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신상구 | 2026.05.05 10:21 | 조회 166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1956년 30세 박경리(1926~2008)는 김동리 추천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했다. 첫 소설 발표는 1955년이지만 두 차례 추천을 받아야 하는 관례가 있었다. 이 신인 작가는 1957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수필에서 자신은 “열등감이 천성”이라고 고백했다.

  “소녀 때는 ‘코스모스’를 퍽 좋아했다. 그리고 ‘오랑캐꽃’도 좋아했다. 이 꽃들은 모두 화병에 꽂혀질 꽃이 못 된다. 그만큼 미(美)에는 자신이 없는 꽃이지만 또한 향취도 없다. 그런데 왜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구태여 좋아한 이유를 붙인다면 아마도 열등감에서 오는 내 천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 꽃에 대한 이러한 기분은 대인(對人)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신분이 높으고 훌륭한 사람 앞에 서면 나는 우선 내 몸이 떨려오는 것을 제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숨이 막히고 얼굴까지 비틀어지는 듯한 그런 생각 속에 나는 나를 감당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1957년 4월 9일 자 석간 4면)

  열등감은 문학을 향한 채찍질로 나타났다. 1958년 소설 ‘불신시대’로 현대문학사 신인문학상, 1960년 ‘표류도’로 내성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 4월 6일부터 조선일보에 소설 ‘내 마음은 호수’를 연재했다. 12월 31일 자 269회로 완결했다. 연재를 마친 후 기고한 글에서 “9개월 동안의 긴 연재를 끝내고 보니 시원하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마음이 무거웠다”면서 “4·19가 터지면서부터 나는 줄곧 창작 행위에 대한 일종의 불신에 빠져 있었다”(1961년 1월 6일 자 조간 4면)고 토로했다.

   박경리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과 ‘불신’과는 달리 “지성과 이지의 작가”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시대의 총아” “앞날의 여류(女流)”(1962년 1월 1일 자 조간 9면)로 주목받았다.

  “객관적인 역경 속에서 굽히지 않고 살아나가는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하려는 박경리의 작품 세계는 6·25 이후 새로 나온 신인들의 작품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1962년 11월 28일 자 5면)

  다수 작품이 영화로 제작됐다. 1960년 ‘표류도’, 1963년 ‘김약국의 딸들’, 1964년 ‘내 마음은 호수’, 1968년 ‘파시’, 1969년 ‘성녀와 마녀’, 1974년 ‘토지’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1964년 12월 인터뷰에서 “쓰고 싶으니까 쓰는 것 같아요. 창조하는 기쁨 그것이…”라고 했다. 이해 원고지 2000장에 이르는 전작 장편을 탈고했다.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 5월. 오는 9월쯤에 완성하여 어느 출판사에 넘기기로 되어있다. 작년 7월께 박 여사는 얼마 동안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문이 났었다. 그때 그는 진주를 거쳐 가야산 해인사 등을 돌아 취재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공비 전향자 토벌대장, 반공 포로 출신자 여관 주인 등을 만났다. 작품 내용은 한 ‘인텔리’ 여성의 눈을 통해 본 전쟁의 생태-(…)”(1964년 7월 19일 자 조간 5면)

   탈고 후 정한 제목은 ‘시장과 전장’이었다. 이 작품으로 1965년 여원사가 주는 ‘한국여류문학상’을 받았다. 이해 조선일보에 다시 소설 ‘신 교수의 부인’을 연재했다. 이 소설은 1966년 9월 13일 자까지 250회 실렸다. 1970년 8월 15일부터는 소설 ‘창’을 1971년 6월 15일까지 258회 연재했다.

매일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는 근면 속에서 대표작 ‘토지’도 탄생했다. 월간 ‘현대문학’에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연재한 ‘토지’ 제1부는 월탄문학상을 받았다. 박경리는 “잠든 시간 이외의 모든 시간은 ‘토지’를 집필한다”고 했다.

   “제1부는 조선 왕조 말엽에서 한일합방까지를 다룬 것. 2부는 일제시대, 3부는 해방 후에서 6·25까지를 다룰 예정인데 오래 살게 된다면 4부, 5부를 죽을 때까지 쓸 예정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 “나는 이 작품 속에 모든 것을 던져넣었다. 인간은 적당히 사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궁극의 목적은 구도(求道)이기 때문에 작가는 고행자(苦行者)다. 내 생(生)의 승부도 이 작품과 이 작품을 쓰는 내 정신의 고행에 던져넣었다”고 ‘토지’에 대해 말한다.”(1973년 6월 27일 자 조간 5면)

   박경리는 끝내 ‘토지’ 5부작을 완결했다. 1994년 8월 15일 탈고했다. 집필 기간 25년, 원고지 약 26만장, 등장인물 600명이 넘는 대하소설이다. KBS가 1979~1980년, 1987~1989년 대하 드라마로 방영했다. SBS는 완간 후인 2004~2005년 방영했다.

   자료 조사와 취재 여행은 작품 집필의 기반이었다. 박경리는 한중 수교 3년 전인 1989년 처음 비행기를 타고 ‘토지’의 무대이기도 한 만주를 여행했다. 1990년 4월 22일까지 조선일보에 ‘중국 기행’을 30회 연재했다.

   “‘토지’를 쓰면서 비로소 중국을 의식했다. 통과해야 하는 자료에서 끊임없이 중국과 일본이 묻어 나왔다. 또 필요에 의해 중국에 관한 것, 일본에 관한 것을 읽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국과 일본은 작품을 가로질러 가는, 꽤 굵은 실타래였다.”(1989년 9월 26일 자 10면)

‘토지’ 완간 직후인 1994년 10월 ‘올해의 여성상’을 받았다. 박경리는 이해 프랑스 파리7대학 초청 강연에서 “내 삶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다”면서 후배 문인들에게 주는 말로 강연을 맺었다.

   “불확실한 것, 가시(可視) 밖의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물질만능이 판을 칩니다. 확실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의 ‘틀’일 뿐입니다. 문인들은 방관자일 수밖에 없는지, 문명이라는 것에 편승하여 찰나를 살아보겠다는 것인지, 실로 천지만물에 대한 공경 없이 이 시대를 질러가려 하지만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어떤 문학 지망생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르시시즘의 극복 없이, 생명에 대한 연민 없이 글 쓸 생각을 말라.””(1994년 11월 24일 자 11면)

   타계하기 한 달 전인 2008년 4월 ‘현대문학’에 발표한 시 ‘옛날의 그집’에서 무욕과 달관의 철학을 노래했다.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2008년 5월 6일 자 A8면) <이한수, “'토지' 소설가 박경리” 조선일보, 2026.5.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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