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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로 문화읽기] 고래의 길, 온돌의 길 (2)

2023.11.20 | 조회 1360 | 공감 0



한재욱 / 본부도장


한국 문화 속의 고래

우리의 일상 속에서 술 많이 먹는 사람을 ‘술고래’라고 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을 쓴다. 언어는 삶을 반영한다. 고래에 관련된 이 많은 표현들은 고래가 우리 삶의 중요한 일부였음을 말해 준다.


태화강이 있는 울산에서는 매년 고래 축제가 열린다. 그래서 지금도 울산 장생포에는 고래 관광선이 운항 중이다. 우리의 바다는 지금도 세계적인 고래 서식지이다. 전 세계 80종의 고래 중 35종의 고래가 우리 바다에 살고 있다. 북태평양에 사는 고래들은 시원한 북극 연안에서 여름을 나고 추운 겨울이 되면 한반도 동해안으로 내려와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보는 돌고래뿐 아니라 깊은 바다에 사는 몸집 큰 고래들도 연안에서 볼 수 있다. 밍크고래, 알래스카가 주 서식지인 혹등고래, 상어와 작은 고래까지 잡아먹는 바다의 지배자 범고래도 동해안이 주 활동 무대이다.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한 귀신고래는 1914년 미국의 해양학자 로이체프먼 앤드류스가 한국 회색고래라 이름 붙인 동해안의 대표적인 고래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원정 온 포경선은 “수많은 혹등고래와 대왕고래, 참고래, 긴수염고래가 사방에서 뛰어논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동해와 서해는 전 대양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난류와 한류가 만나 풍부한 어장이 형성되어 고래들이 좋아하는 먹이 생물들이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고래가 많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옛 문헌에도 고래에 관한 기록이 많다. 청나라의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는 우리 동해를 경해鯨海(고래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최초의 어류도감 『현산어보玆山魚譜』에는 죽은 고래에서 고래기름을 빼내 열 항아리를 채웠다고 소개하는가 하면 조선의 백과사전 중 하나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먹는 것을 보고 사람들도 산모에게 미역국을 끓여 먹였다는 재미있는 기록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인 공주 석장리 유적은 내륙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도 고래의 흔적이 발견됐다. 석장리 유적이 처음 발견된 1964년에 구석기 유적이 발견됐는데 구석기인들이 복을 기원하며 집터 한가운데 새긴 것은 다름 아닌 고래였다. 마당 가운데 선명하게 고래 모양이 나타나 있다.


학자들은 바다와 멀리 있는 석장리에서 고래 흔적이 발견된 것을 놀랍게 여기고 있다. 1999년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선사 시대 유적에서는 고래 뼈가 무려 2,000점이나 발견됐다. 그중에 고래 사냥을 한 곳에서만 발견되는 고래 귀뼈도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고래 사냥과 해양 어로 문화

울산 황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고래의 일부에서 작살이 꽂힌 채로 발견된 유물이 있다. 3,000년 전 알래스카의 온돌을 만들었던 이들처럼 선사 시대 한반도인들도 고래잡이의 달인들이었다. 국립파리자연사박물관 교수였던 해양생물학자 다니엘 호비노는 자신의 저서 『포경의 역사』에서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를 “고래 사냥의 기원을 나타내는 기록화”라고 평가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고래를 적극적으로 포획을 해야 되는 유용한 생활 자원, 식량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고래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이미 오랜 시대에 걸쳐 누적돼 있었다는 것, 지금부터 7,000년 전 황성동 유적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가 바로 고래에 있었던 거죠.

- 정의도 원장/한국 문물연구원


다큐멘터리에서는 선사 시대 한반도에서 고래잡이의 달인들이 알래스카로 건너간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추론을 전개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결정적인 단서를 소개한다.




