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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三一神誥가 인도하는 진아眞我(27)

2022.11.03 | 조회 4031 | 공감 0

「삼일신고三一神誥」의 수행(3)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문계석



귀환歸還의 상향도 성명쌍수性命雙修 

단 하나뿐인 지구!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얽혀 다난하게 살고 있다.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무슬림이든 무신론자이든, 종교가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풍속이 다를지라도, 모두가 지구촌의 한 울타리에 살고 있는 고귀한 생명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限界狀況’에 직면해 있다.


특히 삶의 노정路程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닥쳐오는 ‘노병사’는 참을 수 없는 고통苦痛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삶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이러한 고통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기에 오직 자신만이 감내하고 풀어내야 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노병사’의 고통을 극복하여 보다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 하나의 방도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 안으로 눈을 돌려 그러한 고통을 야기하는 근원을 찾아서 해결하는 길 뿐이다.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 볼 때, ‘노병사’라는 ‘한계상황’ 속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인간은 자신이 유한有限한 존재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될 것이고, 이로부터 실존實存을 각성하게 되는 본질적인 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실존에 대해 각성한 인간은 고통의 원천을 찾아 그 뿌리를 제거하는 방도를 제시하기에 이른다.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가 제시한 연기법緣起法이 그 하나이다. 그는 연기법을 통해 실존에 이르는 길을 찾았다고 하는데, 연기법은 후에 ‘생노병사’의 ‘고苦’를 유발하는 ‘유전연기流轉緣起’와 그 ‘고’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도인 ‘환멸연기還滅緣起’로 분석된다. 여기에서 ‘유전연기’로 인한 모든 ‘고’는 ‘환멸연기’로써 그 뿌리가 제거될 수 있고, 이로부터 진정한 실존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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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일신고」는 자신의 실존에 이르는 길을 달리 제시한다. 즉 「삼일신고」는 오직 생명창조의 진원眞元을 찾아 그 본질을 밝혀 그것에로 귀의歸依하는 방도를 제시한다. 이는 실존으로 향하는 귀환歸還의 상향도上向道라 지칭할 수 있다. 귀환의 상향도는 수행修行이 절대적인 관건關鍵이다. 「삼일신고」는 수행을 통해 유한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실존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수행의 도道는 큰 틀에서 볼 때 4단계로 압축하여 말해볼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수행의 기초적인 과정으로 몸을 정화淨化하여 정단精丹을 만드는 것,


둘째 단계는 삼신三神으로부터 받은 세 가지 진실한 것[三眞], 즉 성명정性命精’을 인식하여 그것을 체화體化하는 과정으로 ‘성명쌍수性命雙修’의 수련,


셋째 단계는 순수의식에서 ‘삼진’을 관통하여 ‘하나’로 만드는 과정으로 ‘성통광명’에 이르는 것,


마지막 단계는 생명의 근원인 ‘신의 마음’으로 회귀回歸하는 과정으로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다. 신선이 된 자는 진정한 의미의 실존자이다.


수행의 1단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자신의 몸을 정화하여 정단을 형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몸에 굳건한 정단이 형성돼 있어야만, 몸의 활력도 왕성해지고, 외부로부터 침투하는 질병疾病에 대한 면역력도 드높여지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크고 작은 병을 스스로 치유하거나 막을 수 있어 무병장수無病長壽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무병장수의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우선 몸을 정화하여 기혈氣血이 원활하게 순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런 다음 전체적으로 정화된 몸에 정단을 만드는 것이 수순이다. 「삼일신고」는 정단을 만드는 기초적인 수행의 단계로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의 수련에 집중하여 단련할 것을 권장한다.


‘지감’은 무엇인가?

그것은 감성적인 의식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그치게 하는 수행이다. 그것은 ‘기쁨[喜], 두려움[懼], 슬픔[哀], 성냄[怒], 탐욕[貪], 증오[厭]’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퇴치하여 마음을 정화하는 수련이 중심이다.


이러한 감성의식은 ‘진성’에서 발현되는 본연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관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성의식이 정화되어야만 자아는 순수한 자연의식自然意識으로 돌아갈 수 있고, 이로부터 ‘진성’에 잠들어 있는 원신元神을 깨워서 정단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조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호흡을 통해 거친 숨을 고르게 함으로써 정정靜定한 마음에서 몸에 적체된 독해를 뿌리 뽑는 수행이다. 그것은 몸에 묻어 있는 ‘향기로운[芬], 문드러진[爛], 차가운[寒], 뜨거운[熱], 마른[震], 습한[濕]’ 기운과 같은 탁한 기운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수련이 중심이다.


