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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싸고 유럽여행 떠난 도깨비] - 전쟁의 신

2023.09.12 | 조회 1813 | 공감 0

<가방 싸고 유럽여행 떠난 도깨비 - 2>


글 오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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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쟁의 신

도깨비는2002년 월드컵 때 붉은악마 응원단의 상징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도부터 우리나라 조폐공사는 월드컵 때면 항상 등장하는 붉은악마의 상징인 치우천왕(황)의 기념주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도깨비 방패를 들고 말을 타거나 활을 쏘거나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치우천왕(황)의 강력함에 대해서 중국 쪽에선 동두철액(銅頭鐵額)이라 했습니다. 그 뜻은 동으로 된 머리 쇠로 된 이마라는 의미여서 마치 괴물이 생각나지만 이는 투구를 만들어 썼음을 이야기합니다.


치우천황은 지금으로부터 약 4,700년전 배달국 14대 자오지 환웅천황입니다. 최초로 쇠를 녹여서 창, 칼, 활 등 무기를 만든 무기의 시조이자 전쟁에서 패한적이 없는 전쟁의 신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치우천황에게 중국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헌원과 만리장성 북쪽에 자리한 탁록에서 10년간 73회 전쟁을 했는데 치우천황이 항상 이겼습니다.


이 때 헌원은 11,530종의 귀신과 요괴를 부려서 전쟁에 나섰고, 치우천황은 도깨비 부대를 이끌고 전쟁을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도깨비 부대가 항상 이겼기 때문에 치우천황은 군신(軍神)으로서 왕도깨비의 상징이 되었으며 도깨비는 항상 귀신과 악귀를 물리친다고 믿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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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뚝섬에 가면 치우천황에 대한 중요한 흔적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은 서울의 숲으로 변한 뚝섬은 원래 둑도로 불렸으며 둑을 독으로 읽기도 해서 독도라고도 했습니다. 오래 전 둑도엔 치우천황을 모시던 사당이 있었는데 치우의 깃발을 뜻하는 붉은색 둑(纛)기가 세워져 있어서 둑섬이라 했습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둑섬에 있었던 치우사당에는 중국의 황제헌원과 싸웠던 탁록(중국 북경에서 만리장성 너머 북쪽) 전투도가 거대하게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년 열리는 국가제례인 둑제(치우제) 때와 국가에 큰 환란이 있을 때 치우사당에서 정체불명의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이것을 치우의 깃발 또는 치우기(旗)라 했습니다. 붉은 연기의 모습을 소 털로 붉게 물들여서 만든 기를 둑기라 했습니다. 


표지석 내용 : 뚝섬은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인 살곶이벌(箭串拜)일대로 독 또는 둑(纛)과 관련된 지명이다. 둑(纛)이란 무신(武神)을 상징하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큰 창에 소의 깃털을 꽃아 만들었다.


매년 봄 경칩과 가을 상강 때 그리고 왕이 군대를 열무(閱武)하거나 출병(出兵)을 할 때 이 곳에 둑기(纛旗)를 새우고 둑제(纛祭)를 지냈던 곳이라 하여 뚝섬으로 불리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도 둑제를 지냈다고 난중일기에 쓰고 있다.)


둑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조선 정조대왕의 화성행차 후 한양으로 돌아오는 병풍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행렬도에서 가마 뒤쪽에 쌍룡이 그려진 깃발과 둑기가 행진하는 장면입니다. 




화성 행궁에서 중요 행사를 그린 8폭 병풍의 모든 그림에도 쌍룡 깃발과 둑기가 보입니다. 임금이 가는 곳은 항상 둑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칭기즈칸은 자신의 처소 앞에 9개의 둑기를 세웠다고 하며, 현재는 몽골 정부청사 앞에 9개의 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전쟁의 신 치우천황에게 둑제를 세차례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지역인사들과 병사들이 하나가 되어서 전쟁의 신인 치우천황에게 왜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가져다 달라고 기원했습니다.