부구는 원주민들이 물개 가죽을 베어서 풍선처럼 만든 그런 도구입니다. 그런데 반구대 암각화에도 그런 그림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래가 있고 배가 있고 작살을 (고래가) 맞고 있죠. 여기 보면 알 수 없는 물체가 하나 있어요. 항상 고래 사냥 장면에는 배와 함께 이런 알 수 없는 물체가 있어요. 이것이 부구라는 도구들인데 실제로 에스키모인들을 보면 물개나 고래를 따라가서 작살을 찍으면 사람의 힘으로 이렇게 고래를 당기는 게 아니고 바로 이 부구라는 도구가 물에 뜨잖아요. 이게 고래나 이런 물개 같은 것들을 잡게 만들어요. 굉장히 중요한 도구인데 에스키모인들의 카누 위에 이 부구가 실려져 있습니다.

- 이상목 전 관장/울산암각화박물관




덩치 큰 고래는 잡는 것보다 끌어 올리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고래 사냥의 오랜 전통인 부구浮具를 최근까지 사용해 왔는데, 반구대 암각화에도 바로 부구가 그려져 있다. 즉 알래스카 원주민과 선사 시대 한반도인이 같은 방식으로 고래를 잡았던 것이다.


인류사가 농경에서 시작되었다, 또는 목축에서 시작됐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해양 어로 문화라는 아주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 문화의 특징들은 굉장히 이른 시기에도 불구하고, 농경 생활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해양 어로 자원을 통해서 정착 생활을 했던 아주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상목 전 관장/울산암각화박물관


이상목 전 관장은 내륙 지방이 동물들을 따라 이동하는 유목 생활이었던 것에 비해 해안 지역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정착 생활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내륙보다 먹을거리가 풍성한 해안을 따라 이동하며 같은 생활 방식과 문화를 공유했고 오늘날 북태평양 해양 어로 문화라 불리는 독특한 해양 문화권이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처럼 선사 시대 한반도인들도 해안을 따라 알래스카까지 갔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마주치는 접점으로 지정학적 의미가 매우 크다. 한국은 환국⋅배달⋅조선을 이어온 대륙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22담로제를 경영하며 동아시아 바닷길을 제패한 해양 대제국 백제라는 나라가 나올 정도로 해양의 민족이었다. 지금의 한국인은 대륙과 해양의 유전자를 모두 가진 것이다.


고래 사냥을 하려면 바다에 타고 나갈 배가 있어야 합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여러 척의 배가 있습니다. 배는 고래의 몸부림을 버텨 낼 정도로 튼튼해야 합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경남 창녕 비봉리에서 발견된 배의 파편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비봉리 목선은 2003년 태풍으로 침수된 지역을 재건하다가 발견되었는데, 약 8천 년 전에 제조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많은 학자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8천 년 전이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배에 속합니다. 소나무 재질로, 최대 길이 약 310㎝, 폭 60㎝, 깊이 약 20㎝로 추정됩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울산에 세계 최대 조선소가 있는 게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이 조선 강국이 되기 위한 유전자는 어쩌면 8천 년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 오동석 저자 / 『나는 박물관 간다』 책에서


한반도에서 아메리카로

아마도 해양 자원이 필요한 아시아 해안의 사람들은 고래 사냥이라든지 바다표범 사냥, 또는 낚시를 하기 위해 해양 동물을 따라서 알래스카로 왔을 것입니다. 아마 고래들을 따라갔을 수도 있습니다. 북극 역사에서 아주 유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누이트족들과 유럽 사람들도 모두 고래를 따라 먼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그런 일이 벌써 선사 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 리차드 크넥 교수




선사 시대 우리 민족의 이동을 연구해 온 배재대 손성태 교수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알류샨 열도로 이어지는 해양 어로에 주목해 왔다. 캄차카반도부터 알래스카까지는 알류샨 열도, 즉 수많은 섬들로 촘촘히 이어져 있다. 충분히 건널 수 있다는 얘기인데 그는 실제로 이 추측을 증명해 준 탐험가를 소개한다.