이러한 기운은 ‘진명’에서 나오는 원기元氣가 활발하게 발현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몸에 적체되어 있는 탁한 기운이 정화되어야만 자연의식에서 원기元氣가 살아나 호흡을 통해 대자연의 생명기운을 끌어들여 정단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금촉’은 무엇인가?

그것은 몸에 딸린 감각기관이 외부와의 접촉을 금禁함으로써 몸에 내재된 정기를 보호하고 훼손을 막는 수행이다. 그것은 귀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聲]’, 눈으로 보는 ‘색감[色]’, 코를 자극하는 ‘냄새[臭]’, 혀를 통해 아는 ‘맛[味]’, 욕망에서 비롯하는 ‘음란[淫]’, 신체적인 ‘부딪힘[抵]’을 금지하는 수련이 중심이다.


왜냐하면 외부와의 신체적인 접촉은 정정한 마음과 맑은 생명기운에서 출원하는 정기를 쉽게 훼손하고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지감’, ‘조식’, ‘금촉’은 몸을 정화하는 단계의 수련과정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것만으로 몸에 정단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에 정단을 만들고자 하는 수행자는 의식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즉 ‘감식촉感息觸’으로 작용하는 ‘감성의식에서 벗어나 자연의식(순수의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 의거하면, ‘삼식三識]’의 작용이 자연의식이다. ‘삼식’은 신령한 앎인 ‘영식靈識’, 지혜로운 앎인 ‘지식智識’, 깨어있는 상태에서 아는 ‘의식意識’으로 분석되는데, 개별적인 인간의 생명이 잉태될 때 삼신三神의 본성에서 나온 ‘삼혼三魂’에서 기원起源한 것이다. ‘삼혼’은 신령한 마음의 ‘영혼靈魂’, 도리를 깨우치는 마음의 ‘각혼覺魂’, 생명활동의 마음인 ‘생혼生魂’을 지칭하는데, 우주에 꽉 차 있는 ‘신의 마음’에서 출원한 것이다.


따라서 몸에 정단을 만들고자하는 수행자는 자연의식의 주체가 돼야한다. 왜냐하면 자연의식은 삼신에 기원을 두고 있는 ‘삼혼’을 끌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자연의식은 삼신의 신령한 마음과 천지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수행자에게서 ‘삼식’이 주체가 되지 않으면, 수행자는 ‘삼망三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삼혼’과 ‘삼망’이 끊임없이 부딪힐 때 ‘감식촉’의 감성의식으로 떨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노병사’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지감’, ‘조식’, ‘금촉’의 기본적인 수련에 집중하여 ‘감식촉’의 감성의식을 벗어나 자연의식에서 ‘일심一心’으로 몸에 정단을 만드는 수행에 진력盡力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수행자는 자연의식에서 ‘일심수행一心修行’으로 몸에 정단을 만들 수 있는가?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동서 인류의 수행문화에서 볼 때, 정단형성의 첩경은 만트라(mantra) 주문수행이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만트라’는 ‘마음의 도구’란 뜻으로 집중을 방해하는 사념들을 차단하고 천지기운을 끌어들여 몸을 바꿀 수 있는 음절音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트라 주문수행에서 으뜸이 되는 것은 태을주太乙呪와 시천주侍天主 주문이다. 왜냐하면 태을주 주문은 뿌리 찾는 주문으로 감성의식에서 일어나는 잡념이나 관념들을 잠재우고 자연의식(순수의식)으로 돌아가 ‘일심’의 경계에 이르는 데에 탁월하고, 시천주 주문은 가장 강력한 영적인 힘으로 천지기운을 받아 내리는 데에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초적인 단계의 수행을 완결하여 몸에 정단을 만들려는 수행자는 반드시 자연의식의 상태에서 태을주 주문수행과 시천주 주문수행을 번갈아가면서 일심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두 주문수행이 심화되면 수행자는 자연의식에서 천지기운이 열리게 되고, 그럼으로써 밝은 빛의 천지기운을 하단전下丹田으로 끌어 모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천지기운이 하단전에 점차 쌓이게 되면, 몸에 정단이 점차 굳건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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