 국방관련 헌금을 얼마나 했는지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침략전쟁을 위한 채권판매에 좋은 성적을 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민철 : "여기 공출 부분에 여러가지 다 있습니다. 보리, 돼지, 돼지가죽, 양모, 이게 다 군수품이거든요. 또 여론 환기를 위해서 국방사상을 선전을 하는 그런 업무를 어떻게 했는지, 전쟁을 찬양하는 음악회 라든가 영화 라든가 이런 것을 지역에서 얼만큼 많이 활성화 시켰는지, 그런 것까지 자세하게 나와있습니다.


Q. (전쟁을 찬동하는) 강연이나 교육 같은 것도 있습니까?

"그렇죠.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 공적조서의 주인공은 함경북도 주남면의 면장 박대욱이다. 일제의 협력한 행적이 명백해 보인다. 그런데 박대욱은 3.1만세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박대욱을 포함해 1940년 지나사변 공로자공적조사에 등장하는 조선인 면장은 1700명이 넘는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독립유공자 포상할 때 선 독립, 먼저 독립운동을 하고 후 친일했으면 독립유공자로 인정 안 하죠. 포상을 안 줍니다."


면장은 물론 지금의 이장에 해당하는 구장 이력만 있어도 건국훈장 수여를 유보하는 게 원칙이다. 작은 흠결하나도 수훈 결격 사유다.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장(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어떤 형태로든 일제에 협력한 행위는 흠결로 봅니다. 예를 들어서 조선총독부로붙어 월급을 받았다. 그건 당연히 흠결 사항이 됩니다. 또는 공직에 있었다? 흠결이 됩니다.


Q. 심지어 구장(지금의 이장)조차도?

"그렇죠. 흠결이죠. 그걸 친일이라곤 할 수 없지만. 구장을 했다고 그래서 그거를 친일파라고 할 수 없지만, 훈장을 주기에는 흠결 사항이라고 보는 거죠."


그러나 지금까지 대한민국정부는 일제 강점기 전기간에 행적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채 건국훈장을 수여해왔다.




이준식: "끝까지 지조를 지키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바치신 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분들을 서훈하는 것이 건국훈장 취지에 맞는 것이지. 나중에 자기 생각을 바꿔 가지고 다른 길을 걸은 분들한테 훈장을 주는 것은 건국훈장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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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는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위원 대거 교체

전 보훈처장인 박승춘 재임기에도 독립유공 포상자에게서 친일로 의심되는 행적이 잇따라 발견됐다. 매년 1명꼴이다. 보훈처는 최근까지 일제 강점기 면직원록 조차 확보하지 못한채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를 진행을 왔다.




Q. 면직원록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된 건가요?


국가보훈처 공무원 : "글쎄.. 그 부분은 저희가 좀 확인을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더구나 보훈처는 지난 2012년, 23명의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위원을 대거 교체했다. 그 당시 해촉 통보를 받은 한국독립운동사 전공 학자들을 만났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어느 날 내 연구실로(보훈처 직원이) 찾아왔어요. 와 가지고 얘기인즉 '보훈처장이 갈리면서 이번에 심사위원들을 일부 해촉하고 하는 과정에서 교수님이 더 이상...' 중간에 그만둔다면 그만두는 이유라든지 이런 거를 좀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얘기는 없더라고요."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장(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특별한 사유가 없고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그런 통보였습니다."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주도한 일이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새로 위촉된 23명의 공적심사위원은 어떤 사람들일까? 취재진은 신규위촉위원명단을 최초로 입수했는데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이다. 이들과 접촉을 시도해봤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자신은 독립운동사 전공이 아니어서 심사위원으로 적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 서울대 정치학 교수(비교정치학 전공)

"내가 갖고 있는 전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시민 상식선에서 어떤가 그래가지고 찬성하냐 반대하냐 그럴 때 그때 입장을 정했거든 난 적합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한국사나 또 그 당시에 특히 근대사나 이런 걸 연구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건전한 시민적 양심 가지고 임했을 뿐이고..."


그저 건전한 시민적 양심을 갖고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를 했다고 털어놨다. 새로 위촉된 23명의 공적심사위원 중에는 전직 공무원이 5명이나 들어있었다. 이또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 이후에 바뀐 명단을 보면 정치사와 비교정치학 등을 전공해 독립운동사와는 무관은 학자도 일곱 명으로 나타났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전공 분야만 보면 얼른 봐도 이게 뭐.. 법학자들이나 행정학 하는 사람들이 여기 심사를 한다는 거는 금방 이해는 안되네요."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교수(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아주 고도의 그런 전문적인 것인데, 그 심사위원회 독립운동하고는 관련된 사람은 없이, 독립운동이 뭔지도 모르는 분들이 어디 무슨 정부기관에서 정년하고서 위원을 들어오고, 그러면 심사가 제대로 되겠어요. 그렇게 심사위원회 구성해서 심사하면 감당을 못하죠. 그건 잘못된 것이고."


현대사학회 소속 학자도 여덟 명으로 확인됐다. 전체 34%를 차지했다. 현대사학회는 뉴라이트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체제에서 건국훈장을 심사하는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에 비전공자와 특정단체 소속 학자들을 채운 것이다.


취재진은 지난 2016년 6월 6.25 기념 행사장에서 박승춘 전 보훈처장을 만나 건국훈장 서훈심사 검증절차에 대해 물었다.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

"나중에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하세요. 그러면 나중에 우리 논의 해가지고 답변 드릴 테니까."


뉴스타파는 이후 국회에서 박승춘 처장을 다시 만나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구체적인 답변은 없었고 정식 인터뷰를 요청하라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나흘 뒤 뉴스타파는 국가보훈처에 공문을 보내는데, 건국훈장 심사관련 질문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공식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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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훈장의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

조국의 독립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에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인 건국훈장. 대한민국 건국 훈장의 역사에는 두 번의 서훈 취탈 기록이 있다. 1996년과 2011년. 명백한 친일 이력이 드러난 독립운동가 22명에 대해 서훈을 취소했다. 이들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사람이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잘 알려진 장지연이 대표적이다. 그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지만 친일행적이 드러나 서훈을 박탈당했다. 최고의 훈격인 건국훈장에는 어떤 흠결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강안 광복회 전북지부장(독립운동가 후손)

"정말로 가족도 말하자면 형제도 다 버리고 목숨 바친 분들이 계시잖아요. 비교는 되어야죠. 안중근 의사 우리가 왜 존경합니까? 어머니부터 형제, 가족, 모두 전부 다 이시영 선생님이나 이런 분들은 온 재산을 다 털어서 가서 군관학교를 만들어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이렇게 하신 분들하고, 중간에 그냥 이렇게 약간 하는 것들하고는 가치 판단이 조금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그냥 넘어간다? 그러면 훈장의 권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없이 추락하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참 마음 아픈 일이지만 훈장의 훈격이라고 할까. 이런 걸 더욱 높게 하기 위해서라도 개인의 아픔을 우리가 감수하고라도 그런걸 바로 잡아야 한다."


건국훈장은 말 그대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헌신한 이들에게 바치는 최고의 영예이다. 건국 훈장 서훈에 집권자의 사리사욕은 물론 어떠한 오류도 용인돼서는 안된다. 잘못은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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