캄차카반도까지 도착한 이후에 바로 해류를 타고서 알류샨 열도를 따라서 배를 타고 아메리카로 건너가게 되죠. 1803년에 본 랑고스도르프라는 사람이 캄차카반도에서 범선을 타고 알래스카까지 여행을 한 일기가 있습니다. 그 일기에 따르면 이 사람이 하루에 225킬로씩 이동했거든요. 알류샨 열도의 총 길이가 1,700마일, 2,720킬로거든요. 12.5일이면 태평양 바다를 건너서 알래스카에 도착할 수 있더라고요.


- 손성태 교수/배재대 스페인중남미어학과


범선帆船은 선체 위에 세운 돛에 바람을 받게 하여 그 풍력을 이용하여 진행하는 배, 즉 돛단배를 의미한다. 돛단배만으로도 보름 안에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목 전 관장은 이 루트를 통해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해 볼 만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캄차카반도와 한반도 사이는 굉장히 작은 섬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 해양 루트를 통해서 알래스카에서 한반도까지 수백 년, 수천 년 기간을 거친다면 상당한 교류가 있었겠죠. 그건 당연한 상상이고 반드시 생각해 볼 상상인데 우리가 그걸 이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상목 전 관장/울산암각화박물관


온돌의 길, 고래의 길

다큐에는 알래스카에서 온돌을 발굴한 리차드 크넥 교수가 2014년 9월 한국을 찾는 내용을 소개한다. 알래스카 유적이 한국의 온돌이 맞는지 온돌 전문가 김준봉 교수와 함께 확인해 보기로 한 것이다. 김준봉 교수는 상생방송에도 출연해 온돌에 대한 심도 깊은 강의를 했었다.


김준봉 교수가 중국의 난방 방식인 캉炕과 한국의 온돌을 비교하는데, 방의 일부분만 데우는 캉은 입식형이고 바닥 전체를 데우는 온돌은 좌식형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크넥 교수는 이 설명을 듣고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난방 구조는 좌식형이라고 확실히 말한다.


같은 아시아의 난방 장치라도 한국형과 중국형은 차이가 있다. 중국의 난방 장치 캉은 방 한쪽에 입식형으로 아궁이를 설치한 반면, 우리는 신발을 벗고 생활할 수 있게 만든 좌식형이다. 방바닥 전체를 데울 수 있도록 방 바깥 아래쪽에 아궁이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뜨거운 공기와 연기는 고래라는 길을 통해 뻗어 나간다. 이 고래의 열기로 바닥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연기는 바깥에 있는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고래 사냥을 하던 사람들이 온돌을 만들면서 불길을 고래라고 이름 붙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남한에서 발견된 온돌 중 가장 오래된 건 1985년 발견된 경남 사천 늑도의 온돌이다. 2,000년 전의 것으로 바닥의 일부만 따뜻하도록 만든 부분 온돌이다. 그런데 2005년 연해주에서 북옥저인들이 사용했던 온돌이 발견됐다. 2,500년 전의 것으로 온돌의 역사를 앞당겼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온돌 유적지들이 전부 한반도와 주변 일대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2,0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그것도 우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만 같은 알래스카에서 온돌이 발견된 것이다. 바닥을 걷어 내자 밑으로 고래가 선명히 드러나고 불을 땐 자리와 공기 유입구도 확인됐다.



김준봉 교수는 크넥 교수에게 직접 한국의 온돌을 몸으로 느껴 보도록 온돌방으로 안내하는데 이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영국의 교수가 미국의 알래스카를 조사하다 온돌을 발견하고 그 온돌의 원형을 확인하러 먼 한국 땅에 와서 온돌방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온돌방에 앉아 보고 방바닥을 손으로 만져 보고 아궁이에 불을 때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크넥 교수는 매우 놀라워했다.


알래스카에서 본 온돌이 한국에서는 현재 더욱 발전된 상태로 남아 있고 한국의 문화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 온돌은 아주 효율적이고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방법이죠. 온돌을 보고 나니 고고학에서 온돌을 과소평가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리차드 크넥 교수


다큐에서는 우석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온돌학회의 세미나도 소개한다. 이 자리에서 리차드 크넥 교수는 알래스카에서 발굴한 온돌의 발굴 과정부터 분석 결과까지 빠짐없이 발표했다. 알래스카 온돌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관심 역시 뜨거웠다.


