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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의 고향을 찾아서(19) - 두보의 시 「등고登高」
상생문화연구소 원정근
【풀이】
두보의 나이 53세에 지은 오언 「절구絶句」 두 수가 있다. 아름다운 봄날의 정경과 지나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지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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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봄날에 강과 산은 빛나는데,
봄바람에 꽃과 풀이 향기롭네.
땅이 녹으니 제비는 날고,
모래 따스하니 원앙이 조네.
지일강산려遲日江山麗,
춘풍화초향春風花草香.
니융비연자泥融飛燕子,
사난수원앙砂暖睡鴛鴦.
강 검푸르니 새 더욱 희고,
산 푸르니 꽃 불타는 듯.
올 봄도 보고 또 지나가니,
어느 날이 돌아갈 해오?
강벽조유백江碧鳥逾白,
산청화욕연山靑花欲燃.
금춘간우과今春看又過,
하일시귀년何日是歸年?
이 시의 핵심은 “어느 날이 돌아갈 해오?”에 있다. 향수를 노래한 두보의 걸작품이다. 첫째 수는 봄날의 평화로운 풍경을 묘사라고 있다. 따뜻한 봄이 돌아오니,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하늘을 날고 있고 원앙새도 따사로운 모래사장에서 졸음에 겨워 꾸벅꾸벅 졸고 있다. 둘째 수는 지나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고향을 떠난 나그네의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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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빠르고 하늘 높은데 잔나비 울음소리 슬프고,
물가 맑고 모래 흰데 새 날아 돌아오네.
가없이 지는 나뭇잎 서걱서걱 떨어지고,
다함없는 긴 강은 출렁출렁 흘러오네.
만 리 밖 슬픈 가을에 늘 길손 되어,
백년 인생에 병 많은데 홀로 누대에 올랐네.
간난에 시달려 흰 살쩍에 한스러운데,
노쇠하여 이제 탁주마저 끊었네.
풍급천고원소애風急天高猿嘯哀,
저청사백조비회渚淸沙白鳥飛廻.
무변락목소소하無邊落木蕭蕭下,
부진장강곤곤래不盡長江滾滾來.
만리비추상작객萬里悲秋常作客,
백년다병독등대百年多病獨登臺.
간난고한번상빈艱難苦恨繁霜鬢,
요도신정탁주배燎倒新停濁酒杯.
이 시의 제목은 「등고登高」이다. 대력 이년(767)에 두보가 기주에서 중양절을 맞아 홀로 높은 곳에 올라가 지은 시다. 한 구절이 7자로 된 칠언 율시다. 싸늘한 가을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곳에 앉아, 늙고 병든 몸으로 쌓인 슬픔을 한 잔의 술로 푸는 작가의 독백을 담은 작품이다.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시상 전개 방식을 빌어 조락凋落의 가을 풍경에 인간의 무상함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연의 유구함과 대비된 인생의 무상함과 오랜 유랑 세월로 인해 지병이 악화된 작가의 처량한 처지가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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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동정호 들었건만,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랐네.
오나라와 초나라 동쪽과 남쪽으로 갈라섰고,
하늘과 땅 밤낮으로 떠있네.
친한 벗 소식 한 자 없고,
늙고 병든 몸 외로운 배 안에 있네.
관산 북쪽에 전쟁이 일어나니,
난간에 기대 눈물 콧물 흘리네.
석문동정수昔聞洞庭水,
금상악양루今上岳陽樓.
오초동남탁吳楚東南坼,
건곤일야부乾坤日夜浮.
친붕무일자親朋無一字,
노병유고주老病有孤舟.
융마관산북戎馬關山北,
빙헌체사류憑軒涕泗流.
이 시의 제목은 「등악양루登岳陽樓」이다. 두보가 악양루에 올라 지은 시다. 두보의 나이 57세에 지었다. 예로부터, 동정호의 풍경은 절경으로 손꼽혔다. 동정호에 대해 많이 들었건만, 직접 찾아볼 기회가 없었다.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라 동정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동정호는 드넓어서 오나라와 초나라를 가르고 있다. 동정호는 그 자체로 천지를 이루고 있다. 늙고 병든 몸으로 이곳저곳을 떠도는 처량한 나그네. 언제나 전쟁이 끝나 정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줄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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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의 집에서 늘 보았더니,
최구의 집 앞에서 몇 번을 들었던가?
바로 이 강남의 좋은 풍경,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구려.
기왕택리심상견岐王宅裏尋常見,
최구당전기도문崔九堂前幾度聞?
정시강남호풍경正是江南好風景,
낙화시절우봉군落花時節又逢君.
이 시의 제목은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서(江南逢李龜年)」이다. 강남지방에서 유명한 악사였던 이구년을 만나고 그 감회를 적은 시다. 이 시는 두보가 세상을 떠난 해인 59세에 강남의 담주潭州에서 지은 것이다. 두보의 마지막 작품이어서 인구에 회자되는 시다.
두보는 젊은 시절 낙양에서 악사 이구년의 노래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당나라가 태평시절을 구가하던 때였다. 하지만 안사의 난을 만나서 두보와 이구년은 모두 강남땅을 유랑하는 처량한 신세와 처지가 되었다. 그러니 두보의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한 많은 사연과 슬픔을 담담한 필치로 담아냈다. 후대 평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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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 머리 흰 늙은이,
남북으로 난리를 피해 다녔지.
해진 옷으로 마른 몸을 감싸고,
분주하여 자리조차 따뜻할 겨를이 없었지.
이미 노쇠한 몸에 병마저 찾아 들고,
온 천하가 한결같이 도탄에 빠졌네.
하늘과 땅 사이 만 리 안에,
몸을 누일 언덕조차 찾지 못했네.
처자식 또 나를 따라 다녔지만,
돌아보니 모두 비탄에 빠졌었지.
고향 언덕엔 잡초 무성하고,
이웃들 저마다 흩어졌네.
돌아갈 길 이로부터 길을 잃었으니,
상강의 언덕에 눈물 다 쏟으리.
오십백두옹五十白頭翁,
남북도세난南北逃世難.
소포전고골疏布纏枯骨,
분주고불난奔走苦不暖.
이쇠병방입已衰病方入,
사해일도탄四海一塗炭.
건곤만리내乾坤萬里內,
막견용신반莫見容身畔.
처노부수아妻孥復隨我,
회수공비탄回首共悲嘆.
고국망구허故國莽丘墟,
인리각분산隣里各分散.
귀로종차미歸路從此迷,
체진상강안涕盡湘江岸.
이 시의 제목은 「도난逃難」이다. 이 시는 대략 두보의 나이 59세(770)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두보가 일생동안 피난을 다니면서 떠돌아다닌 자신의 마음을 기술한 시다. 하늘과 땅 사이는 드넓기 그지없지만, 두보가 몸을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고향은 이미 황폐화되어 돌아갈 길이 없다. 두보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상강 기슭에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