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이 26일 오전 9시 45분 다시 한 번 울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상 여정에 끝을 맺는 장례 미사가 곧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였다. 지난 21일 오전 선종한 지 만 5일 만이다.
세계 60여 국 정상과 왕족, 국가 원수, 130여 국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성베드로 성당 내 교황의 관 앞에서 마지막 조문이 이뤄졌다. 교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에서 찾아온 밀레이 하비에르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부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등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의 마지막 조문이 끝나는 동안 광장에 모인 25만명의 추모객들 사이엔 엄숙한 적막이 맴돌았다. 전임자인 베네딕토 16세 은퇴 교황의 장례식 당시 조문객(5만여 명)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10시 정각, 추기경과 주교 100여 명이 대성당 중앙 통로의 양쪽에 도열했다. 이어서 교황의 관이 운구자 14명의 어깨에 실려 천천히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의 대형 화면을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추모객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교황의 관이 광장으로 빠져나오자 박수 소리는 더 커졌다. 곳곳에서 “산토 수비토!(지금 당장 성인으로!)”라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지난 12년간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몸소 복음을 실천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몸을 바쳐 믿음과 부활의 메시지를 직접 전하려 한 그에게 바쳐지는 존경과 사랑, 애도의 표현이었다.
이어서 십자가가 새겨진 교황의 목관이 붉은색 카펫 위에 놓였다. 의전 책임자인 디에고 라벨리 몬시뇰과 교황의 비서 중 한 명인 다니엘 펠리존 신부가 교황의 관에 성경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 미사를 집전하는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단장의 개식 기도가 이어졌다.
성경 구절을 낭독하는 ‘말씀의 전례’에서는 요한 복음의 내용이 봉독됐다. 첫 번째 독서는 영어로, 두 번째 독서는 교황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시편의 내용은 라틴어로 읽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청빈한 삶, 그리고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산 삶의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기렸다.
이어진 강론에서 레 추기경은 교황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그는 “교황은 지상 생애의 마지막 날까지 자신을 주님께 봉헌했다. 지난 부활절 대축일, 심각한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축복을 전하고, 광장으로 내려와 차량을 타고 부활절 미사에 나온 많은 군중을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중들의 교황이었다”고 했다.
그는 교황이 이주자와 가난한 이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람페두사 섬 등을 방문하며 노력했던 것과,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의 전쟁을 중단하기 위한 전 세계인의 노력을 간청해 왔던 것을 언급했다. 또 “교황은 항상 ‘벽이 아니라 다리를 놓으라’고 강조했다”고 했다. 이어서 “이제 우리는 기도로 교황님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기며, 그분의 광대하고 영광스러운 사랑 안에서 영원한 행복이 허락되기를 기원한다. 이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다”고 했다. 강론 내내 10여 차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뒤이은 신자들의 기도는 프랑스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독일어, 중국어 등 여섯 개 언어로 낭독됐다. 세계 평화와 교황의 안식, 교회의 발전, 전 세계 신자들의 평안을 비는 내용이었다. 교황 장례식에서 중국어 기도문이 낭독된 것은 처음이다. 중국 선교에 큰 관심을 쏟아 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지를 반영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곧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는 성찬례가 이어졌다. 광장에 모인 신자들을 위해 225개, 사제들을 위해 80개의 성합(성체를 담은 그릇)이 마련됐다. 영성체 내내 성가가 이어졌다. 광장 내 대형 화면에 제대 오른쪽에 놓인 성모 성화 ‘로마인들의 구원(Salus Populi Romani)’이 비치기도 했다. 교황이 묻힐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 대성당)에서 가져온 것으로, 교황이 생전 가장 애착을 가졌던 성화다.
성찬례 후에는 고인을 성인의 교회 안에 받아달라는 마지막 청원 기도(Última commendatio)와 장례의 마지막 인사(Valedictio)가 이어졌다. 로마 교구의 발도 레이나 추기경이 로마 교회 공동체를 대표해 기도하고, 그리스 멜키트(중동 지역) 가톨릭의 총대주교인 유세프 압시 총대주교가 동방 교회들을 대표해 그리스어로 기도문을 바쳤다.
레 추기경은 고인의 관에 성수를 뿌리고 향을 피웠다. 모든 사람이 일어서 라틴어로 “천사가 그대를 천국으로 인도할지니, 순교자들이 그대를 맞아 예루살렘으로 인도할지니”라고 노래하면서 장례 미사는 끝났다.
추기경들이 대성당 안으로 퇴장한 뒤, 교황의 관은 운구자들에 의해 들어 올려져 잠시 신자들을 향했다. 이날 가장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산토 수비토” 구호도 다시 울려 퍼졌다. 교황의 관은 이윽고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로 들어가 성 베드로의 묘가 있는 ‘고백의 제단’ 앞에서 예를 표한 뒤 대성당 왼쪽으로 빠져나갔다. 이후 장지인 약 6km 동쪽 로마 시내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 대성전)을 향한 운구를 시작했다.
미사는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개정한 교황 장례 예식서의 내용을 따라 간소화된 라틴어 전례로 진행됐다. 추기경과 주교, 사제 등 5000여 명의 성직자가 미사에 참석했다. 이 중 추기경 220명이 교황의 관이 놓인 파르비스(성당 입구 앞의 넓은 공간) 왼쪽에 자리했다. 반대편에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조문단 대표가 자리했다. 맨 앞줄에 하비에르 아르헨티나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이 자리했다.
교황의 관은 오후 1시쯤 장지인 로마 시내 성모 대성전에 도착했다. 이후 안장 의식을 갖고 매장됐다. 교황청은 이날부터 9일간의 공식 추모 기간(‘노벤디알리’)을 선포하며 전 세계 가톨릭 신자와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이 기간 동안 매일 추모 기도회가 이어진다. 교황의 묘는 27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