보통 제례라고 하면 엄숙하고 정적인 의식을 떠올리지만, 둑제는 다릅니다. 한마디로 악(樂), 가(歌), 무(舞)가 독특하게 결합된 제사입니다.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데 도끼와 방패, 창과 칼, 화살을 휘두르면서 마치 군대가 진을 짜서 전투를 벌이듯이 춤을 추며 진행합니다. 둑제는 작은 제사로 위패도 없으며 단지 창 끝에 붉은 털로 풍성하게 만든 둑기를 세우고 제사를 올리는 매우 특이한 행사입니다.


지금은 임진왜란 당시를 기념하기 위해서 지금은 여수시에서 매년 봄 거북선 축제 때 ‘전라좌수영둑제’라는 행사를 합니다. 통영에서도 2019년부터 통영 통제영 둑제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해오다 고종 때인 1907년 중단되었다가 복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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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황은 중국에서도 매우 추앙받았습니다. 진시황제도 동쪽으로 갔다가 지금의 산동성 태산에서 치우천황에게 제를 올렸으며 한나라를 세운 유방도 치우천황에게 극진히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현재 중국 남쪽에 모여 사는 묘족들은 치우를 자신들의 왕이었으며 지금도 극진히 모시고 있습니다. 묘족들의 언어로 치우를 지드예우스(Zid Yeus)라고 부릅니다. 지드(Zid)는 아버지이고 예우스(Yeus)는 남성을 의미하는데 빨리 읽으면 제우스 비슷한 발음이 됩니다. 묘족들은 천둥산(雷山)에 살면서 치우천황을 모시는데 치우는 전쟁에서 뇌우를 일으켜서 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마치 그리스 최고신 제우스가 번개를 가지고 다니는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일부 학자는 치우가 유럽으로 건너가서 제우스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기원전 2400년에 수메르 시대에 씨름하는 청동기가 발견이 되었는데 우리의 씨름하는 모습과 동일합니다. 씨름은 치우천황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만든 놀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씨름을 각저희角抵戱 치우희角抵戱라고 합니다.


고구려 무덤 중에서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진 것을 각저총이라고 합니다. ‘중국무사도’에서 나오는 씨름하는 그림을 치우희는 뿔이 달린 투구를 쓰고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투구를 쓰지는 않지만 우승한 사람에게 소를 줬습니다. 종합해서 천둥, 치우(지드 예우스), 씨름 등을 볼 때 치우가 제우스가 되었다는 것이 사실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특히 중국 중칭시 펑수이현 묘족 자치구에는 치우구려성(蚩尤九黎城)이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동이족임을 나타내는 간판이 있습니다. 견이문(畎夷門)과 치우구려성(蚩尤九黎城))이 그것입니다. 


견이는 동이의 9개 족 중에 하나입니다. 구려는 동이의 9개의 겨레를 이야기합니다. 이 구려가 변해서 고구려-고려-코리아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오래된 역사책인 서경, 사기집해, 여씨춘추, 중국민족사에 하나 같이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중국 중칭시 펑수이현 묘족 자치구에는 치우구려성(蚩尤九黎城)과 견이문(畎夷門) 현판)


그곳에 세계에서 가장 높게 만들어진 구려궁이 있습니다. 이곳은 중국 국가 4A(AAAA)급 관광지로 선정된 곳으로 매년 치구제사대전(蚩尤祭祀大典)이이 이루어 집니다. 

 


(중국 중칭시 펑수이현 묘족 자치구에는 치우구려성(蚩尤九黎城)에 치우궁 앞에서 치우제사대전을 하는 모습)


묘족들은 보통 음력 10월을 묘년이라고 해서 축제를 하는데 추수가 끝나고 나서 3일에서 5일 또는 15일을 보냅니다. 이 기간은 치우천황을 기리며, 우리의 추석처럼 한 해의 수확을 축하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묘족의 신단수인 단풍나무, 대나무 우물에 제사를 지냅니다.


이웃들이 모여서 돼지를 잡고 찹쌀떡을 만들고 술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일부지역에선 소싸움도 합니다. 이 때 여인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은으로 만든 화려한 관을 쓰고 팔찌 등을 착용하고 거리를 나섭니다.



치우천황의 상징을 은으로 하려하게 만든 소뿔모양의 장식을 머리에 쓴 묘족 여인들
여자들만이 이 머리 장식을 소유하고 대대로 물려준다.



계속)

다음이야기 - 3.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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