고래의 이동길과 온돌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분포와는 일치한다. 이렇게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 김준봉 교수


학회의 세미나에서는 알래스카의 온돌이 한국에서 전해졌다는 데 의구심을 가진 학자도 있었다. 온돌의 분포 범위로 보면 시베리아에는 온돌이 없는데, 알래스카에는 그렇게 전해졌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크넥 교수는 “그것은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북미에 온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고 답했다.


영국의 고고학자가 알래스카 유적을 발굴해서 한국의 온돌이라고 확신하는데 한국의 학자가 그걸 부정하는 이 장면은 참으로 아이러니해 보였다. 학자적 견해라는 입장을 떠나서 크넥 교수의 말대로 ‘인식의 문제’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필자는 이것이 ‘역사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국인이 그랬을 리가 없다, 한반도에 쪼그라들어 식민 역사로 살아온 우리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는 소한사관小韓史觀의 전형적 모습일 것이다.


결론

우리에게 고래는 굉장히 친근한 바다 동물이다. 그러면서 최고의 자원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고래와 함께 바다로 나가는 진취적 선택을 통해 미지의 대륙과 조우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고학자로서 저의 할 일은 한국과 북극의 실타래처럼 얽힌 이야기들을 풀고 선사 인류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한국과 북극 사이에는 분명 어떤 연관성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고대 북극 지역의 문화 발달에 뚜렷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라는 것은 결코 고립되어서는 발달할 수 없습니다. 고대 선사 인류가 베링 해협을 건너 아시아로 이동하며 문화가 양쪽 지역에서 서로 교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리차드 크넥 교수




다큐 말미에 리차드 크넥 교수는 한국이 북극 문명에 뚜렷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유적을 통해서 확신하게 됐지만, 인류사의 시원과 이동은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통해서 제대로 알 수 있다.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 책 해제에서는 알래스카를 넘어서 인디언 생활 문화 속에도 구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 준다.


환국의 환족은 베링 해협을 건너 남북 아메리카 대륙으로도 이주하였다. 이것은 인디언의 언어, 혈액형, 체질, 치아, 문화 등을 연구한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북미 인디언과 동북아인의 연관성은 인디언의 생활 도구와 풍습에서도 확인된다.


온돌은 방바닥을 따뜻하게 데우는 방식이다 보니 거실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와 생활하고, 방바닥을 항상 청결하게 관리해 위생적 거주 형식을 유지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 참여한 세계의 선수들이 다른 어떤 동계 올림픽보다 따뜻하게 숙소 생활을 했다는 소식은 당시 널리 회자되었다. 이처럼 아파트든 주택이든 한국의 어디에도 온돌의 변형된 난방 형태가 기본 장착되어 있다.


조선인들이 서양보다 먼저 난방 장치를 발명 활용해 왔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방바닥 밑으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더운 연기가 지나면서 충분한 열기 전달의 난방 장치를 만드는 데 놀라고, 그 설치 방법도 간단하다. 이렇게 기막힌 난방 방법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하지 않을까? - 프랑스인 여행가 듀크로끄


100년 전 조선을 여행했던 서양인들의 눈에는 온돌이 이렇게나 효율적이고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온돌에서 나고 온돌에서 자랐으며 온돌에서 죽을 것이다.”

역사학자 겸 민속학자 손진태는 1928년 잡지 〈별건곤〉에 한민족의 문화는 “온돌을 태반으로 하여 탄생하였으며 우리의 민족성은 온돌을 자모慈母로 하여 훈육되었다.”라고 썼다. 이른바 우리는 ‘온돌 민족’인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단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3,000년 전 한국의 온돌은 유라시아 대륙 중심의 사고 속에서 미처 우리가 주목하지 못한 고대사의 존재를 밝혀 준다. 고래를 따라 바닷길을 개척하고 고래와 함께 알래스카에 문명의 꽃을 피워 낸 선사 시대 한반도인,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모습을 드러낸 우리 조상들의 흔적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유산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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